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송해의 4無 4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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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MC’ 송해에겐 자동차가 없었다. 통신병 출신인 그는 특수차량 면허까지 갖고 있었지만 이동할 때마다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운전기사와 함께 ‘닫힌 공간’에 갇혀 있는 것보다 대중과 어울리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 흔한 휴대폰도 없었다. 노인용 피처폰마저 “소음 공해만 일으킨다”며 마다했다.
방송 현장에 필수적인 큐 카드(대본 등이 적힌 종이)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어쩌다 신인 가수를 소개해야 할 때만 큐 카드를 썼다. 그에게는 ‘안티팬’이 없었다. 온라인 투표에서 조용필, 현숙과 함께 ‘가장 안티팬이 없는 연예인’으로 뽑혔다. 댓글도 ‘선플’만 달렸다.
연예계의 ‘4무(無) 스타’로 불린 그는 ‘4건(健) 스타’로도 이름났다. 그가 밝힌 첫 번째 건강 비결은 버스(B)와 지하철(M), 도보(W)로 움직이는 ‘BMW’였다. 그는 서울 매봉역 인근 자택에서 원로연예인상록회 사무실이 있는 종로3가역까지 지하철 3호선을 타고 다녔다. 지방 공연 때도 버스나 KTX로 이동했다.
두 번째 건강 비결은 목욕이었다. 매일 오후 4시 사무실 근처 목욕탕에서 다리와 팔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체내 노폐물을 걸러냈다. ‘전국노래자랑’ 녹화 땐 하루 전날 현장에 도착해 대중목욕탕에서 동네 주민들과 어울리며 지역 정보를 공유했다.
목욕으로 심신을 가다듬은 뒤에는 우거지국밥과 마늘을 즐겨 먹었다. 우거지에는 풍부한 섬유질과 칼슘, 비타민A, C, B1, B2 등이 들어 있다. 마늘은 묽은 간장에 절인 장아찌를 좋아했다. 또 다른 비결은 튼튼한 치아 관리다. 한 달에 두세 번 치과를 방문한 덕에 만년까지 빠진 이가 하나도 없었다.
95세까지 왕성하게 경제활동을 한 전문가 정신과 낙관적인 ‘긍정주의자의 꿈’ 또한 삶의 활력소로 작용했다. 6·25 때 월남한 그는 가족과 생이별한 바다를 잊지 않기 위해 예명을 ‘바다 해(海)’로 짓고 본명 송복희 대신 송해로 살면서 늘 웃음을 잃지 않았다. 세계 최고령 MC로 기네스북에 오르고도 겸손해하던 그가 어제 우리 곁을 떠났다.
지난 설날 안방극장에서 수많은 이를 울린 그의 노랫가락이 아직 귓가에 맴돈다. “눈도 맞고 비도 맞고 앞만 보고 달려왔었네 (…) 괜찮아 이만하면 괜찮아 내 인생 딩동댕이야.” 이젠 그의 목소리를 ‘천국노래자랑’에서나 듣게 될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방송 현장에 필수적인 큐 카드(대본 등이 적힌 종이)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어쩌다 신인 가수를 소개해야 할 때만 큐 카드를 썼다. 그에게는 ‘안티팬’이 없었다. 온라인 투표에서 조용필, 현숙과 함께 ‘가장 안티팬이 없는 연예인’으로 뽑혔다. 댓글도 ‘선플’만 달렸다.
연예계의 ‘4무(無) 스타’로 불린 그는 ‘4건(健) 스타’로도 이름났다. 그가 밝힌 첫 번째 건강 비결은 버스(B)와 지하철(M), 도보(W)로 움직이는 ‘BMW’였다. 그는 서울 매봉역 인근 자택에서 원로연예인상록회 사무실이 있는 종로3가역까지 지하철 3호선을 타고 다녔다. 지방 공연 때도 버스나 KTX로 이동했다.
두 번째 건강 비결은 목욕이었다. 매일 오후 4시 사무실 근처 목욕탕에서 다리와 팔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체내 노폐물을 걸러냈다. ‘전국노래자랑’ 녹화 땐 하루 전날 현장에 도착해 대중목욕탕에서 동네 주민들과 어울리며 지역 정보를 공유했다.
목욕으로 심신을 가다듬은 뒤에는 우거지국밥과 마늘을 즐겨 먹었다. 우거지에는 풍부한 섬유질과 칼슘, 비타민A, C, B1, B2 등이 들어 있다. 마늘은 묽은 간장에 절인 장아찌를 좋아했다. 또 다른 비결은 튼튼한 치아 관리다. 한 달에 두세 번 치과를 방문한 덕에 만년까지 빠진 이가 하나도 없었다.
95세까지 왕성하게 경제활동을 한 전문가 정신과 낙관적인 ‘긍정주의자의 꿈’ 또한 삶의 활력소로 작용했다. 6·25 때 월남한 그는 가족과 생이별한 바다를 잊지 않기 위해 예명을 ‘바다 해(海)’로 짓고 본명 송복희 대신 송해로 살면서 늘 웃음을 잃지 않았다. 세계 최고령 MC로 기네스북에 오르고도 겸손해하던 그가 어제 우리 곁을 떠났다.
지난 설날 안방극장에서 수많은 이를 울린 그의 노랫가락이 아직 귓가에 맴돈다. “눈도 맞고 비도 맞고 앞만 보고 달려왔었네 (…) 괜찮아 이만하면 괜찮아 내 인생 딩동댕이야.” 이젠 그의 목소리를 ‘천국노래자랑’에서나 듣게 될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