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로도 맹활약한 송해…"우리를 울리고 웃긴 만능엔터테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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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대 음반 발매 '기록'도…"함께 무대 안 서본 가수 거의 없을 듯"
![가수로도 맹활약한 송해…"우리를 울리고 웃긴 만능엔터테이너"](https://img.hankyung.com/photo/202206/PYH2022060812480005300_P4.jpg)
8일 가요계에 따르면 송해는 생전 가요 모음집을 비롯해 10장이 넘는 음반을 낸 가수였다.
황해도 재령 출신인 그는 1955년 창공악극단에 가수로 입단하며 연예 활동의 첫발을 내디뎠다.
해주예술전문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했던 그는 30년 넘게 진행해 온 '전국노래자랑' 프로그램에서도 구성지게 노래 한 곡조를 뽑아내며 가수 못지않은 수준급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송해는 1967년 가수 김상희, 배호 등과 함께 첫 가요 음반을 발매한 것으로 전해진다.
'뜨거워서 싫어요', '농부의 딸' 등의 곡이 수록된 이 음반에서 송해는 '노총각 맘보', '피양체네'('평양처녀'의 평안도 사투리) 두 곡을 불렀다.
한 시절을 풍미한 가요를 엄선한 '송해 표' 가요 모음집도 주목받았다.
1980년에 발표한 '송해의 가요 산책' 음반은 '짝사랑', '울고 넘는 박달재' 등 평소 그가 즐겨 부르던 노래를 모아 불렀다.
이후에도 '애창가요 모음집 송해쏭', '송해 아흔즈음에' 등 송해의 이름을 건 가요 모음집도 여럿 나왔다.
![가수로도 맹활약한 송해…"우리를 울리고 웃긴 만능엔터테이너"](https://img.hankyung.com/photo/202206/AKR20220608102700005_01_i_P4.jpg)
이처럼 노래와 꾸준한 인연을 이어오던 송해는 국내 '최고령' 음반이라는 기록을 세워 모두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2018년 91세의 나이에 '딴따라' 음반을 발매했고, 1년 뒤에는 '내 고향 갈 때까지' 싱글 음반으로 자신이 갖고 있던 최고령 음반 취입 기록을 경신했다.
이 곡에서 그는 '발을 뻗으면 닿을 것 같고 / 소리 지르면 들릴 것도 같은데 / 칠십 년이 흘러가도 돌아갈 수 없구나'라며 지금은 닿을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했다.
30년 넘게 노래 경연 프로그램을 진행해 온 그의 이름을 딴 가요제도 있었다.
송해는 2017년 가수의 꿈을 갖고 있지만 어려운 환경에 있거나 기회가 없어 데뷔하지 못하는 지망생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송해 가요제'를 개최했다.
그는 당시 기자 간담회에서 "가요 백년사의 기쁨과 슬픔을 전하고, 여러 가수가 (가요제) 행사를 통해 더 알려지고 새롭게 조화를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가요제 개최 이유를 밝혔었다.
![가수로도 맹활약한 송해…"우리를 울리고 웃긴 만능엔터테이너"](https://img.hankyung.com/photo/202206/AKR20220608102700005_02_i_P4.jpg)
MC, 코미디언, 가수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송해는 국내 '최고령 단독 콘서트' 주인공이기도 하다.
송해는 80대 중반이던 2011년 첫 단독 공연인 '나팔꽃 인생 60년 송해 빅쇼'를 열어 10여 곡의 노래를 불렀다.
'나팔꽃 인생'은 과거 송해가 직접 부른 노래 제목이다.
당시 그는 "제 노래가 듣기 좋진 않아도 제 나름대로 열심히는 부른다"며 "그간 살아오면서 고난의 순간을 만나면 노래로 풀었고 노래를 음미하며 살아왔다"고 돌아보기도 했다.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는 "송해 선생님은 1960년대부터 다양한 음반을 내왔다"며 "노래를 부를 때도 듣는 사람의 마음을 잘 쓰다듬고 헤아려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박 평론가는 "'국민 MC' 송해와 함께 무대에 서지 않은 가수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오랫동안 국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감동을 줬던 최고의 스타"라고 추모했다.
![가수로도 맹활약한 송해…"우리를 울리고 웃긴 만능엔터테이너"](https://img.hankyung.com/photo/202206/AKR20220608102700005_03_i_P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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