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저축은행 가락동 본점.  /한경DB
KB저축은행 가락동 본점. /한경DB
KB저축은행에서 6년 넘게 대출 서류를 조작해 은행 돈 94억원을 빼돌린 직원이 구속됐다. 이 직원은 횡령한 돈 대부분을 도박으로 탕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횡령 사고가 잇따르자 금융당국은 저축은행 업계와 내부통제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8일 경찰과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 송파경찰서는 KB저축은행 직원이었던 40대 남성 A씨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전날 오후 구속했다. 앞서 KB저축은행은 지난해 12월 자체 감사에서 A씨의 횡령 사실을 발견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에 따르면 KB저축은행에서 기업금융 업무를 담당했던 A씨는 2015년 5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대출 서류를 조작해 총 94억원의 기업 대출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당초 KB저축은행이 내부 감사를 통해 파악한 횡령액은 약 78억원이었는데 경찰 조사 과정에서 더 늘었다.

A씨는 기업이 은행에 정상 대출을 요청하는 것처럼 허위로 서류를 꾸민 뒤 대출금을 어머니 계좌로 빼돌린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이렇게 빼돌린 돈 90% 이상을 도박으로 탕진했으며, 경찰 조사에서 자신의 범행을 모두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조만간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KB저축은행 관계자는 "자금 회수를 위해 해당 직원에 대한 재산 압류와 더불어 저축은행이 가입해둔 종합보험 청구 절차를 진행 중"이라며 "보험금이 정상 지급될 경우 저축은행의 최대 피해금액은 자기 부담금인 30억원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 "내부통제 강화 지도"

최근 금융사 직원들의 대규모 횡령 사건이 잇따르면서 금융사의 내부통제 부실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앞서 지난 4월 우리은행 직원이 10년 동안 회삿돈 약 614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을 일으켰고, 지난 1월에는 모아저축은행 직원이 약 59억원의 기업 대출금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번 KB저축은행 횡령 사고에 대해 금융감독원은 금융사의 자체 대응을 점검하고 저축은행 업계와 진행하고 있는 내부통제 개선 방안 논의에 속도를 내겠다는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내부 통제 절차 개선에 대해 업계와 논의 중"이라며 "특히 사고 위험이 높은 업무에 대해선 권한 분리, 업무 세분화 등을 통해 상호 견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실제 금융사의 횡령 사고는 기업금융 부문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금융사는 기업 대출을 내줄 때 현장 실사, 리스크 평가 등 교차 확인 절차를 거치고 여신심사위원회 등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문제가 된 금융사에서는 이런 과정이 허술하게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
사진=김범준 기자
사진=김범준 기자
금융당국의 검사 미비도 다시 도마에 오르게 됐다. 금감원은 KB저축은행 같은 대형 저축은행에 대해 2년에 한 번 꼴로 검사를 하고 있다. 문제의 직원이 횡령을 한 2015~2021년 동안 금감원은 KB저축은행에 대해 최소 세 차례 검사를 실시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세부적인 업무가 정상적으로 이뤄지는지 여부는 해당 금융사의 준법감시·감사 부서에서 점검하고, 금감원은 그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이기 때문에 담당 직원이 계획적으로 횡령을 은닉하면 적발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앞으로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지도와 감독을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