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지상권과 관련된 한 의뢰인의 드라마틱한 사연을 소개한다(실제로는 상속관계가 얽혀있어 더 복잡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사안을 단순화해서 설명한다).
이 의뢰인은 서울 종로구 체부동 모 지번 토지와 지상 단층 건물에 근저당권을 설정하고 이 토지와 건물의 소유자였던 甲에게 돈을 빌려주었는데, 어느날 공동담보였던 단층건물이 무단으로 철거되고 그 자리에 5층 건물이 대신 신축되는 과정에서 이 건물의 소유권이 甲이 아닌 乙로 등재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복잡한 법률분쟁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후 이 의뢰인은 담보로 남아있는 토지만에 대해 경매신청하게 되는데, 토지상의 건물의 존재 때문에 가치가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이 토지는 결국 유찰을 거듭하다가, 이 의뢰인이 어쩔 수 없이 낙찰받게 되고, 그후 이 의뢰인은 신축건물 소유자인 乙을 상대로 건물철거소송을 제기하게 된다.
이 소송의 쟁점은, 신축건물의 소유자인 乙이 토지에 대해 법정지상권을 가지는지 여부였는데, 이 소송 당시 대법원 판례는, “민법 제366조 소정의 법정지상권이 성립하려면 저당권의 설정당시 저당권의 목적되는 토지 위에 건물이 존재할 경우이어야 하는 바, 저당권설정 당시 건물이 존재한 이상 그 이후 건물을 개축, 증축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건물이 멸실되거나 철거된 후 재축, 신축하는 경우에도 법정지상권이 성립하는데, 다만 이 경우 법정지상권의 내용인 존속기간, 범위 등은 신축건물이 아니라 구 건물을 기준으로 하여 그 이용에 일반적으로 필요한 범위 내로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대법원 1990.7.10. 선고 90다카6399 판결). 따라서, 기존건물이 멸실되고 새로운 건물이 신축된 이 사건의 경우는 원칙적으로 법정지상권이 성립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이 건 신축건물의 경우 바닥면적은 기존 건물보다 적었지만 건물 높이가 단층에서 무려 5층으로 올라갔다는 점에서 전체적인 관점에서는 신축건물이 구 건물을 기준으로 한 법정지상권의 범위를 훨씬 넘어섰다고 보여질 수 있었고, 이 점을 강력하게 주장한 결과 1심 재판부 역시 이와 같은 이유로 신축건물을 위한 법정지상권은 성립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신축건물을 철거하라고 선고했다.
그후 乙이 항소로 진행된 2심 재판에서는 우여곡절 끝에 조정이 성립되고 말았는데, 의뢰인이 乙에게 이 건 토지를 일정차임을 받고 임대하되, 차임을 2차례 연체하면 토지에 대한 임대차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것이 조정의 골자이다. 사실 1심에서 철거판결을 받은 의뢰인으로서는 이런 조정이 달갑지 않았지만, 당시까지 이와 같은 사안에서 법정지상권에 대한 법리가 명확하지 않았고 학설상으로도 논란이 있어 승소를 장담할 수 없어 부득이 조정에 응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런 조정이 성립된 몇 달 후에 기존 법정지상권에 관한 판례를 변경한 대법원 전원합의체판결이 선고되었다(대법원 2003. 12. 18. 선고 98다43601 전원합의체 판결). 즉, 이 사건과 같이 동일인의 소유에 속하는 토지 및 그 지상 건물에 관하여 공동저당권이 설정된 후 그 지상 건물이 철거되고 새로 건물이 신축된 경우에는 그 신축건물의 소유자가 토지의 소유자와 동일하고 토지의 저당권자에게 신축건물에 관하여 토지의 저당권과 동일한 순위의 공동저당권을 설정해 주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저당물의 경매로 인하여 토지와 그 신축건물이 다른 소유자에 속하게 되더라도 그 신축건물을 위한 법정지상권은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 판결을 통해 이와 같은 사안에서 계속되어 오던 논란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의뢰인으로서는 변경된 판결이 조금만 일찍 선고되었더라면 조정에 응하지 않고 1심에서와 같이 건물철거를 통해 원하는 목적을 완전히 달성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대법원판례 변경이 아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후 이 의뢰인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찾아왔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항소법원 조정을 통해 임대차계약체결에 따른 월차임지급을 약속한 乙이 차임을 여러차례 연체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乙 소유의 건물이 다시 경매에 부쳐지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을 맡게된 이 의뢰인은 그렇지않아도 조정성립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차에 즉시 차임연체를 이유로 임대차계약을 해제한 이후, 이 건물을 낙찰받은 새로운 소유자 丙을 상대로 건물철거소송을 제기하였다. 현재 재판은 진행 중에 있지만 재판결과는 의뢰인이 승소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할 수 있다. 앞서 본 바와 같은 변경된 대법원판례에 의할 때 구건물과 신축건물의 규모 등을 떠나서 건물의 종전 소유자 乙에게는 법정지상권이 성립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건물을 승계취득한 丙 역시 마찬가지 지위가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혹시나 乙에게 법정지상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관습상 법정지상권이 성립된 후 건물소유자와 토지소유자 사이에 토지 임대차계약이 체결되면, 관습상 법정지상권을 포기한 것으로 본다’라는 판례도 있어(대법원 1992.10.27. 선고 92다3984 판결 ), 어떠한 이유로도 이 건물을 위해서는 법정지상권이 성립하지 못한다. 더구나, 丙이 이 건 건물을 낙찰받은 시점은 2003. 12. 18. 전원합의체판결이 선고된 몇 달 이후인데, 필자가 보기에 丙이 법률검토를 완전히 잘못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이 의뢰인 입장에서는, 저당설정된 건물의 임의철거, 그후 토지낙찰, 법정지상권 성립에 관한 논란, 조정성립, 대법원판례 변경, 차임연체에 따른 임대차계약해제, 다시 타인에게 건물낙찰, 다시 철거소송제기와 같이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법적 분쟁에 휘말리는 처지가 되었는데, 이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필자로서도 매우 특별한 경험으로 기억되는 사건이 되고 있다. -이상-
<참고판례>
■ 대법원 1990.7.10. 선고 90다카6399 판결 【건물철거등】

민법 제366조 소정의 법정지상권이 성립하려면 저당권의 설정당시 저당권의 목적되는 토지 위에 건물이 존재할 경우이어야 하는 바, 저당권설정 당시 건물이 존재한 이상 그 이후 건물을 개축, 증축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건물이 멸실되거나 철거된 후 재축, 신축하는 경우에도 법정지상권이 성립한다 할 것이고, 이 경우 법정지상권의 내용인 존속기간, 범위 등은 구 건물을 기준으로 하여 그 이용에 일반적으로 필요한 범위 내로 제한되는 것이다.
■ 대법원 2003. 12. 18. 선고 98다43601 전원합의체 판결 【건물철거등】

[1] [다수의견] 동일인의 소유에 속하는 토지 및 그 지상 건물에 관하여 공동저당권이 설정된 후 그 지상 건물이 철거되고 새로 건물이 신축된 경우에는 그 신축건물의 소유자가 토지의 소유자와 동일하고 토지의 저당권자에게 신축건물에 관하여 토지의 저당권과 동일한 순위의 공동저당권을 설정해 주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저당물의 경매로 인하여 토지와 그 신축건물이 다른 소유자에 속하게 되더라도 그 신축건물을 위한 법정지상권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석하여야 하는바, 그 이유는 동일인의 소유에 속하는 토지 및 그 지상 건물에 관하여 공동저당권이 설정된 경우에는, 처음부터 지상 건물로 인하여 토지의 이용이 제한 받는 것을 용인하고 토지에 대하여만 저당권을 설정하여 법정지상권의 가치만큼 감소된 토지의 교환가치를 담보로 취득한 경우와는 달리, 공동저당권자는 토지 및 건물 각각의 교환가치 전부를 담보로 취득한 것으로서, 저당권의 목적이 된 건물이 그대로 존속하는 이상은 건물을 위한 법정지상권이 성립해도 그로 인하여 토지의 교환가치에서 제외된 법정지상권의 가액 상당 가치는 법정지상권이 성립하는 건물의 교환가치에서 되찾을 수 있어 궁극적으로 토지에 관하여 아무런 제한이 없는 나대지로서의 교환가치 전체를 실현시킬 수 있다고 기대하지만, 건물이 철거된 후 신축된 건물에 토지와 동순위의 공동저당권이 설정되지 아니 하였는데도 그 신축건물을 위한 법정지상권이 성립한다고 해석하게 되면, 공동저당권자가 법정지상권이 성립하는 신축건물의 교환가치를 취득할 수 없게 되는 결과 법정지상권의 가액 상당 가치를 되찾을 길이 막혀 위와 같이 당초 나대지로서의 토지의 교환가치 전체를 기대하여 담보를 취득한 공동저당권자에게 불측의 손해를 입게 하기 때문이다.

[반대의견] 민법 제366조가 법정지상권제도를 규정하는 근본적 취지는 저당물의 경매로 인하여 토지와 그 지상건물이 다른 사람의 소유에 속하게 된 경우에 건물이 철거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사회경제적 손실을 방지하려는 공익상 이유에 있는 것이지 당사자 어느 한편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법정지상권은 저당권설정 당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객관적 요건만으로써 그 성립이 인정되는 법정물권인바, 저당권자가 그 설정 당시 가졌던 '기대'가 어떤 것이었느냐에 의하여 법정지상권의 성립 여부를 달리 판단하는 다수의견은 법정지상권 성립요건의 객관성 및 강제성과 조화되기 어렵고, 토지와 건물 양자에 대하여 공동으로 저당권이 설정된 경우, 원칙적으로 그 공동저당권자가 토지에 관하여 파악하는 담보가치는 법정지상권의 가치가 제외된 토지의 가치일 뿐이고, 건물에 관하여 파악하는 담보가치는 건물 자체의 가치 외에 건물의 존속에 필요한 법정지상권의 가치가 포함된 것이며, 법정지상권은 그 성질상 건물에 부수하는 권리에 불과하므로 구건물이 멸실되거나 철거됨으로써 건물저당권 자체가 소멸하면, 공동저당권자는 건물 자체의 담보가치는 물론 건물저당권을 통하여 파악하였던 법정지상권의 담보가치도 잃게 되고, 이에 따라 토지 소유자는 건물저당권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으로 합당하다. 그러므로 토지 소유자는 그 소유권에 기하여 토지 위에 신건물을 재축할 수 있고, 그 후 토지저당권이 실행되면 신건물을 위한 법정지상권이 성립하며, 다만 그 내용이 구건물을 기준으로 그 이용에 일반적으로 필요한 범위로 제한됨으로써 공동저당권자가 원래 토지에 관하여 파악하였던 담보가치, 즉 구건물을 위한 법정지상권 가치를 제외한 토지의 담보가치가 그대로 유지된다고 보아야 하고, 이것이 바로 가치권과 이용권의 적절한 조절의 모습이다.

[다수의견쪽 보충의견] 민법 제366조가 '저당물의 경매로 인하여 토지와 그 지상건물이 다른 소유자에게 속한 경우'라고 규정하여, 마치 경매 당시에 건물이 존재하기만 하면 법정지상권이 성립할 수 있는 것처럼 규정하고 있지만 위 조문의 해석상 법정지상권이 성립하기 위하여 저당권설정 당시 토지상에 건물이 존재하여야 하고, 따라서 나대지에 저당권설정 후 설정자가 그 지상에 건물을 신축 후 경매로 토지와 건물의 소유자가 달라진 경우에는 그 신축건물을 위한 법정지상권의 성립을 부정하는 것이 판례·통설인바, 이는 이러한 경우에도 건물보호라는 공익적 요청을 고려하여 법정지상권의 성립을 허용하면 당초 건물 없는 토지의 교환가치를 기대한 저당권자의 기대 내지 의사에 반하기 때문에 이러한 당사자의 의사를 고려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이를 미루어 보아 법정지상권제도가 당사자의 의사를 전혀 도외시한 채 건물보호라는 공익적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만 할 수는 없으며, 단독저당, 공동저당 어느 경우나 원칙적으로 저당권설정 당시 존재하던 건물이 헐린 후 재축된 신건물에 대하여는 물권법정주의의 원칙상 법정지상권이 성립될 수 없지만 예외적으로 그 성립을 인정하여도 저당권자의 의사 내지 기대에 반하지 아니하는 경우(단독저당이 여기에 해당한다)에 국한하여 건물보호를 위하여 법정지상권의 성립범위를 확장해석하는 것은 법정지상권의 성립요건의 객관성이나 강제성과는 관련이 없다.
■ 대법원 1992.10.27. 선고 92다3984 판결 【토지인도등】

동일인 소유의 토지와 그 토지상에 건립되어 있는 건물 중 어느 하나만이 타에 처분되어 토지와 건물의 소유자를 각 달리하게 된 경우에는 관습상의 법정지상권이 성립한다고 할 것이나, 건물 소유자가 토지 소유자와 사이에 건물의 소유를 목적으로 하는 토지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관습상의 법정지상권을 포기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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