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뢰인 사안의 요지


얼마전에 상담한 의뢰인의 사연이다. 이 의뢰인은 소유하고 있던 토지를 3년 전에 甲이라는 사람에게 대금 4억원에 팔았는데, 계약금 4천만원, 중도금 1억원을 받았지만, 나머지 잔금 2억6천만원을 받지 못하다가 결국 계약을 해제하고 토지를 다른 사람에게 처분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매매한 금액은 甲에게 매매한 금액에 훨씬 못미치는 2억5천만원에 불과해서 결국 의뢰인은 甲으로부터 받은 1억4천만원을 모두 반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익은 커녕 1천만원의 손해를 보는 처지가 되었다.
그런데 토지를 다른사람에게 처분하자마자 甲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계약금과 중도금 1억4천만원 전부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는데, 의뢰인과 甲이 체결한 매매계약에서 계약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의 예정, 즉 위약금약정이 없다는 이유였다. 만약, 위약금약정이 매매계약서에 있었다면, 甲의 계약위반으로 의뢰인과 甲 사이의 매매계약이 적법하게 해제된 이 사안에서는 약속된 위약금(통상은, 계약금 상당으로 기재하게 됨)을 몰수하는 것으로 법률관계가 마무리되지만( 甲의 계약위반으로 의뢰인이 헐값에 부동산을 팔 수 밖에 없어 위약금 이상의 손해를 입었다고 하더라도, 약속된 위약금 이상의 실제 손해액을 청구할 수는 없다. 위약금이 약정되어 있으면, 계약위반으로 인한 손해가 통상손해이건 특별손해이건, 실제 손해액수가 위약금이상이건 그 이하이건 상관없이 약정된 위약금으로 손해배상을 갈음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 이 사안에서는 계약에서 위약금약정이 없었다는 점에서, 법률관계가 복잡해 질 수 있고, 이러한 법리를 이용해서 소송이 제기된 것이었다.


소송과정에서 의뢰인은 甲의 계약위반으로 매매대상 토지를 무려 1억5천만원이나 적은 금액에 팔 수 밖에 없는 손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주장하며, 지급받은 1억4천만원은 손해배상채권으로 상계되어져야 한다는 법리적인 방어를 했지만, 1심 재판에서 완전 패소하고 말았다. 지급받은 중도금은 물론 계약금을 모두 반환하라는 판단을 받은 것인데, 그 이유는 甲이 계약위반을 했고 그로 인해 의뢰인이 당초 매매계약보다 1억5천만원이나 적은 금액으로 토지를 처분할 수 밖에 없어 피고인 의뢰인에게 1억5천만원의 손해가 발생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의뢰인이 입은 손해는 甲의 계약위반에 따른 “통상손해”라고 볼 수 없는 “특별손해”라는 점에서, 의뢰인이 이 토지를 헐값에 처분해서 손해를 입게 된다는 사정을 甲이 알지도 못했고 또 알 수도 없었던 상황이어서 배상책임이 없다는 것이었다.

현재 이 재판은 의뢰인의 항소로 항소심재판이 진행되고 있는데, 필자는 이 사건에 참고되는 사안으로 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4다3543호 판결에 대해 자문해 주었다. 1심에서 패소한 이후 의뢰인의 소송대리인인 변호사가 통상손해와 특별손해에 관한 판례를 검색하다가 발견한 것이라고 하면서, 이 판결과 관련해서 법리적인 의문이 있어 필자를 방문한 것이다.


■ 의뢰인이 가지고 온 대법원 판결의 요지

이해를 돕기 위해, 이 판결의 요지를 설명하기로 한다(사안의 정리를 위해 금액이나 과정은 다소 간략하게 압축하였음).
이 사건 원고는 피고로부터 400억원에 토지를 매수하면서 계약금으로 40억원을 지급했는데, 원고의 사정으로 나머지 대금을 지급하지 못해 결국 계약은 해제되고 계약내용에 따라 계약금은 위약금으로 몰수되었다. 그후 원고는 손해배상예정액이 과다하다며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원심은 여러 가지 사정에서 손해배상예정으로 정한 40억원은 지나치게 과다하고, 32억원 정도가 적당하다고 하며 원고에게 차액 8억원 정도를 반환하라고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40억원의 손해배상예정이 지나치지 않다는 판단을 하면서, 그 논리로 의뢰인의 사안에 적용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판단을 한 것이다. 즉, 이 판결문에는 “---토지의 매매계약이 매수인측의 귀책사유로 해제되는 경우에 매도인측이 입는 통상의 손해액은 그 계약이 해제되지 아니하고 이행된 경우에 매도인이 얻게되는 경제적이익과 계약이 해제된 경우에 매도인에게 남아있는 경제적이익의 차액이라고 할 것이고, 이 사건에서와 같이 매매계약이 해제된 후에 매도인이 제3자에게 그 매매목적물을 다시 매도한 경우라면, 제3자에의 매도가격이 시가에 비추어 현저히 저렴하게 책정된 것이라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매도인이 당초의 매매계약에 의하여 취득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매매대금과 제3자와 사이의 매매계약에 의하여 취득하게 되는 매매대금과의 차액에 ---를 합한 금액이라고 할 것이다”라는 이유를 설시하면서, 이런 논리로 계산할 때 이 사건 원고와의 매매계약이 해제된 이후 피고가 다른 사람에게 토지를 저렴하게 매도함으로써 입은 금전적인 손해가 약 100억원인 이 사건에서 40억원을 손해배상예정액으로 정하는 것은 과다하지 않다고 판단하였다(이 대법원판결에서 참고판결로 거시된 대법원 2001. 11. 30. 선고 2001다16432 판결 역시, 이 대법원판결과 거의 동일한 사안에서 위약금감액이 적정하느냐가 쟁점이 된 사건이어서, 별도로 소개하지 않는다).

■ 필자가 수행한 예전 다른사건

사실 필자는 약 2년 전에 진행한 소송사건과 관련해서 대법원 2001. 11. 30. 선고 2001다16432 판결을 검색한 적이 있었다. 당시 필자가 진행하던 사건은,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80억원대 빌라를 매수하기로 계약하고 계약금 8억원을 지급한 의뢰인이 그후 개인적인 사정으로 나머지 대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되자, 매도인으로부터 계약을 해제당하게 된 이후, 계약금을 반환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필자가 사건을 대리하게 되었다. 필자와 상담하기 이전에 이 의뢰인은 계약을 위반했기 때문에 계약금몰수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고서 계약금반환을 아예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위약금과 해약금의 차이에 관한 필자의 글을 읽고 자신의 매매계약서를 검토한 결과 위약금조항 없이 단순히 해약금조항만이 기재되어있던 것을 발견하고 소송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재판과정에서 알게 된 바에 의하면 당초 이 의뢰인에게 80억원에 매도된 빌라는 의뢰인과의 계약해제 이후 불과 몇 달 만에 무려 10억원이나 적은 70억원에 다른 사람에게 팔려버렸고, 이로 인해 결국 매도인은 의뢰인으로부터 몰수한 8억원을 감안하더라도 2억원이나 되는 손해를 입고 있는 상태였다. 그 때문에 상대방인 매도인은 의뢰인으로부터 계약금반환청구 소송을 제기당하자 계약금반환은커녕 오히려 손해배상 2억원을 추가청구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사건해결을 위해 필자가 판례를 검색하다가 발견한 것이 바로 위 대법원판결이었다. 이 소송과정에서 필자는 매도인인 상대방이 입은 10억원의 손해는 “특별손해”라고 주장했는데, 이 대법원판결 이유에는 이 경우에 “특별손해”가 아니라 “통상손해”인 것처럼 판시하고 있어 우리측에 불리할 수 있는 소지가 있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상대방 변호사는 이 판결내용을 알지 못해 재판부에 판결문을 제출하지 못했고, 조정끝에 약 3억원 정도를 의뢰인이 돌려받는 선에서 재판상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상대방이 판결내용을 알았더라면 조정이 힘들었던 사건이었는데 어느 정도 운도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 의뢰인에 대한 자문내용

이제 이 의뢰인의 케이스를 이야기해 보자.
위 대법원판결문에서 거론된 “통상의 손해액”이라는 것은, 위약금감액이 쟁점이 된 사안에서 매도인에게 이미 발생한 손해액을 계산하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통상손해와 특별손해가 쟁점이 된 의뢰인의 사안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대법원판결문 그대로라면 甲의 계약위반으로 의뢰인이 입은 1억5천만원의 손해는 “특별”손해가 아니라 “통상”손해라고 볼 수 있어 2심에서는 의뢰인에게 유리한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더 크다고 자문해주었다.

아울러, 이 의뢰인은 위 대법원판결에서 판시한 “---매매계약이 해제된 후에 매도인이 제3자에게 그 매매목적물을 다시 매도한 경우라면, 제3자에의 매도가격이 시가에 비추어 현저히 저렴하게 책정된 것이라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매도인이 당초의 매매계약에 의하여 취득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매매대금과 제3자와 사이의 매매계약에 의하여 취득하게 되는 매매대금과의 차액에 ---를 합한 금액이라고 할 것이다”라는 것과 관련해서, 제3자에 대한 매도가격이 시가에 비추어 현저히 저렴하게 책정된 것이라는 등의 특별한 사정에 관해 입증책임을 누가 부담해야하는지, 즉 매도인인 의뢰인에게 입증책임이 있는지, 아니면 매수인인 甲에게 입증책임이 있는지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말하면, 제3자에 대한 매도가격이 적정한 가격이었다는 점을 매도인이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하는지, 아니면 제3자에의 매도가격이 시가에 비추어 현저히 저렴하다는 점을 매수인이었던 甲이 입증해야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필자가 판단하기에는, 대법원판례는 제3자에게 매도된 가격과 기존가격과의 차이를 통상손해로 인정하는 전제에서 제3자에의 매도가격이 현저히 저렴하게 책정된 것이라는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는 논리라는 점에서, 특별한 사정에 대해서는 매수인인 甲에게 입증책임이 있다고 본다.

이 케이스는 위약금과 같이 부동산거래계약서상에 꼭 필요한 문구가 없을 때 얼마나 복잡한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부동산거래에서 계약서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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