최근 집값이 폭등하면서, 실제로는 정상적으로 매매계약이 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매도인이 계약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도가 많아지고 있다.
그 시도 중의 하나로 최근 자주 시도되는 행위가 대리권(代理權) 부인이다. 즉, 매매계약 현장에 소유자 본인이 아니라 배우자와 같은 대리인이 참석한 것을 기화로 대리권을 부인하면서 계약을 무효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 부동산 거래관행상 대리인으로 참석한 사람이 소유자와 가까운 가족일 경우에는 별다른 위임관계서류를 별도로 확인하지 않는 경향이 아직도 있어, 소유자와 가족관계에 있으면 의레 대리권를 가지고 참석한 것으로 쉽게 믿어버린다.

그렇지만 위임관계서류가 없는 상태에서 만약 소유자가 대리인의 대리권을 부인해버리면 상대방인 매수인으로서는 계약당시 대리인에게 대리권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고, 이를 입증하지 못하면 계약관계가 유효할 수 없다. 이러한 법리는 대리인으로 나온 사람이 가족관계이더라도 역시 마찬가지다. 가족관계이더라도 부동산거래에 있어 당연한 위임권한을 가지는 것으로 법에서 해석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위임관계서류를 지참하더라도 대리권을 부인할 수 있는 위험이 완전히 해소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임장에 인감도장이 날인되어 있고 위임자의 인감증명서까지 구비되었다고 하더라도, 특히 인감증명서 발급이 소유자 본인이 아니라 “대리”로 처리된 경우에는, 본인 허락없이 마음대로 인감증명서를 발급받아 무단으로 거래한 것이다라는 주장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타인이 아니라 소유권자 본인이 직접 발급받은 인감증명서가 거래안전을 도모하는데 더 유용할 수 있다).

결국, 위임사실이 부인되는 경우에는 거래의 유효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거래의 유효를 주장하는 측(매수인)에서 상대방의 위임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위임사실을 부인하기로 두 사람이 적극적으로 통모하는 상황에서는 적법한 위임이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물론, 처분권자로부터 아무런 위임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위임받은 것처럼 행세하는 행위는 형법 제 232조에서 정하는 “자격모용에 의한 사문서작성죄”로 처벌될 수는 있지만, 현재의 양형상 수수된 매매대금을 반환하지 못하는 등 매수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만 없다면 통상적으로는 벌금형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실제로는 위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약을 인정하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위임사실을 부인하려는 유혹이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

최근에 필자는, 중개업소에서 소유자의 남편와 매매 협상을 진행하다가 막상 계약서 작성과정에서는 소유자는 물론 소유자의 남편도 참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화를 통해서만 대화하다가 결국 매도인측의 구좌로 계약금이 송금되었지만, 당사자 참석이 없다보니 작성된 매매계약서에는 매도인측의 서명날인이 전혀 없는 결과가 되었는데, 결국 집값상승분위기에서 매도인이 남편에 대한 위임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물론 계약서작성과정에서의 문제를 이유로 매매계약체결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 사례를 상담했다. 가격상승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매매대금이 10억원이나 되는 거래였고 더구나 중개업자가 거래에 관여했는데도 불구하고, 위임관계서류확인은 물론 계약서작성까지 허술해서 결국 매도인이 계약의 효력을 부인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너무나 사려깊지 못한 거래가 아닐 수 없다. 법적인 검토는 어느 부동산거래이건 필요할 수 있지만, 특히 지금과 같이 가격 등에서 큰 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는 더욱 세심할 필요가 있다. -이상-

■ 참고법령
형법 제232조 (자격모용에 의한 사문서의 작성) 행사할 목적으로 타인의 자격을 모용하여 권리·의무 또는 사실증명에 관한 문서 또는 도화를 작성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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