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되는 부동산 법률] 입증책임과 자기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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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중개업소에게 계약체결의 대리권을 위임했는지 여부를 놓고 분쟁이 된 케이스 하나를 소개한다.
■ 사안의 개요
필자의 의뢰인은 매도자인데, 이 의뢰인 주장은 다음과 같다. 이 의뢰인은 자신이 소유한 아파트 1채를 팔기 위해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여러 곳에 매물로 내놓았는데 어느날 한 중개업소로부터 ‘매수자가 나타났으니 계약을 체결하라’는 취지의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연락이 온 시간이 늦은 밤이라 계약현장에 직접 나가 흥정하기도 여의치않았고, 제시하는 금액도 마음에 차지 않아 ‘더 생각해보겠다’는 취지로만 대답했다고 했다. 그후 별다른 연락이 없어 다른 중개업소를 통해 이 아파트를 팔았는데, 나중에 알게 된 바에 의하면 처음 연락 온 중개업소가 의뢰인의 대리인 자격으로 이 아파트를 매매하는 계약서를 그날 작성하고 계약금도 의뢰인을 대신해서 수령했다는 것이었다. 이 의뢰인의 입장에서는 계약을 체결해달라고 위임한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중개업소가 임의로 계약서를 작성한 것이어서 매우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중개업소의 주장은 전혀 상반된다. 늦은 밤에 연락했을 때, 매도자가 직접 나갈 수 없는 상황이니 특정한 금액으로해서 중개업소가 매도자의 대리인 자격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금도 중개업소가 대신 받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장이 대치되는 와중에 중개업소가 받은 계약금은 매수자에게 반환되어졌는데, 결국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알 수도 없이 황당해진 매수자가 단순히 지급한 계약금을 돌려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절한 배상을 요구하다가 여의치않자, 계약금 상당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소송은 매도자를 주위(우선)적 피고로, 중개업소를 예비(차순위)적 피고로 제기되어졌는데, 주위적으로는 매도자가 중개업소를 통해 특정한 금액으로 계약체결을 위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 변심하여 계약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펼쳤고, 예비적으로는 만약 매도자가 중개업소에게 계약체결을 위임하지 않았다면 결국 중개업소가 권한없이 임의로 계약을 체결한 결과가 된다는 점에서 중개업소에게 무권대리인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의뢰인관계를 떠나서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때, 어느 주장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의뢰인이 주장하는 것처럼 매도자의 확답이 없는 상태에서 계약을 성사시켜야겠다는 중개업소의 무리한 욕심으로 발생한 사건일 수도 있고, 아니면 중개업소의 주장과 같이 계약체결을 결정하고 중개업소에 위임한 매도자가 더 높은 가격을 받기 위해 변심한 사건일 수도 있다. 결국, 누군가 한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 입증책임의 원칙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주장을 뒷받침할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면 어느 쪽의 주장이 재판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실제로 이 사건은, 그날 전화통화를 한 의뢰인과 중개업소간에 어떤 내용의 대화가 오갔는지를 확인시켜줄 객관적인 증거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재판부 입장에서는 진실판단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사실관계가 애매하다고 하더라도 재판은 최종적인 승패를 결정할 수 밖에 없는데, 승패를 판단할 때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주장입증책임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은 중개업소에게 계약체결의 대리권이 실제로 주어졌는지 여부가 재판의 관건이 되는데, 매수자인 원고가 매도자에게 승소하기 위해서는 당시 중개업소에게 대리권이 주어져서 유효하게 계약이 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매도자가 이를 무시하고 계약을 위반했다는 점을 입증해야할 책임이 있지만, 이 사건의 경우에는 원고가 이를 입증하지 못하게 되면 즉, 중개업소에게 대리권이 주어져서 계약이 유효하게 체결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입증이 실패하게 되면, 결국 중개업소가 임의로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사실인정되는 경우에는 중개업소에게 배상판결이 선고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수자인 원고로서는 대리권여부에 대한 입증에 성공하건 실패하건간에 매도자나 중개업소 둘 중 하나에 대해서는 승소판결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재판에서 실제 다툼은 원,피고 사이가 아니라 피고들간에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계약체결을 중개업소에 위임했는지에 대해 중개업소와 매도자간에 주장이 완전히 상반되고 재판결과에 따라 중개업소의 책임여부가 좌우되는 상황이 된다는 점에서 중개업소의 진술만으로는 매도자가 계약체결을 중개업소에 위임했다고 인정되기가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결국,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떠나서 입증책임이라는 면에서 볼 때는 매수자가 제기한 소송에서 매도자가 승소하고, 중개업소가 패소할 가능성이 보다 높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위에서 본 사례에서와 같이, 법률행위에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법률행위를 하는 당사자들로서는 반드시 입증책임문제를 먼저 고려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만약 이 사건에서의 중개업소 주장처럼 매도자가 계약체결을 위임했음에도 불구하고 태도를 돌변한 경우라면 중개업소로서는 이러한 가능성을 염두에두고 의뢰인의 의사확인을 뒷받침할 수 있는 팩스나 음성녹음 등 적절한 대응조치를 취했어야하는 것이다. 중개업소 입장에서는 억울한 피해자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를 객관적으로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부동산거래를 업으로 하면서도 자기 스스로에 대한 방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라는 비난은 피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상-
※ 칼럼에서 인용된 판결의 전문은 최광석 변호사의 홈페이지인 www.lawtis.com에서 참고하세요.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 사안의 개요
필자의 의뢰인은 매도자인데, 이 의뢰인 주장은 다음과 같다. 이 의뢰인은 자신이 소유한 아파트 1채를 팔기 위해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여러 곳에 매물로 내놓았는데 어느날 한 중개업소로부터 ‘매수자가 나타났으니 계약을 체결하라’는 취지의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연락이 온 시간이 늦은 밤이라 계약현장에 직접 나가 흥정하기도 여의치않았고, 제시하는 금액도 마음에 차지 않아 ‘더 생각해보겠다’는 취지로만 대답했다고 했다. 그후 별다른 연락이 없어 다른 중개업소를 통해 이 아파트를 팔았는데, 나중에 알게 된 바에 의하면 처음 연락 온 중개업소가 의뢰인의 대리인 자격으로 이 아파트를 매매하는 계약서를 그날 작성하고 계약금도 의뢰인을 대신해서 수령했다는 것이었다. 이 의뢰인의 입장에서는 계약을 체결해달라고 위임한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중개업소가 임의로 계약서를 작성한 것이어서 매우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중개업소의 주장은 전혀 상반된다. 늦은 밤에 연락했을 때, 매도자가 직접 나갈 수 없는 상황이니 특정한 금액으로해서 중개업소가 매도자의 대리인 자격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금도 중개업소가 대신 받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장이 대치되는 와중에 중개업소가 받은 계약금은 매수자에게 반환되어졌는데, 결국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알 수도 없이 황당해진 매수자가 단순히 지급한 계약금을 돌려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절한 배상을 요구하다가 여의치않자, 계약금 상당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소송은 매도자를 주위(우선)적 피고로, 중개업소를 예비(차순위)적 피고로 제기되어졌는데, 주위적으로는 매도자가 중개업소를 통해 특정한 금액으로 계약체결을 위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 변심하여 계약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펼쳤고, 예비적으로는 만약 매도자가 중개업소에게 계약체결을 위임하지 않았다면 결국 중개업소가 권한없이 임의로 계약을 체결한 결과가 된다는 점에서 중개업소에게 무권대리인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의뢰인관계를 떠나서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때, 어느 주장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의뢰인이 주장하는 것처럼 매도자의 확답이 없는 상태에서 계약을 성사시켜야겠다는 중개업소의 무리한 욕심으로 발생한 사건일 수도 있고, 아니면 중개업소의 주장과 같이 계약체결을 결정하고 중개업소에 위임한 매도자가 더 높은 가격을 받기 위해 변심한 사건일 수도 있다. 결국, 누군가 한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 입증책임의 원칙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주장을 뒷받침할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면 어느 쪽의 주장이 재판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실제로 이 사건은, 그날 전화통화를 한 의뢰인과 중개업소간에 어떤 내용의 대화가 오갔는지를 확인시켜줄 객관적인 증거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재판부 입장에서는 진실판단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사실관계가 애매하다고 하더라도 재판은 최종적인 승패를 결정할 수 밖에 없는데, 승패를 판단할 때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주장입증책임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은 중개업소에게 계약체결의 대리권이 실제로 주어졌는지 여부가 재판의 관건이 되는데, 매수자인 원고가 매도자에게 승소하기 위해서는 당시 중개업소에게 대리권이 주어져서 유효하게 계약이 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매도자가 이를 무시하고 계약을 위반했다는 점을 입증해야할 책임이 있지만, 이 사건의 경우에는 원고가 이를 입증하지 못하게 되면 즉, 중개업소에게 대리권이 주어져서 계약이 유효하게 체결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입증이 실패하게 되면, 결국 중개업소가 임의로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사실인정되는 경우에는 중개업소에게 배상판결이 선고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수자인 원고로서는 대리권여부에 대한 입증에 성공하건 실패하건간에 매도자나 중개업소 둘 중 하나에 대해서는 승소판결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재판에서 실제 다툼은 원,피고 사이가 아니라 피고들간에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계약체결을 중개업소에 위임했는지에 대해 중개업소와 매도자간에 주장이 완전히 상반되고 재판결과에 따라 중개업소의 책임여부가 좌우되는 상황이 된다는 점에서 중개업소의 진술만으로는 매도자가 계약체결을 중개업소에 위임했다고 인정되기가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결국,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떠나서 입증책임이라는 면에서 볼 때는 매수자가 제기한 소송에서 매도자가 승소하고, 중개업소가 패소할 가능성이 보다 높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위에서 본 사례에서와 같이, 법률행위에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법률행위를 하는 당사자들로서는 반드시 입증책임문제를 먼저 고려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만약 이 사건에서의 중개업소 주장처럼 매도자가 계약체결을 위임했음에도 불구하고 태도를 돌변한 경우라면 중개업소로서는 이러한 가능성을 염두에두고 의뢰인의 의사확인을 뒷받침할 수 있는 팩스나 음성녹음 등 적절한 대응조치를 취했어야하는 것이다. 중개업소 입장에서는 억울한 피해자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를 객관적으로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부동산거래를 업으로 하면서도 자기 스스로에 대한 방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라는 비난은 피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상-
※ 칼럼에서 인용된 판결의 전문은 최광석 변호사의 홈페이지인 www.lawtis.com에서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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