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지난해에도 미국을 제치고 중남미 국가들의 최대 교역국 자리를 지킨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2018년부터 ‘미국의 뒷마당’이라 불리던 중남미에서 교역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막대한 투자금을 동원해 중남미 국가들을 포섭한 결과다. 미국은 중남미 국가들과 경제협정 체결에 나섰지만, 시작부터 삐끗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남미 경제 주도권 중국에 넘어가

中에 기운 중남미…美 '경제동맹' 구상 흔들
8일(현지시간) 로이터는 2015~2021년 유엔 무역통계를 인용해 미국이 멕시코를 제외한 중남미 지역에서 최대 교역국 지위를 중국에 빼앗겼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멕시코를 제외한 중남미 국가와 중국 간의 수출입 규모는 2470억달러(약 311조원)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미국은 1740억달러(약 219조원)에 그쳤다.

미국과 중국의 지위는 2018년 뒤바뀌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 틈을 타 중국은 곡물, 금속 등에 투자하며 영향력을 확대했다. 브라질 컨설팅업체 BMJ의 웰바 바랄 파트너는 “중국은 교역량을 늘리려 현지 운송 및 인프라에 투자했다”며 “하지만 미국은 미사여구만 늘어놓는 경우가 잦았다”고 말했다.

미국은 구체적인 방안 없이 ‘빈손’으로 남미를 설득하려 했다는 설명이다. 중국은 중남미 각국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칠레, 페루, 브라질 등의 최대 교역국 자리에 올랐다. 중국은 중남미에서 대두, 옥수수 등 곡물을 비롯해 구리를 대량 수입하고 있다. 무역 규모를 늘리기 위해 인프라 투자에도 나섰다. 지난 7일 중국의 선사 코스코는 30억달러를 들여 페루에 항구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중남미 주요 국가 중 멕시코에서만 미국이 중국을 압도했다. 1990년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뒤 꾸준히 경제협력을 지속하고 있어서다. 미국과 멕시코의 교역 규모는 2015년 4960억달러에서 지난해 6070억달러로 늘었다. 중국은 같은 기간 750억달러에서 1100억달러로 확대됐다.

中 견제 계획 시작부터 차질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이날 로스앤젤레스에서 ‘제9차 미주정상회의’를 열었다. 미주정상회의는 미주 대륙 35개국이 3~4년에 한 번씩 모여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28년 만에 회의를 개최한 미국은 오는 10일까지 세 번에 걸친 정상회의에서 중남미 국가와 경제협정을 논의할 방침이다.

미국 정부는 이번 회의에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를 본떠 중남미 국가와 ‘경제 번영을 위한 미주 파트너십(APEP)’을 체결할 예정이었다. 디지털 경제의 표준 마련과 신기술 지원, 식량 공급 등 IPEF와 비슷한 안건을 다루기로 했다. 미주개발은행(IDB)을 통해 중남미 투자를 활성화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미국의 계획은 회의 시작 전부터 삐끗했다. 미국은 ‘독재자’라는 이유를 들어 쿠바, 니카과라, 베네수엘라 정상들을 초청 대상에서 제외했다. 과테말라와 온두라스 정상은 이에 반발해 불참을 선언했다. 중도 성향인 안드레스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도 회의 참석을 거절했다.

미국에는 멕시코가 불참한 게 뼈아팠다. 최대 교역국이자 중남미 2위 경제 대국인 멕시코를 빼놓고 이민자 문제와 무역 현안 등 주요 안건을 다루기 어려워서다. 이번 회의에서 경제협정을 맺어도 반쪽짜리 성과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미주정상회의에 초대받지 못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회의 개막일인 8일 터키로 떠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을 만났다. 같은 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에 대응하려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인 후안 과이도와 전화 통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 통화에서 베네수엘라 야권이 정부와 협상을 재개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했다.

마두로 대통령 대신 과이도를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있는 미국은 당초 이번 미주정상회의에 과이도를 초청하는 방안도 고려했다. 블룸버그는 미국 정부가 다른 중남미 국가들의 반발을 의식해 초대를 철회했다고 전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