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칙상 전세가 폭등 장세는 내 집 마련의 호기가 되기도 했다. 외환위기라는 긴 터널을 빠져나오던 2000년과 2001년이 그랬고, 참여정부 부동산 규제가 한참 정점을 향해 치달았던 2004년과 2005년이 그랬다. 불확실한 시장 전망, 거래심리 위축 등으로 매매보다는 전세를 선호하게 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전세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게 되는 반면 매매가는 보합세를 보이거나 하락해 전세가와 매매가 격차가 비교적 근소한 차이로 좁혀졌다고 볼 수 있는 시점들이다. 게다가 전세자금으로 내 집 마련 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전세 살던 집이 신규 취득한 주택의 자금일정에 맞춰 딱 나가느냐 즉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는 것이 쉬운 일이냐 하는 것인데 당시 매매수요보다는 전세수요가 많았던 탓에 이것도 그리 문제되지 않았다. 2000년과 2001년의 경우에는 외환위기 막바지이긴 하지만 그래도 얼어붙은 부동산시장이나 투자심리가 쉽사리 회복되기 어려웠고, 더불어 매매보다는 전세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강했다. 2004년과 2005년에는 참여정부 막바지 부동산규제가 총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국민임대주택단지 건설 계획이 속속들이 발표됐던 때였다. 이제 아파트를 투자수단으로 보는 시대는 끝났다는 의식이 은연중 확산돼갔던 터라 4, 5년 전과 마찬가지로 시장분위기를 지배하는 것은 매매가 아니라 전세였다. 전세난을 틈타 그간 전세 방식이 주를 이뤘던 주택의 임대구조도 월세(보증부월세) 방식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전세수요자는 집주인의 전세가 인상요구에 부응하여 전세가를 올려주거나 보증부월세로 전환하거나 더 싼 곳, 형편에 맞는 곳으로 평형을 줄여 이사를 했고, 전세가 인상분을 대출을 통해 충당해야 하는 일부는 전세가 인상분에 조금의 대출을 더해 아예 주택을 구입하기도 했다. 외환위기 이후 두자릿 수 이상을 기록했던 금리도 한자리수로 떨어지면서 저금리기조로 진입하는 시점이라 대출부담도 그리 크지 않았다. 필자의 경우도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1년전인 2000년에 전세 살던 서초구 양재동 빌라에서 한꺼번에 2천5백만원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요구에 고민하다 후자의 방법을 통해 내 집을 마련했던 적이 있다. 지금이야 결과적으로 천만다행이다 싶고, 집주인에게 오히려 고마움을 표해도(?) 될 성싶지만 당시 그런 결정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2009년부터 올해에 이르기까지 전세 탈출을 위한 또 한번의 기회가 다가왔다. 전세난과 전세가 상승, 주택거래시장 침체로 인한 매매가 보합세 내지 하락세로 전세가와 매매가 격차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전세자금으로 내 집 마련 시 가장 고민되는 부분 중의 하나인 전세 살던 집이 빠질 가능성, 즉 재임대 가능성도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매우 높아졌다. 시장에 대한 불확실성, 보금자리주택의 공급 등으로 특별한 이슈나 호재가 있는 지역을 제외하고는 거래가 거의 올 스톱 상태다. 금리도 6~7% 수준으로 이만하면 감당할 만하다. 전세 탈출을 위한 제반여건이 10여년 전과 매우 흡사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전세난을 틈타 내 집을 마련했다는 사례를 좀처럼 들을 수가 없다. 어디에 문제가 있을까? 바로 매매가와 전세가의 격차에서 비롯된다. 앞서 언급했던 두 시점에 매매가와 전세가의 격차, 즉 매매가대비 전세가 비율은 평균 50%를 넘어 60%, 70%까지 도달했다. 전세가 비율이 60%이면 그간 10%에 해당하는 자금을 비축해뒀다고 가정할 때 나머지 30% 정도는 대출을 통해 매입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만약 비축자금이 없다면 대출비율을 높여도 40%를 넘지 않아 이자부담이 그리 크지 않다. 예컨대, ‘갑’이 전세 살던 어느 30형대 아파트를 매수하고자 하는 경우 매매가가 3억원이고, 전세가가 매매가의 60%인 1억8천만원이라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갑’이 추가 5천만원의 자금이 마련돼 있다면 예전 같으면 ‘갑’은 나머지 7천만원만 대출을 받고 집을 살 수가 있었다. 설령 비축자금이 없다고 해도 대출규모는 1억2천만원으로 40%를 넘지 않는다. 그렇지만 최근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전세가 상승으로 매매가와의 격차가 줄어들고 있지만 그간 매매가 상승 폭이 워낙 컸던 탓에 아직도 전세가 비율이 50%를 넘지 않는다. 전세가 비율이 30%~40% 수준에 머물고 있는 지역이나 단지도 허다하다. 위 사례에서 전세가가 등락을 반복해 2억원까지 올랐지만 매매가는 5억원을 넘을 정도로 큰 폭으로 상승했다. 다행히 1억원의 비축자금이 있다고 해도 매매가의 40%에 해당하는 2억원의 대출이 필요하고, 비축자금이 아예 없는 경우에는 3억원의 대출이 필요하다. 매매가 대비 60%를 대출을 통해 충당해야 하는 만큼 매수자의 이자부담이 만만치 않게 됐다. 쉽사리 전세수요자가 매매로 갈아탈 수 없는 이유이다. 전세가 상승 - 전세 저항 - 거래수요 발생이라는 기존의 경향이 전세가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매매가 폭등으로 여지없이 무너진 셈이다. 그래서 비교적 매매잔금까지의 기간이 길어 자금부담이 덜한 분양시장이나 가격이 비교적 경쟁력이 있는 보금자리주택시장으로 수요가 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전세자금으로 기존 주택을 매입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매매가대비 전세가 비율은 여전히 40% 내외지만 그 비율을 60% 이상으로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전세가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매매가를 대폭 낮추는 식, 바로 경매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85.7%, 84.3%. 각각 수도권과 서울지역에서 경매진행된 아파트의 2009년 평균 낙찰가율 기록이다. 강남권도 85.5%로 수도권 평균을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다. 올해 들어서는 주택시장 침체로 이보다 더 낮은 낙찰가율을 기록 중에 있다. 앞선 사례에서 시세가 5억원(경매감정가와 시세가 같다고 가정)인 서울 소재 30형대 아파트를 경매로 취득하게 되면 낙찰가는 4억2150만원이 된다. 취득제세금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 계산해 전세금 2억원에 비축자금 1억원을 뺀 나머지 1억2150만원만 대출을 통해 충당하면 된다. 대출비율이 고작 28.8% 정도다. 재건축을 통해 입주한지 얼마 안 된 송파구 잠실동에 소재한 아파트들도 같은 방법을 통해 대출비율을 상당수 줄일 수 있다. 잠실동 새아파트 30평대 전세 평균가는 4억2500만원, 매매 평균가는 10억5000만원 정도. 전세가 비율이 40.5%로 그나마 강남권에서는 괜찮은 수준이다. 전세보증금외 비축자금이 1억원 정도 있다고 가정할 때 매매를 통해 유사 규모의 주택을 구입하면 매입가의 절반인 5억2500만원을 대출받아야 하지만, 경매로 취득하는 경우 대출 규모는 3억7275만원[= (10억5000만원 x 85.5%) - (4억2500만원 + 1억원)]으로 줄어든다. 대출비율이 50%에서 35.5%로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물론 경매물건이 일반매매물건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 않아 대상물건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지만 향후 경매물건이 더 늘어날 소지가 많고 주택시장 침체로 낙찰가율 또한 하향안정세를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경매는 전세 탈출의 비상구 내지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닥터아파트(www.drapt.com) 이영진 리서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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