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재의 스타트업 생생스토리] 사냥을 하려면 정글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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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면 빨리 현장에 와서 책임져야 할 것 아닙니까!”
한 달 전쯤 늦은 저녁 걸려 온 전화. 수화기 너머 고객사 담당자는 당장이라도 달려와 멱살을 잡을 기세였다. 얼마 전 국내 모 대기업 생산 현장에 공급한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생겼고 담당자는 급한 마음에 대표인 내게 연락한 것이다. 나는 대학교수이자 동시에 창업한 기업을 이끌고 있다. 현재 삶의 반은 대학교수로, 그리고 나머지 반은 창업한 기업의 리더로 살고 있다.
환자 진료도 보고 연구도 하는 의대 교수인 친구가 환자에게 멱살 잡히고 욕을 먹어본 적 있다며 이런 나를 위로했다. 그러나 의대 교수와 스타트업을 창업한 교수는 엄연히 다르다. 의대 교수야 대학병원이란 틀에서 정해진 업무만 담당하면 되지만, 스타트업 대표는 말이 대표지 수만 가지 잡일을 다 신경 써야 한다. 이런 두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은 어느 초등학생의 질문에서부터였다.
“교수님은 무엇을 직접 만들어 보셨나요? 발명한 게 있나요?”
몇 년 전 학교를 견학하려고 온 초등학생의 질문이 나를 당황하게 했다. 공학이 무엇이냐고 묻는 학생에게 ‘사회에서 필요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에요’라는 무미건조한 교과서적 답을 하자 나온 질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합당한 질문이 나를 당황하게 할 줄은 나도 몰랐다. 과연 공학 교수로서 나는 무엇을 만들었는가. 뭔가 하나라도 만들고 학생들에게 공학을 가르치고 있는 것인가.
공학은 크게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construct)하는 영역과 이미 만들어진 것을 분석(analysis)하는 영역으로 나뉜다. 창조의 영역도 중요하지만 이미 창조한 것을 잘 분석해야 더 나은 창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공학 연구의 대부분은 창조보다 분석에 치중돼 있다. 더구나 교수 임용이나 승진에 필요한 실적인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창조보다 분석이 더 필요하다. 즉 내가 교수로서 당당히 내놓을 수 없는 창조물이 없는 것은 모두 대한민국의 현실 탓이야…라고 합리화해 봤지만, 나 자신도 썩 설득되지 않고 궁색하기만 했다.
무언가를 만들고 창조하기 위해 창업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실 창업 전에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기술 라이선싱도 해보고, 시제품을 만들어 대기업에 공급도 해봤다. 그러나 아이디어나 시제품 공급만으로 시장을 바꾸고 혁신을 주도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세계적 명품 스피커 브랜드인 보스(Bose)사를 창업한 아마르 보스 교수가 창업에 관해 이야기할 때 늘 던지는 화두가 있다. “사냥을 하려면 동물원이 아니라 정글로 가라.”
진정한 기술 혁신으로 산업을 바꾸려면 직접 현장에 뛰어들고 현업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며 문제가 무엇인지, 현장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체험하고 오감으로 느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 산업 현장을 접할 때 대학교수로 방문할 때와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작은 기업의 대표로 현장을 방문할 때 듣는 현장 이슈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이제까지 알았던 공학의 이론이 왜 현장에서는 적용되기 어려운 것인지, 학계 학술지나 정부 보고자료와 현실이 얼마나 괴리가 있는지 직접 이해 당사자로 참여하지 않으면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동물원 사파리 안에서 길들여진 사자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생존하는 정글의 사자는 같은 종의 사자가 아니다.
모든 공대 교수가 창업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실제 산업 현장에서 문제를 직접 느끼며 창업을 통해 산업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그 과정에서 학문적, 교육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기술 창업을 장려하는 최근 대한민국 교육 정책을 봐서도 창업을 경험해본 교수가 어느 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장영재 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한 달 전쯤 늦은 저녁 걸려 온 전화. 수화기 너머 고객사 담당자는 당장이라도 달려와 멱살을 잡을 기세였다. 얼마 전 국내 모 대기업 생산 현장에 공급한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생겼고 담당자는 급한 마음에 대표인 내게 연락한 것이다. 나는 대학교수이자 동시에 창업한 기업을 이끌고 있다. 현재 삶의 반은 대학교수로, 그리고 나머지 반은 창업한 기업의 리더로 살고 있다.
환자 진료도 보고 연구도 하는 의대 교수인 친구가 환자에게 멱살 잡히고 욕을 먹어본 적 있다며 이런 나를 위로했다. 그러나 의대 교수와 스타트업을 창업한 교수는 엄연히 다르다. 의대 교수야 대학병원이란 틀에서 정해진 업무만 담당하면 되지만, 스타트업 대표는 말이 대표지 수만 가지 잡일을 다 신경 써야 한다. 이런 두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은 어느 초등학생의 질문에서부터였다.
“교수님은 무엇을 직접 만들어 보셨나요? 발명한 게 있나요?”
몇 년 전 학교를 견학하려고 온 초등학생의 질문이 나를 당황하게 했다. 공학이 무엇이냐고 묻는 학생에게 ‘사회에서 필요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에요’라는 무미건조한 교과서적 답을 하자 나온 질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합당한 질문이 나를 당황하게 할 줄은 나도 몰랐다. 과연 공학 교수로서 나는 무엇을 만들었는가. 뭔가 하나라도 만들고 학생들에게 공학을 가르치고 있는 것인가.
초등생 질문이 '창업의 길' 이끌어
의대 교수 대부분은 실제 환자를 진료하고, 로스쿨도 실무 경력이 있는 변호사 출신을 교수로 임용한다고 한다. 그런데 공대 교수 중에서 실제 산업현장에서 실무 공학을 접해본 사람은 왜 이리 없을까. 공대 교수도 최소한 무언가를 만들거나 창조하면서 학생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국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하자 일종의 변명과 같은 답만 떠올랐다.공학은 크게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construct)하는 영역과 이미 만들어진 것을 분석(analysis)하는 영역으로 나뉜다. 창조의 영역도 중요하지만 이미 창조한 것을 잘 분석해야 더 나은 창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공학 연구의 대부분은 창조보다 분석에 치중돼 있다. 더구나 교수 임용이나 승진에 필요한 실적인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창조보다 분석이 더 필요하다. 즉 내가 교수로서 당당히 내놓을 수 없는 창조물이 없는 것은 모두 대한민국의 현실 탓이야…라고 합리화해 봤지만, 나 자신도 썩 설득되지 않고 궁색하기만 했다.
강단과 현장은 '하늘과 땅' 차이
더구나 산업에 직접 기여하기 위해 탄생한 산업공학과 교수로서 창조의 경험이 없는 내가 산업공학 교수로서 자격이 있을까. 학생들에게 부끄럽다는 생각이 물밀듯 몰려왔다. 그날 저녁 10년 이상 연구하던 공장 자동화 분야에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 보기로 결심하게 됐다. 창업의 시작이었다.무언가를 만들고 창조하기 위해 창업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실 창업 전에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기술 라이선싱도 해보고, 시제품을 만들어 대기업에 공급도 해봤다. 그러나 아이디어나 시제품 공급만으로 시장을 바꾸고 혁신을 주도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세계적 명품 스피커 브랜드인 보스(Bose)사를 창업한 아마르 보스 교수가 창업에 관해 이야기할 때 늘 던지는 화두가 있다. “사냥을 하려면 동물원이 아니라 정글로 가라.”
진정한 기술 혁신으로 산업을 바꾸려면 직접 현장에 뛰어들고 현업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며 문제가 무엇인지, 현장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체험하고 오감으로 느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 산업 현장을 접할 때 대학교수로 방문할 때와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작은 기업의 대표로 현장을 방문할 때 듣는 현장 이슈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이제까지 알았던 공학의 이론이 왜 현장에서는 적용되기 어려운 것인지, 학계 학술지나 정부 보고자료와 현실이 얼마나 괴리가 있는지 직접 이해 당사자로 참여하지 않으면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동물원 사파리 안에서 길들여진 사자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생존하는 정글의 사자는 같은 종의 사자가 아니다.
모든 공대 교수가 창업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실제 산업 현장에서 문제를 직접 느끼며 창업을 통해 산업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그 과정에서 학문적, 교육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기술 창업을 장려하는 최근 대한민국 교육 정책을 봐서도 창업을 경험해본 교수가 어느 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장영재 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