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천지가 온통 WBC 얘기로 떠들썩하다. 비관이나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 가득 섞인 얘기들이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참가한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의 기세가 세간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거세게 몰아치며 승승장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국의 내로라하는 강팀들을 연파하며 가장 먼저 결승전에 안착한 것은 물론 이 기세대로라면 우승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

제1회 WBC에서 4강에 들었을 때만 해도 각국은 우연 또는 행운 정도로만 여겼지만, 북경올림픽 우승에 이어 이번 대회마저 결승전까지 진출하면서 이제는 우승이 당연하다는 듯 대한민국 야구에 대한 위상이 재조명 받을 정도로 달라지고 있다. 약체로 평가받았던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의 이 같은 파워풀하고 정교한 에너지는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다들 정신력에서 그 해답을 찾고 있다. 큰 경기에서 승리할 때마다 불거져 나오는 단골메뉴다.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한국팀’, ‘병역면제로 인한 동기유발’ 뭐 이런 식이다.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아마추어도 아닌 개성이 강한 프로선수에게 6,70년대 헝그리 정신에서 비롯된 그 정신력 하나로 이 같은 엄청난 반란(?)을 일으켰다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가볍고 진부하다.

정신력에 한 가지를 더할 것이 있다. 바로 감독의 탁월한 리더십이다. 이번 WBC 뿐만 아니라 제1회 WBC부터 북경올림픽을 거쳐 이번 대회에 이르기까지 한국 대표팀 사령탑은 신들린 듯한 작전 구사는 물론 모래알 같은 선수 개개인의 역량을 하나로 결집시켜 최대의 응집력을 발휘할 수 있게 했다. 특히 이번 대회 김인식 감독의 리더십은 국내외 할 것 없이 WBC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이 놀랄 정도의 진수를 보여줬다.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의 승전보처럼 대한민국 부동산시장도 희망적이고 건설적이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성적으로만 보면 예선 1라운드에서조차 패자부활전을 치러야 할 입장이다. 무엇이 문제가 있을까? 부동산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리더가 WBC를 통해 배워야할 정책적 방향이 있다면 어느 것일까?

우선 타이밍이다. WBC에서 한국 대표팀 감독이 보여준 선수 교체 타이밍은 가히 절묘했다. 투수를 비롯하여 타자, 수비수, 대주자 등 교체 타이밍이 신기한 듯 맞아떨어졌다. 그만큼 야구의 전체 흐름이나 선수 하나하나의 진가를 모두 꿰뚫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작전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배어 있었던 결과이다.

부동산정책도 마찬가지다. 거시적인 부동산시장의 흐름은 물론 부동산시장을 구성하고 있는 각 요소(매매, 분양, 전세, 재건축 등)들의 특성과 상호 견련성(牽聯性)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정확하고 확신에 찬 정책을 펼 수 있다. 시장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시장을 잘 알고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얘기다.

어느 때 나아가고 어느 때 물러나야 할지를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다. 무조건적으로 이기기 위해 무리수를 두기보다 때론 누상의 주자를 꽉 채우는 만루작전이 필요하듯 더 나은 승리를 위해서는 일보 후퇴할 줄도 알아야 한다. 효과도 미흡한 규제완화 일변도의 정책만을 고수하다가는 정작 중요한 순간에 내밀 카드가 없어 역풍을 맞을 지도 모를 일이다.

다음으로 일관성이다. WBC 한국야구 대표팀 김인식 감독의 야구는 ‘믿음의 야구’로 대변된다. 선수에 대한 일관된 신뢰, 그 신뢰가 결국 각 선수들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한번 믿으면 선수가 일시 슬럼프에 빠졌어도 그 선수를 빼거나 타순을 변경하지 않고 일관되게 밀고 나간다.

반면 MB정부 부동산정책의 일관성은 어느 정도 견지되었을까? MB정부 부동산 규제완화의 기본 취지는 부동산시장을 활성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실물경기를 회복시키기 위함이다. 부동산시장 활성화는 결국 거래활성화를 염두에 둔 것으로 부동산가격 안정과는 거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제완화 정책을 쏟아낼 때마다 부동산가격 안정을 운운하고 있다.

지난해 9.1세제개편에서 1가구 1주택 비과세 거주요건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가 거래활성화를 저해한다는 반대여론에 밀려 올해 7월 1일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적용시한을 변경한 후 11.3대책에서 아예 없던 일로 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정책에 대한 목표와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지 않은 채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일관성이나 실행력 부재 사례는 그뿐만 아니다. 지난해 9.23종부세 개편안에서 종부세 과세대상을 9억원으로 상향조정하는 사안,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폐지하기로 한 사안 등 원안대로 정책이 실행되지 못하거나 아예 실행이 연기된 사안이 한둘이 아니다. 최근 3월 16일에 발표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도 4월 임시국회에 어떻게 결론이 날지 장담하지 못할 일이다. 정책에 대한 일관성은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신뢰 및 정책효과와 직결되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끝으로 보편타당함이다. ‘믿음’의 야구라는 것은 감독이 선수들에게 신뢰를 주는 것만이 아니라 선수 역시 감독을 믿고 따르는 것이 전제되어야 성사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신뢰보다는 어느 쪽에도 편중되지 않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배치나 작전이 구사되어야 한다.

무릇 정책이라는 것 역시 어느 계층에 치우지지 않아야 하고, 지역의 균형발전을 저해하거나 특정지역만 수혜를 볼 수 있는 그런 정책이어서는 안된다. 물론 정책이라는 것이 때로는 어느 특정계층이나 특정지역을 위해 수립될 수도 있지만 이 경우에도 그 치우침이 소외계층이나 소외지역을 위한 정책으로서 국민의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정책이어야 한다.

그간 MB정부의 부동산정책이 나올 때마다 부유층을 위한 정책, 기업만을 위한 정책, 강남을 위한 정책이라는 꼬리표가 늘 붙어 다녔다. 그도 그럴 것이 종합부동산세 완화, 다주택자 및 비사업용 토지 양도세 중과 폐지, 재건축 규제완화, 수도권 공장(입지)규제 완화, 미분양 세제지원 등 MB정부 부동산정책의 면면을 보면 親기업, 親강남, 親부자라는 색채가 짙게 묻어난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승부처에서의 수비 실수나 실투 및 병살타는 승부를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실책과 다름없다. 그런 실책을 줄이기 위해서는 강한 정신력도 중요하지만 경기를 즐길 줄 아는 여유, 경기흐름에 대한 지배력에서 비롯되는 적절한 작전 타이밍, 선수들이 모두 공감하고 믿고 따를 수 있는 작전구사 등이 한데 어우러져 승화되어야 한다.

정책도 이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WBC가 어두운 경제위기 속에서 온 국민을 잠시나마 피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한줄기 빛과 소금 같은 역할을 했던 것처럼 특정 계층이나 특정 지역에 편중되지 않는 보편타당한 정책을 통해 국민의 대다수가 신뢰할 수 있고, 부동산시장이 제대로 반응할 수 있는 그런 정책이 구사되기를 바랄 뿐이다.

닥터아파트(www.DrApt.com) 이영진 리서치연구소장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