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는 모래 위의 성"…팹리스, 중국보다 떨어진다 [강경주의 IT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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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주의 IT카페] 53회
한국 팹리스 기업 수, 중국 20분의 1 수준
"국내 반도체 고급 인력 메모리에만 몰려"
시스템반도체 키우려면 생태계 구축 필수
"반도체 설계 모르면 결국 종속될 수밖에"
한국 팹리스 기업 수, 중국 20분의 1 수준
"국내 반도체 고급 인력 메모리에만 몰려"
시스템반도체 키우려면 생태계 구축 필수
"반도체 설계 모르면 결국 종속될 수밖에"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반도체에 강한 드라이브를 거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정부가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를 비롯한 시스템반도체에 인재 양성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제언이 쏟아지고 있다.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면 팹리스 생태계 조성이 필수라는 것. 특히 미국, 대만은커녕 중국에도 크게 뒤지는 한국 팹리스를 지금부터라도 키워야 '반도체 주권'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싹트고 있다.
한국의 반도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조사 결과는 또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종합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은 19.9%의 점유율로 49.8%의 미국에 이은 2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끈 메모리반도체 부문 세계 시장 점유율이 59.1%에 달한 영향이다. 반면 시스템반도체 점유율은 3.0%에 그쳤다. 퀄컴과 엔비디아를 필두로 한 미국의 시스템반도체 점유율은 69.1%였고 대만(11.0%) 유럽(8.6%) 일본(4.8%) 중국(3.3%) 순이었다. 메모리를 넘어 논리, 연산, 제어로 역할이 확장된 시스템반도체는 팹리스와 떼려야 뗄 수가 없다. 메모리를 중심으로 성장한 한국의 반도체 경쟁력은 늘 '반쪽짜리'라는 불편한 평가가 뒤따른다. 현재 국내 팹리스 경쟁력은 순위를 논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다. 국내 반도체 기업 중 세계 50대 팹리스에 속한 기업은 LX세미콘 단 한 곳뿐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팹리스 기업 수도 중국(2810개)의 20분의 1 수준(5%)인 120개에 불과할 정도로 저변이 취약하다.
정부도 위기를 인지하고 개선을 시도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9년 4월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을 방문해 "팹리스 분야 시장점유율 10%를 달성해 종합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는 것이 목표"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IC인사이츠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동안 한국 팹리스 시장 점유율은 매년 1%에 머물렀다. 같은 기간 미국이 65%에서 68%로, 대만이 17%에서 21%로 점유율을 끌어올린 것과 대조적이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에서 1위에 오르겠다는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지만 체질 개선 속도가 더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 배경에 팹리스 경쟁력 열위가 자리하고 있다는 평가가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흘러나온다. 대부분의 시스템반도체는 팹리스에 의해 설계된다. 미국 엔비디아·퀄컴, 대만 미디어텍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애플과 테슬라, 아마존, 구글까지 자체 반도체 설계 강화에 전사적 역량을 쏟고 있다. '애플이 이제는 팹리스가 다됐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 하지만 국내 반도체 대기업 사이에서는 이 같은 분위기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당장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않으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열악한 팹리스 생태계 상황도 문제다. 국내 대기업들의 비우호적 분위기 등이 새로운 팹리스가 성장하는 걸 어렵게 만들었고 정부도 제대로 된 지원이 부족했다는 원성이 끊이지 않는다. 시스템반도체 생태계에는 삼성전자 같은 대규모 메이커만 있는 게 아니다. 반도체를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팹리스와 디자인하우스, 위탁 생산할 파운드리와 공정을 마무리하는 백엔드(후공정·OSAT) 업체들도 있다. 이들이 유기적으로 생태계를 이뤄야 반도체 토양이 단단해진다. 한국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토종 팹리스'가 없는 이유는 대만과 같은 생태계 부재가 큰 요인으로 지목된다.
TSMC는 중소 반도체 설계 지적재산권(IP)을 만드는 회사들을 끌어안는 각종 연합체(IP얼라이언스·EDA얼라이언스·디자인 센터 얼라이언스·클라우드 얼라이언스·가치사슬 생태계)를 만들었다. 덕분에 고객사에게 제공할 수 있는 반도체 설계 포트폴리오가 방대하다. 삼성전자가 2019년 'SAFE'(삼성 파운드리 생태계)를 만들었지만 TSMC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다.
대만 정부도 정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87년 TSMC 창업자 모리스 창(Moris Chang)이 미국에서 외면받을 때 대만 정부가 출자 형태로 자금을 댔다. 당시 생소한 개념이었던 위탁생산 전문이었지만 정부가 믿고 재정적, 인프라 지원을 해준 덕분에 세계 최고 파운드리로 성장했다. 대만 정부는 TSMC 성공 사례를 미디어텍에도 이식해 이 업체는 최근 전세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시장에서 미국 퀄컴을 제치고 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다.
시장 성장성도 팹리스와 시스템반도체 육성의 중요성을 가리키고 있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 집계를 보면 지난해 전 세계 시스템반도체 시장 규모는 4021억달러(약 511조원)였지만 메모리반도체는 1538억달러(약 195조원)에 그쳤다. 옴디아는 2025년 시장 규모가 시스템반도체 4773억달러(약 607조원), 메모리반도체 2205억달러(약 280조원)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한 반도체학과 교수는 "팹리스와 파운드리는 별개 영역이 아니라 상호보완 관계"라며 "팹리스에 대한 비전과 투자 소식이 들리지 않는데 TSMC를 따라잡는다니, 시스템반도체 1위를 하겠다느니 하는 외침들은 공허하게 들린다"고 지적했다.
또 "TSMC와 미디어텍이 교류하고 일감을 주고 받으면서 각 분야의 세계 최강 자리를 점했다. 팹리스 최강인 엔비디아, AMD 리더 모두 대만계인 동시에 TSMC와의 관계가 끈끈하다"며 "뛰어난 파운드리가 만들어지려면 그 수준에 맞는 팹리스 역량이 동반돼야 한다"고 짚었다.
아울러 "한국이 외국 팹리스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정부와 대기업이 적금 붓듯 팹리스에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며 "애플·테슬라·아마존·구글 등 내로라 하는 빅테크들이 왜 직접 반도체 설계에 뛰어들겠는가. 설계를 할 줄 모르면 인텔 등에 종속되고 만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국내 반도체 기업 설계 파트에서 일하는 한 인사는 "한국은 팹리스가 안 될 거라는 패배의식, 메모리 분야와의 차별대우 분위기를 개선하지 않는 한 우수 인재를 팹리스로 유인하는 건 쉽지 않다"며 "인사, 정책 결정권을 가진 경영진과 정부 의지가 한국 팹리스 생태계의 기초를 다지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나마 긍정적인 요소는 최근 팹리스를 키워야 한다는 문제 인식이 정부 차원에서 퍼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라며 "한국 반도체를 비유하자면 모래 위에 쌓은 성이라고 보면 된다. 팹리스로 기반을 다지지 않으면 파도가 왔을 때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역설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메모리 중심으로 성장한 한국 반도체의 한계
11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팹리스 점유율은 미국이 68%로 1위를 차지했다. 대만(21%)과 중국(9%)이 뒤를 이었고 한국 점유율은 단 1%에 그쳤다. IC인사이츠의 2020년 시장 분석에서도 한국은 본사 소재지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에서 21%를 기록, 미국(55%)에 이어 2위에 올랐지만 팹리스 점유율은 고작 1%에 불과했다. 미국은 64%로 압도적 1위였고 미디어텍을 가진 대만이 18%로 2위, 3위는 15%의 중국이 차지했다.한국의 반도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조사 결과는 또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종합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은 19.9%의 점유율로 49.8%의 미국에 이은 2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끈 메모리반도체 부문 세계 시장 점유율이 59.1%에 달한 영향이다. 반면 시스템반도체 점유율은 3.0%에 그쳤다. 퀄컴과 엔비디아를 필두로 한 미국의 시스템반도체 점유율은 69.1%였고 대만(11.0%) 유럽(8.6%) 일본(4.8%) 중국(3.3%) 순이었다. 메모리를 넘어 논리, 연산, 제어로 역할이 확장된 시스템반도체는 팹리스와 떼려야 뗄 수가 없다. 메모리를 중심으로 성장한 한국의 반도체 경쟁력은 늘 '반쪽짜리'라는 불편한 평가가 뒤따른다. 현재 국내 팹리스 경쟁력은 순위를 논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다. 국내 반도체 기업 중 세계 50대 팹리스에 속한 기업은 LX세미콘 단 한 곳뿐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팹리스 기업 수도 중국(2810개)의 20분의 1 수준(5%)인 120개에 불과할 정도로 저변이 취약하다.
정부도 위기를 인지하고 개선을 시도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9년 4월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을 방문해 "팹리스 분야 시장점유율 10%를 달성해 종합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는 것이 목표"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IC인사이츠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동안 한국 팹리스 시장 점유율은 매년 1%에 머물렀다. 같은 기간 미국이 65%에서 68%로, 대만이 17%에서 21%로 점유율을 끌어올린 것과 대조적이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에서 1위에 오르겠다는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지만 체질 개선 속도가 더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 배경에 팹리스 경쟁력 열위가 자리하고 있다는 평가가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흘러나온다. 대부분의 시스템반도체는 팹리스에 의해 설계된다. 미국 엔비디아·퀄컴, 대만 미디어텍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애플과 테슬라, 아마존, 구글까지 자체 반도체 설계 강화에 전사적 역량을 쏟고 있다. '애플이 이제는 팹리스가 다됐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 하지만 국내 반도체 대기업 사이에서는 이 같은 분위기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대만은 왜 파운드리, 팹리스 모두 강한가
업계에서는 그동안 국내 팹리스 산업이 중소기업 위주로 성장한 탓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형 메모리반도체 기업에만 고급 인력이 집중된 점을 뼈아프게 꼽고 있다. 자금 부담으로 투자가 부족해 성장 동력을 확보하지 못한 점도 패착으로 거론된다. 또 팹리스가 성공하려면 설계·개발한 반도체를 실물로 만들어 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확보해야 하는데, 삼성전자 같은 대형 파운드리 기업이 해외 주요 고객사에 집중하면서 국내 팹리스 기업 이용이 어려운 점도 국내 팹리스 성장을 제약한 요인으로 언급된다.당장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않으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열악한 팹리스 생태계 상황도 문제다. 국내 대기업들의 비우호적 분위기 등이 새로운 팹리스가 성장하는 걸 어렵게 만들었고 정부도 제대로 된 지원이 부족했다는 원성이 끊이지 않는다. 시스템반도체 생태계에는 삼성전자 같은 대규모 메이커만 있는 게 아니다. 반도체를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팹리스와 디자인하우스, 위탁 생산할 파운드리와 공정을 마무리하는 백엔드(후공정·OSAT) 업체들도 있다. 이들이 유기적으로 생태계를 이뤄야 반도체 토양이 단단해진다. 한국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토종 팹리스'가 없는 이유는 대만과 같은 생태계 부재가 큰 요인으로 지목된다.
TSMC는 중소 반도체 설계 지적재산권(IP)을 만드는 회사들을 끌어안는 각종 연합체(IP얼라이언스·EDA얼라이언스·디자인 센터 얼라이언스·클라우드 얼라이언스·가치사슬 생태계)를 만들었다. 덕분에 고객사에게 제공할 수 있는 반도체 설계 포트폴리오가 방대하다. 삼성전자가 2019년 'SAFE'(삼성 파운드리 생태계)를 만들었지만 TSMC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다.
대만 정부도 정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87년 TSMC 창업자 모리스 창(Moris Chang)이 미국에서 외면받을 때 대만 정부가 출자 형태로 자금을 댔다. 당시 생소한 개념이었던 위탁생산 전문이었지만 정부가 믿고 재정적, 인프라 지원을 해준 덕분에 세계 최고 파운드리로 성장했다. 대만 정부는 TSMC 성공 사례를 미디어텍에도 이식해 이 업체는 최근 전세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시장에서 미국 퀄컴을 제치고 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다.
"파운드리 키우려면 팹리스 역량 동반돼야"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상위 10개 팹리스 기업 매출액은 총 1274억달러(한화 약 162조원)로 전년 대비 48% 증가했다. 작년 전체 반도체 시장의 매출 증가율은 21.1%로, 이 역시 높은 편이었지만 팹리스와 비교하면 절반에 그쳤다. 지난해 전세계에서 100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린 17개 반도체 기업 중 전년 대비 매출이 50% 이상 증가한 곳은 퀄컴·엔비디아·미디어텍·AMD 총 4곳인데 모두 팹리스 기업이다. 미국과 대만계가 이끈다는 특징도 지녔다.시장 성장성도 팹리스와 시스템반도체 육성의 중요성을 가리키고 있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 집계를 보면 지난해 전 세계 시스템반도체 시장 규모는 4021억달러(약 511조원)였지만 메모리반도체는 1538억달러(약 195조원)에 그쳤다. 옴디아는 2025년 시장 규모가 시스템반도체 4773억달러(약 607조원), 메모리반도체 2205억달러(약 280조원)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한 반도체학과 교수는 "팹리스와 파운드리는 별개 영역이 아니라 상호보완 관계"라며 "팹리스에 대한 비전과 투자 소식이 들리지 않는데 TSMC를 따라잡는다니, 시스템반도체 1위를 하겠다느니 하는 외침들은 공허하게 들린다"고 지적했다.
또 "TSMC와 미디어텍이 교류하고 일감을 주고 받으면서 각 분야의 세계 최강 자리를 점했다. 팹리스 최강인 엔비디아, AMD 리더 모두 대만계인 동시에 TSMC와의 관계가 끈끈하다"며 "뛰어난 파운드리가 만들어지려면 그 수준에 맞는 팹리스 역량이 동반돼야 한다"고 짚었다.
아울러 "한국이 외국 팹리스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정부와 대기업이 적금 붓듯 팹리스에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며 "애플·테슬라·아마존·구글 등 내로라 하는 빅테크들이 왜 직접 반도체 설계에 뛰어들겠는가. 설계를 할 줄 모르면 인텔 등에 종속되고 만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국내 반도체 기업 설계 파트에서 일하는 한 인사는 "한국은 팹리스가 안 될 거라는 패배의식, 메모리 분야와의 차별대우 분위기를 개선하지 않는 한 우수 인재를 팹리스로 유인하는 건 쉽지 않다"며 "인사, 정책 결정권을 가진 경영진과 정부 의지가 한국 팹리스 생태계의 기초를 다지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나마 긍정적인 요소는 최근 팹리스를 키워야 한다는 문제 인식이 정부 차원에서 퍼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라며 "한국 반도체를 비유하자면 모래 위에 쌓은 성이라고 보면 된다. 팹리스로 기반을 다지지 않으면 파도가 왔을 때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역설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