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는 지난 가을에 수확한 양식이 바닥나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5~6월(음력 4~5월), 농가생활에 식량사정이 매우 어려운 고비를 말한다. 최근에는 경제성장과 함께 농가소득도 늘어나 보릿고개라는 말이 실감이 나지 않으나, 일제강점기에서는 두말할 나위 없고 8 ·15광복 후 19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연례행사처럼 찾아들던 우리의 빈곤상(貧困相)을 고스란히 나타내는 말이었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부동산시장이나 경매시장도 요즘 보릿고개가 한창이다. 시기상으로 전통적인 비수기에 접어들고 있음은 물론 일반매물이나 분양물량, 경매물건 할 것 없이 물량이 급감했다. 최근 분양물량이나 경매물건이 제법 늘어나고 있다지만 아직 예년의 전성기(?)에 비해서는 한참이나 모자란다.
지난해 하반기 국제금융위기, 입주물량 여파로 대거 쏟아져 나왔던 일반매물은 최근 강남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상승하는 움직임이 뚜렷해지자 다시 거둬들여지고 있다. 강남권 상승세가 다른 지역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감과 더불어 최근 호조세를 보이고 있는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여타 지역마저 매물들이 속속 들어가고 있다. 경기침체라 하지만 아직은 버틸 여력이 있는지 관망하는 분위기도 여전하다.
분양시장은 어떤가? 최근 분양시장이 호조세를 보이면서 건설사들이 그간 미뤘던 분양물량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올해 들어 4월까지 공급된 물량은 기껏해야 3만1천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공급된 물량의 45% 수준에 불과하다. 부동산시장 회복에 대한 움직임과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 저렴한 분양가 등이 주효해 나름대로 분양시장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지만 이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은 결과이지 경제, 부동산시장, 그리고 분양시장이 완연히 살아난 결과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경매시장은 더욱 열악하다. 올해 들어 4월까지 전국 월평균 경매물건은 약 2만9천5백여건, 외환위기 이후 경매물건이 가장 많이 쏟아져 나왔던 2005년 같은 기간 월평균 경매물건 4만2천5백건 대비 69% 수준에 불과하다. 아파트, 연립ㆍ다세대 등 주거용 부동산으로만 보면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아파트는 올해 월평균 7천건으로 2005년의 60%, 연립ㆍ다세대는 2천건으로 20% 수준으로 급감했다. 연립ㆍ다세대는 그야말로 씨가 마른 상황이다. 물량은 없는데다 경매대중화로 갈수록 입찰자는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경매를 통한 내 집 마련이나 투자가 더욱 어려워졌다.
물량으로만 보릿고개일까. 심리적으로도 보릿고개를 넘고 있는 기분이다. 빈약하지만 어렵사리 밥상을 차려도 먹으면 탈이 나지 않을까, 다른 더 좋은 음식은 없을까 하는 고민 때문에 맘 놓고 섭취를 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이런 보릿고개 장세를 어떻게 넘어가야 할까? 한번쯤 쉬어가는 것도 좋겠지만 한번 맛들인 투자에 대한 향수(?)를 쉽게 잊을 수가 없다. 또 쉬어가다 보면 그간에 익혔던 경매투자에 대한 감도 떨어지고 요즘 경매물건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 마냥 쉬는 것도 옳지 않다.
우선 투자 영역을 넓혀 보자. 경매시장 뿐만 아니라 분양시장이나 일반매매시장으로도 눈을 돌려 보면 물건 찾기가 더 쉬워질 것이다. 아파트의 경우 연 평균 9만5천건 정도가 경매시장에 나오고 있지만 분양물량은 이보다 3배 가까운 25만3천건 정도가 쏟아져 나오고 있고, 아파트 일반매매건수는 한해 평균 90만건에 달한다. 경매시장보다 10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최근 부동산시장 호조세로 일반매물이 거둬들여지고 있다지만 아직까지 오른 지역보다 하락한 지역이 더 많고 그 지역에서는 매물 찾기가 비교적 쉽다. 분양물량 역시 특정지역에 편중되어 있지만 그래도 분양가격이 과거와 달리 주변 집값 시세보다 3.3㎡당 1~2백만원, 많게는 3백만원 이상 저렴하기 때문에 향후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는 단지가 많아졌다.
물론 경매물건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하반기에는 경매투자여건이 조금은 개선되겠지만 사상 최저수준에 머물러 있는 금리 영향으로 예년의 전성기로 되돌아가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가장 작은 시장규모를 형성하고 있는 경매시장에서만 아웅다웅 다투지 말고 분양시장이나 일반매매시장에도 눈을 돌려 경매물건 이상의 시세차익이나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는 물건을 찾아보는 것도 보릿고개를 넘는 한 방편이 될 것이다.
투자종목을 다양화하자. 경매취득의 목적이 실수요가 아니라 투자목적이라면 굳이 주택취득에만 올인할 필요는 없다. 주택경매물건이야 급감했지만 아직도 경매물건 중에는 2005년 수준이거나 그 당시 수준을 뛰어넘을 정도로 물량이 풍부한 종목이 있다. 상가와 토지가 그 예이다.
상가의 경우 2009년 들어 월평균 5천8백건이 경매에 부쳐지고 있는데 이는 2005년 같은 기간 월평균 6천1백건과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물량이다. 토지는 올해 월평균 9천8백건이 경매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2005년 1~4월 평균 7500건에 비해 오히려 물량이 더 늘어났다. 특히 상가는 평균 낙찰가율이 50~60% 정도로 가격메리트가 충분하다는 점에서, 토지는 올해 규제완화(비사업용토지 양도세 중과 폐지, 그린벨트해제 등)로 제2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두 종목에 관심을 둘 만하다.
시장에 대한 확신을 갖자. 보릿고개에 초근목피로 연명해도 희망이 있었던 것은 가을이면 다시 수확을 걷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다. 경매투자에 있어서도 심리적인 보릿고개를 넘어야 한다. 수치상 현격히 매물들이 줄어든 것은 분명하지만 잘 차려놓은 밥상도 먹기 전에 급체를 먼저 생각한다면 밥상이 밥상 같아 보이지 않는 법이다. 그만큼 입맛에 맞는 음식이 제한되듯 우량하다고 판단되는 투자물건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내가 선정한 물건이 활용도나 지역적으로나 진짜 우량하여 나에게 수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지역적 개발호재가 있어 시장이 무너져도 이곳만은 절대 안전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더 크게는 지금의 부동산시장 침체가 머지않은 장래에 회복이 되고 전반적으로 자산가치가 상승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경매든 분양이든 일반매매든 심리적 공황상태를 이겨내고 보다 더 적극적으로 투자에 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리는 낮지만 실물경기침체 장기화로 경매물건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대로라면 추측컨대 올해에는 지난해 31만5천건 이상을 훌쩍 뛰어넘어 35만건 이상이 경매에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 정도면 보릿고개를 벗어나는 수준이다. 희망과 확신을 가지고 소신껏 기다리다 보면 가을이 다가올수록 잘 차려진 밥상이 내 앞에 놓여질 것이다. 그 때를 놓치지 말지어다.

닥터아파트(www.drapt.com) 이영진 리서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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