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년 한해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달력으로야 한 장이 남겨져 있지만 부동산시장에서 느껴지는 것이나 스산한 날씨에서 비롯되는 체감온도는 벌써 겨울인양 냉랭하기 그지없다.

전세난에 힘입은(?) 듯 국지적으로야 거래의 온기가 전해지고 있다지만 아직은 시장 전체를 데울 만큼 파급력이 있지 못하다. 수면 아래에서는 뭔가 꿈틀대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그 꿈틀거림이 집약돼 수면위로 뚫고 올라올만한 동력이 부족한 탓이다.

아직 올 한해가 마무리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부동산시장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양극화’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세시장과 매매시장이라는 큰 틀의 양극화를 비롯하여 지방과 수도권이라는 지역적 양극화, 임대와 분양이라는 주택유형의 양극화 및 중소형과 중대형의 규모의 양극화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 걸쳐 양극화가 발생하거나 더욱 심화됐다.

아직 남아있는 한 달여 동안 국지적 온기 확산에 힘입어 부동산시장 지표가 조금은 개선될 수는 있어도 올 한해를 지배한 ‘양극화’라는 인식은 지우기 어려울 성싶다. 양극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전개됐는지 살펴보자.

[전세시장과 매매시장] 올해 가장 뚜렷하게 대조를 이뤘던 분야이다. 올 한해 전세가는 전국적으로 5.36%(수도권 5.32%) 상승한 반면 매매가는 -1.62%(수도권 -2.96%) 하락했다.

통상 매매가가 상승하면 전세가도 동반 상승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시장 침체가 장기화될 때에는 매매수요보다는 전세수요가 늘어나게 돼 매매가 하락과 전세가 상승이라는 양극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전세가 등락은 입주물량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거래가 위축된 상황에서는 입주물량이 많아도 폭증하는 전세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전세가가 상승하게 된다. 2008년 하반기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현재까지가 딱 그러한 상황이다.

[지방과 수도권] 지방과 수도권 부동산시장은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지방은 2008년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1월부터 하락세로 접어들었다가 2009년 5월부터 다시 상승세로 전환된 후 현재까지 그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반면 수도권은 지방보다는 한달 빠른 2009년 4월부터 회복세로 접어들었으나 9월부터 시작된 DTI규제 확대를 계기로 하락세로 접어든 후 10월말 현재까지 마이너스 변동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 들어 11월 첫 주까지 지방지역 아파트 매매가 변동률은 2.79%를 기록한 반면 수도권은 -2.96%를 기록했다.

미분양물량 증감도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지방은 신규분양 감소, 미분양 매입, 업계 분양가 할인 및 세제 감면 등으로 18개월 연속(9월말 기준) 미분양(7만1124호)이 감소하고 있는 반면 수도권 미분양은 오히려 증가(8월 2만8152호, 9월 2만9201호)했다. 전국 미분양이 최고점에 이르렀던 2008년 12월(지방 13만8671호, 수도권 2만6928호) 대비 지방은 48.7%가 감소했지만 수도권은 오히려 8.4%가 증가했다.

[중소형과 중대형] 시장의 호ㆍ불황에 따라 부침이 심한 것은 아무래도 중대형아파트(전용면적 85㎡ 초과)일 수밖에 없다. 중소형아파트(전용면적 85㎡이하)는 실수요나 투자수요층이 두텁고 비교적 가격대가 높지 않아 시장영향에 따른 가격 변동폭이 그리 크지 않지만 투자수요가 주를 이루는 중대형아파트는 높은 가격대만큼이나 가격 변동폭도 크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올해 중소형보다는 중대형아파트에서 가격 하락세가 더 심했던 것은 물론이려니와 전체 미분양에서 중대형이 차지하는 비중이 60%(국토해양부 자료)에 달한 것으로만 봐도 중대형아파트가 소비자들에게 얼마나 외면당했는지를 가늠할 수가 있다. 최근 주택시장에 온기가 전해지고 있는 것도 중대형보다는 전세가와 매매가 가격차가 눈에 띄게 좁혀진 중소형아파트를 중심으로 하는 거래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임대아파트와 분양아파트] 부동산 거래 침체로 인한 전세수요 증가는 분양시장에서 임대아파트 인기 상승으로 귀결됐다. 일반분양아파트는 중소형에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을 뿐이고, 중소형조차 입지가 열악하거나 분양가가 높은 경우에는 여지없이 미분양이 발생했다. 가격경쟁력을 최대의 무기로 삼고 혜성처럼 등장했던 보금자리주택마저 미분양이 대거 발생했다.

반면 임대아파트는 그 임대주택 유형(공공임대, 국민임대, 장시전세주택, 민간임대)이 무엇이건 간에 대부분 순위내 청약이 완료됐고, 지역(송파, 강동, 성남, 수원, 의왕, 안양)을 불문하고 인기를 끌었다. 특히 가장 최근(11월 4일) 분양한 판교 고급 민간임대아파트 호반써밋플레이스(198세대)가 보증금 6억9300만원, 월임대료 160~164만원에 분양됐음에도 불구하고 평균 3.7대 1의 경쟁률로 1순위 마감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적도 있다.

더불어 아파트 대체 상품이면서 임대수익을 누릴 수 있는 오피스텔이 분양아파트와 달리 수십대 일의 청약경쟁률을 기록할 정도로 모처럼의 인기를 끌었던 것도 올 한해 ‘양극화’라는 키워드의 한 획을 보탰다.

올해도 결국 ‘양극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더욱 심화된 꼴이 되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양극화가 투자자들에게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양극화가 진행됐다는 것은 어느 한쪽으로 수요가 쏠렸다는 것을 뜻한다. 이를 달리 해석하면 수요가 쏠렸던 쪽은 그만큼 수요가 안정적이라는 것을, 그렇지 않은 쪽은 수요가 다소 불안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상품이나 어떤 지역에 대한 수요의 안정ㆍ불안정에 대한 판단은 투자자에게는 나름의 투자 가이드와 다름없다. 이를테면 현 시장상황을 기준으로 안정적인 투자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가급적 중소형아파트나 오피스텔에 투자하고, 투자에 보다 더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수도권 중대형 미분양아파트에 투자하라는 일련의 지침 같은 것이다. 닥터아파트(www.drapt.com) 이영진 리서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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