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부동산거래는 다른 거래에 비해 거래금액이 크고 계약이행과정이 길고 복잡하다. 따라서 계약이행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많다. 이런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합리적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요령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음의 사례를 살펴보자.
서울 용산에 지어지는 빌라 1채를 분양받은 甲은 이 빌라가 완공되기 직전 乙에게 이 빌라를 팔게 되었다. 건물 자체가 아니라 건물이 완성되기 이전에 향후 완성될 건물소유권에 관한 권리는 “분양권”이라고 하는데, 바로 분양권매매를 한 것이다. 이 당시 그 빌라는 공사완공을 불과 2-3개월 앞두고 있는 상태였다. 매매과정에서 ‘대금을 깍아달라’는 매수인의 집요한 요구 때문에 가격절충을 하느라 장시간 실랑이가 벌어졌다. 결국, 이런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대금을 정하고 계약서를 작성하는 단계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직전 무심코 던진 乙의 제안으로 계약서에 기재된 문구 하나가 甲을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한 원인이 된 것이다.
甲이 이 빌라를 분양받는 과정에서 분양대금 납부를 위해 금융기관 대출을 받고 있었는데, 甲․乙간의 이 분양권거래과정에서는 甲의 기존대출을 乙이 그대로 승계하기로 하고 승계되는 금액만큼은 거래금액에서 공제하는 것으로 합의되었다. 그런데, 乙은 분양권매매계약서에 날인 직전에, 분양권 매매잔금을 甲에게 모두 지급한 이후라고 하더라도 빌라건물이 준공되기 이전에까지 발생한 대출이자는 매도자인 甲이 부담해 달라는 새로운 제안을 한 것이다. 분양권거래의 일반적인 관행이나 거래통념에 비추어보면 분양잔금이 상호간에 정산되고 잔금무렵에 대출승계가 이루어지면 대출과 관련된 이자부담은 응당 매수자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인데, 가격절충에 다소 섭섭했던 乙은 대금조정의 한 방편으로 건물준공시까지는 甲이 대출이자부담을 해달라는 제의를 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이런 제안을 받은 甲으로서는, 건물완공을 불과 2-3개월 앞두고 있어 예정된 완공기일까지의 이자부담이 수백만원 정도에 불과하고, 또 가격절충 때문에 워낙 장시간 실랑이를 해서 이 제안을 거절하면 다시 장시간을 실랑이해야 하거나 아니면 계약이 깨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乙의 제안을 수용해버렸다. 이런 경위로 ‘건물준공시까지의 대출이자는 매도자가 부담한다’는 취지의 문구가 계약서 특약사항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런데 불운하게도 그 이후에 빌라 분양회사가 부도나서 빌라건축공사가 2년 이상 진행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다. 이런 상황이 되자 乙은 계약서 문구에 근거해서 건물준공이 되지 않은 2년 이상의 기간 동안에 乙에게 부과된 대출이자 6천여만원을 甲이 부담해야한다고 요구하였고, 급기야는 소송까지 제기하고 있다.

만약 당시 甲이 부동산거래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면,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건물완공이 예상보다 늦어지는 경우가 적지않다는 사실을 고려해서 ‘건물준공시까지의 대출이자는 매도자가 부담한다’는 것과 같은 불확실하고 위험성이 큰 문구 보다는 차라리 매매대금을 몇백만원 낮춰서 합의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방법일 수 있었다. 그렇지만 甲은 부동산거래에 문외한인 관계로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乙의 요구를 법적으로 제대로 거르지 못한채 매우 위험할 수 있는 문구를 그대로 계약서에 넣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격언은 금액이 크고 변수가 많은 부동산거래에 있어 특히 명심되어져야 할 문구가 아닐까한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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