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가 안전운임제의 긍정적인 효과를 검증한 최종 용역 보고서를 들고서도 정치 논리에 갇혀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이날 전국 시멘트 공장의 출하량은 사실상 제로(0)다. 이런 상황이 2~3일만 더 이어지면 건설 현장의 셧다운(공사 중단)도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높다. 주류·철강·자동차 등 다른 산업으로도 물류난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를 요구하는 화물연대는 정부의 확답 없인 총파업을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국토부는 연일 "큰 차질은 없다"고 반복하며 안전운임제 존속 여부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다. "국회 입법을 통해 해결돼야 할 사안"이라는 이유에서다.
국토부는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갈려 안전운임제 유지·확대 관련 어떤 입장도 밝힐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올 2월 이미 용역을 준 '화물차 안전운임제 성과분석 및 활성화 방안 연구' 최종보고서를 받아 든 상태다.
총 300페이지 분량의 이 보고서는 한시적으로 시행된 안전운임제가 화물운송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향후 정책 추진 과정에 반영하기 위해 작성됐다.
이 보고서를 보면 연구를 총괄한 한국교통연구원은 안전운임제의 순기능에 무게중심을 뒀다. 보고서는 "안전운임제 시행 후 사업용 특수자동차의 교통사고가 감소했고, 컨테이너·시멘트 화물차주의 월 근로시간이 감소해 근로 여건 개선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판단했다. "컨테이너·시멘트 화물차주의 월평균 소득이 증가해 과로 문제도 일부 개선됐다"고도 했다. 안전운임제가 화물차 운전자와 도로교통 안전에 일부 기여했다는 결론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안전운임제 시행 전인 2019년 컨테이너 차주의 순수입은 월 평균 300만원이었다. 시행 후인 2021년엔 373만원으로 24.3% 증가했다. 시멘트 차주의 경우 2019년 월 평균 201만원에서 2021년 424만원으로 110.9% 증가했다. 이에 따라 화주·운수사의 비용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보고서는 "시멘트 품목의 화주를 제외한 컨테이너 품목의 화주·운수사·차주, 시멘트 품목의 운수사·차주는 과반이 일몰제를 폐지하고 안전운임제를 지속하거나 일몰제를 추가 연장해 제도를 지속해야 한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보고서는 정책 제언으로 "단기적인 관점에선 제도를 정비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안전운임제와 연계해 사업용 화물자동차 교통안전 강화를 위한 각종 시행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고 주문했다. 현행 안전운임제를 체계적으로 진화하는 방향으로 지속적인 법제 정비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2010년대 후반까지 국내 화물운송 시장은 대형 운송사 중심의 경쟁적 저가 입찰이 난무했다. 이 때문에 낮은 운임이 형성됐고, 이런 저운임의 피해가 소형 운송 업체나 위수탁 차주에 전가되는 상황이 반복됐다. 부작용으로 과로·과적·과속 관행도 이어졌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해소하고 양질의 화물운송 일자리 창출을 위해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을 개정해 최저운임 성격의 안전운임을 도입했다. 운임을 적정 수준으로 산정해 무리한 운행이나 과적을 줄인다는 취지였다. 안전운임은 화주, 운수사, 차주 대표와 공익위원으로 구성된 안전운임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안전운임을 위반하면 과태료 500만원이 부과된다. 다만 3년 일몰 조항이 달려 있어 2020년 1월 도입돼 올해 말로 종료될 예정이다.
한편 주요 국가의 화물자동차 운임제 현황을 보면 시장 자율과 법적 기반 마련이 혼용돼 있다. 일본은 화물자동차 운수종사자가 화주로부터 적정 운임을 받을 수 있도록 2020년 4월 표준운임제를 적용해 오는 2023년까지 한시적으로 시행 중이다. 일본의 표준운임은 원가(변동비·고정비)에 이윤을 더해 산출되는데, 할증료는 운임과 별도로 받는 걸 원칙으로 한다. 표준운임은 지역별로 다른 인건비를 감안해 지방운수국이 별도로 작성한다.
호주는 도로안전운임을 2012년 7월 시행해 2016년 중단했다. 제도를 유지했을 경우 오는 2027년까지 23억달러(한화로 약 2조8900억원)의 비용 유발이 불가피해 경제와 지역 사회에 부작용 낼 것이라는 판단에서 폐지됐다. 프랑스는 1989년 인가요금제를 폐지한 뒤 화물차 운임을 자유화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화물차주들은 유가가 빠르게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안전운임제까지 종료되면 생계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란 절박함을 갖고 있고, 화주는 비용이 자꾸 불어나고 있어 강제성 있는 안전운임제가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국토부가 적극적으로 중재 노력을 하지 않으면 대치 상황이 길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토부는 '국토부 책임론'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자 이날 입장문을 내고 "안전운임제는 법개정 사항으로 국회에서 빨리 논의되기를 바란다"며 "정부도 이번 사태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화물연대와 물밑대화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 역시 이날 오전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현대자동차 자율주행차 시범운행 행사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화물연대 총파업 관련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늘 이해관계에 따라 갈등이 있다”며 "최대한 이른 시간 안에 대화를 통해 원만하게 풀어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