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도로 경이로운 결과."(켄 타케시타 다이이찌산쿄 글로벌 R&D 책임자)
"유방암 치료의 새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미국 바이오 전문지 '피어스파마')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에서 막을 내린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의 '스타'는 단연 '엔허투'였다. 엔허투는 아스트라제네카와 다이이찌산쿄가 공동 개발한 항체약물접합체(ADC) 항암제다. 약물에 항체를 붙여서 유도미사일처럼 암세포를 정확하게 표적한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아스트라제네카는 이번 ASCO에서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2(HER2)' 유전자의 발현율이 낮은 환자 55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엔허투의 임상 3상 결과를 발표했다. HER2 저발현군은 최근 새롭게 분류된 환자군이다. 일반적으로 면역조직화학염색법(IHC)이나 현장혼성화법(ISH) 결과에서 HER2 양성이 나온 유방암 환자는 '허셉틴'과 '퍼제타' 등 표적항암제를 사용한다.

하지만 HER2 수치가 낮으면 음성 환자로 분류돼 이들 항암제를 사용할 수 없다. 아스트라제네카에 따르면 유방암 환자의 최대 55%가 HER2 저발현군이다. 전체 유방암 환자의 절반 가량이 기존 유방암 치료제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아스트라제네카와 다이이찌산쿄는 이번 임상에서 'IHC 점수 1+' 또는 'ISH 점수가 음성이면서 2+'인 환자를 HER2 저발현군으로 정의하고 임상을 진행했다. 분석 결과, 엔허투를 투여한 HER2 저발현 환자의 질병 진행률 또는 사망 위험은 항암화학요법 대비 49% 낮았다. 무진행생존기간(PFS) 중앙값은 10.1개월로 화학요법 치료군(5.4개월)보다 두 배 가까이 길었다. 전체생존기간(OS) 중앙값도 엔허투 치료군은 23.9개월, 화학요법 치료군이 17.5개월로 사망 위험이 36% 감소했다.

기존 표적항암제가 잘 듣지 않았던 HER2 저발현 유방암 환자군에게 새로운 치료법이 생겼다는 평가다. 미국 에모리대의 유방암 전문가 제인 에머리 박사는 "HER2 저발현 환자군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재정의하고, HER2 표적치료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환자의 범위를 확대했다"고 말했다. 아스트라제네카가 임상결과를 발표한 후에는 참석자들의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국내에선 메디톡스의 관계사인 상트네어바이오사이언스가 HER2 저발현군을 대상으로 표적항체 'CTN-001'를 개발하고 있다. 이를 앞세워 바이오노트와 에스디비인베스트먼트로부터 2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오름테라퓨틱도 차세대 표적단백질분해 물질로 개발 중인 'ORM-5029'의 전임상에서 HER2 저발현 동물모델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일각에선 엔허투가 임상 3상에서 효능 입증에 성공하면서 국내 개발사들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HER2 저발현군을 대상으로 하는 국내 기업들은 아직 초기 개발 단계이기 때문에 엔허투가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고 했다.

상트네어바이오사이언스의 CTN-001은 최근 전임상을 마치고 임상 1상을 준비 중이다. 오름테라퓨틱도 아직 전임상만 완료했다. 연내 임상 1상을 신청할 계획이다. 시장에서는 엔허투가 2030년까지 HER2 저발현군에서만 46억달러(약 5조70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상트네어바이오사이언스 관계자는 "ADC는 주로 말기암 환자 등 고위험군에게 사용하는 반면, CTN-001은 1기나 조기암 환자에게도 사용할 수 있어 이 시장을 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