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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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생도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국민연금 개혁이 조속히 이뤄져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윤석열 정부는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구성해 국민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금의 개혁을 추진한다는 입장이지만 취임한지 한달이 지나도록 이렇다할 움직임은 없는 상태다.

위원회를 통한 연금 개혁은 앞서 수차례 추진돼왔지만 성과를 거둔 사례는 사실상 전무하다. 1997년 연금제도개선 기획단, 2002년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 2013년 국민행복연금위원회 등은 합의안 도출에 실패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2018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국민연금개혁과노후소득보장특별위원회에서 연금개혁을 논의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文정부 국민연금 개혁 실패한 이유…위원회 구성부터 잘못됐다 [강진규의 국민연금 테크]
하지만 영국과 독일은 위원회가 연금 개혁의 핵심 역할을 수행했고,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영국은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연금위원회가 활동했다. 이들의 권고안은 2007년, 2008년, 2011년, 2014년 개혁에 나뉘어 대부분 반영될 정도로 큰 파급력을 가졌다. 독일의 뤼룹위원회는 2002년 사회보장제도의 재정적 지속가능성 제고를 논의했고, 권고안이 2004년과 2007년 개혁에 그대로 반영됐다.

이들 국가는 한국과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문현경 국민연금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쓴 '효과적인 연금개혁을 위한 개혁위원회의 중요성' 보고서를 통해 살펴봤다. 문 위원은 패트릭 마리어 캐나다 콘코디아대 정치학과 교수가 분석한 틀을 중심으로 한국의 실패요인을 분석했다.

1. 메릴린치 부회장 데려온 영국, 교수가 위원장 맡은 한국

영국은 총리가 추천한 아데어 터너 메릴린치 부회장, 재무부 장관이 추천한 지니 드레이크 노동조합총협의회 의장, 노동연금부가 추천한 존 힐스 런던 정경대 교수 등 3인으로 위원회를 구성했다. 소수의 인원이 각 분야를 대표했고, 배경에 얽매이지 않고 탈정치적으로 활동하며 높은 응집력을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독일 뤼룹위원회는 연금보험 분과에 8인의 위원이 활동했는데 대부분을 개혁 지향적 인물로 구성해 추진력이 높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문 정부에서 구성한 경사노위 연금특위에는 노동계, 경영계, 청년, 비사업장가입자, 정부 등을 각각 대표하는 15인의 위원이 위촉돼 활동했다. 국민연금행복위원회는 13명이 연금개혁을 논의했다. 위원장은 두 차례 모두 교수나 연구원 등 학자였다. 위원들의 입장이 너무나도 달랐고, 인원 수마저 많아 합의된 의견을 내기가 어려웠다고 평가된다. 일부 위원은 대표성이 낮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 독립성 높아도 국민 지지 없으면 무소용

영국은 위원회의 독립성을 확보한 것은 물론, 정부 부처나 시민사회의 지지 수준도 높았다. 영국은 재무부가 한때 논의의 범위가 너무 넓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갈등 조정을 통해 해결했고, 노조와 경영계 모두 위원회의 개혁안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독일은 형식적으로는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정부 부처(노동사회부) 산하에 위원회를 뒀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사회부가 위원회의 실질적인 독립을 보장했고, 대표성이 높은 노사 위원이 참여하면서 지지 수준도 높았다.

하지만 국민행복연금위원회 등 한국의 개혁위원회는 정부 외부에 설치함으로써 독립성은 확보했으나, 정부와 국민 다수의 지지는 거의 받지 못했다. 독립만 돼있고 지지는 없으니 논의를 해도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3. 반년도 안돼 개혁안 내라니

영국은 위원회가 2002년부터 2006년까지, 햇수로 4년동안이나 활동했다. 연금 개혁이라는 과제에 대해 깊이 논의하고 해결책을 도출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노동연금부도 행정과 정책 지원을 적극적으로 함으로써 이들의 논의를 뒷받침했다.

독일 뤼룹위원회는 10개월간 운영됐다. 하지만 위원회 설치 1년 전 리스터 연금개혁이 있었던 것의 연장선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주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는 평가다. 이들은 실제로 1개월만에 합의된 개혁원칙을 도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은 국민연금제도개선기획단과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가 6개월, 국민행복연금위원회는 4개월 간 운영되고 활동이 종료됐다. 뭔가를 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짧았다.

4. 제도적 환경과 실행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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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어 교수는 이 외에도 위원회를 둘러싼 제도적 환경, 위원회 안의 정치·경제·행정적 실행 가능성 등을 정책적파급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꼽고 있다. 독일과 영국 등은 이같은 점에서 모두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한국은 실현가능성이 있는 개혁안이 논의된 적은 있었지만, 재정압박과 선거를 앞둔 시점 등 제도적 환경은 좋지 못했던 것으로 분석됐다.

5. 공무원연금 개혁은 어땠나

한국에서 그나마 성공한 위원회가 있다면 2015년 공무원연금개혁을 위한 국민대타협기구가 꼽힌다.

이 기구는 여야 국회의원 4명을 포함해 20명으로 구성됐다. 인원 수는 많았지만 각계 대표자를 위원으로 위촉하는 과정에서 여야가 합의 지명하는 등 국회가 주도적으로 움직여 힘있는 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었다는 평가다.

활동시간은 3개월로 짧았지만 이후에도 실무위원회를 둬 개혁안을 가다듬었다는 점에서 시간적 여유는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6. 새정부 위원회는 어떻게 해야할까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29일 서울 통의동 인수위에서 윤석열 정부의 복지국가 개혁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29일 서울 통의동 인수위에서 윤석열 정부의 복지국가 개혁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연금연구원은 윤석열 정부의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구성할 때 위원 수와 활동 기간 등을 고려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대원칙으로는 전문성을 갖춘 10명 이내의 위원을 구성하되 가입자대표나 노사위원이 다수를 차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제시했다. 활동기간은 최소 1년을 보장할 것을 제안했다. 위원회의 소속은 국회로 하는 것이 독립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내놨다.

윤 정부의 국정과제와 관련해서는 국회 의석 격차가 상당하기 때문에 위원회를 설치하더라도 야당의 개혁 선호를 파악하고 상호간 정책 격차가 확대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보험료율 인상 시에는 국민뿐 아니라 사용자와도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봤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