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반도체 공급난이 심화하는 가운데 첨단 반도체 생산도 악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생산장비가 부족하고 수율(결함없는 합격품의 비율)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납품기일이 미뤄지면 스마트폰, 데이터 센터, 인공지능(AI) 장비 등 기술 혁신이 지체될 거란 분석이 나온다.

10일 월스트리트저널은 세계적인 반도체 부족 현상이 첨단 반도체 생산 차질로 이어질 거라고 전망했다. 최근 2년 동안 반도체 공급난 현상은 차량용 반도체 등 부가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은 제품에 국한됐다. 최첨단 공정이 필요한 반도체들의 공급은 안정적이었다.

이제 상황이 달라질 거라고 WSJ는 내다봤다. 삼성전자, 대만 TSMC 등 대표적인 반도체 업체들에 위기가 닥칠 거라는 얘기다. 생산장비가 부족해지고 수율에 차질이 빚어져 납품기일을 지킬 수 없을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2024년 이후 첨단 반도체 공급 부족률이 최대 20%에 달할 거라고 지적했다.

WSJ는 삼성전자와 대만 TSMC가 두 반도체 공룡이 생산 난항을 겪으면 정보기술(IT) 생태계가 악화될 거라고 지적했다. 생산장비 부족과 수율 문제 등으로 인해 납품 기일을 지키지 못하게 되면 스마트폰, 데이터센터, 인공지능(AI) 등의 IT기술 혁신이 지체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WSJ는 최첨단 반도체 제조사가 삼성전자와 TSMC 단 두 곳뿐이라는 점을 짚었다. 막대한 투자비용과 기술적 장벽으로 인해 후발주자가 쉽게 발을 들일 수 없는 구조다. 생산 수율을 높이려해도 막대한 자본이 들어 쉽사리 확장할 수 없다.

TSMC는 이미 위기를 감지했다.협력사들에 생산장비 확보를 근거로 들어 2023∼2024년에 생산량을 필요한 만큼 빠르게 늘리지 못할 수 있다고 공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생산장비 조달이 갈수록 지연돼 새로 주문받은 반도체 납품까지 걸리는 기간인 ‘리드타임’이 약 2∼3년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생산장비가 대부분이 구형 반도체 제작에도 쓰이는 기기다. 따라서 후발주자인 중국 반도체 기업들과의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TSMC는 문제를 타개하려 올해 초 네덜란드 장비업체 ASML과 장비 공급 물량 증대를 논의하는 등 경영진을 장비업체들에 보내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웨이저자 TSMC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4월 컨퍼런스콜에서 3나노미터 공정 칩 생산과 관련해 장비 조달 문제가 있다고 밝힌 바가 있다.

올해 반도체 생산업체들은 생산 설비 확장에 총 1800억달러(약 228조원)를 쏟아부을 계획이다. 하지만 반도체 장비업체들의 예상 매출은 1070억달러에 그칠 정도로 반도체 생산장비의 공급 부족 문제가 심화했다.

삼성전자 역시 수율 등 기술적인 문제를 겪었다고 WSJ는 진단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의 4나노 공정 반도체의 수율 개선이 예상보다 지연돼 예정대로 칩을 공급할 수 없게 됐다. 퀄컴과 엔비디아 등 주요 업체들이 삼성 대신 TSMC로 주문을 돌렸다는 설명이다.

강문수 삼성 파운드리사업부 부사장은 지난 4월 컨퍼런스콜에서 “4나노 공정의 초기 수율 램프업(생산량 확대)은 다소 지연된 면이 있다”며 “다만 조기 안정화에 주력해 현재 예상한 수율 향상 곡선 내로 진입한 상태”라고 밝혔다.

삼성은 이달부터 차세대 GAA(Gate-All-Around) 기반 세계 최초 3나노 공정 반도체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GAA는 기존 핀펫(FinFET) 기술보다 칩 면적과 소비전력은 줄이고 성능은 높인 신기술이다. 삼성전자는 GAA 기술을 적용해 TSMC보다 먼저 3나노 공정 양산을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정보기술(IT)산업 컨설팅업체 IBS의 핸들 존스 최고경영자(CEO)는 높은 수요와 생산장비 부족이 2·3나노 공정 칩 생산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거라고 전망했다. 오는 2024년과 2025년에 이들 제품의 공급 부족률이 10∼20%에 이를 수 있다고 추산했다. 퀄컴은 일부 반도체 생산업체가 일방적으로 공급량 축소를 시도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