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으로 발사 비용을 99% 줄인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  /한경DB
재활용으로 발사 비용을 99% 줄인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 /한경DB
미국 X프라이즈재단이 상금 1000만달러짜리 대회를 연 것은 1996년이었다.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상금을 탈 수 있었다. ①승객 3명이 탈 수 있는 비행체를 만들 것 ②이 비행체를 타고 고도 100㎞까지 갔다 올 것 ③2주일 안에 두 번 왕복할 것. 지상 100㎞는 우주가 시작되는 경계다. 재사용이 가능한 최초의 민간 우주선을 찾는 대회였다.

우승자는 2004년에야 나왔다. 전설적인 항공기 설계자 버트 루탄이 폴 앨런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 창업자의 지원을 받아 만든 ‘스페이스십1’이었다. 그러자 온 세상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괴짜 사업가’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은 그해 버진갤럭틱을 세우고 루탄과 함께 우주 관광용 우주선인 ‘스페이스십2’ 개발에 나섰다.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사진)의 스페이스X와 아마존을 설립한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도 덩달아 주목받았다. 민간 우주산업이 싹을 틔운 순간이었다.

[책마을] 누구도 못한 '발사 가격' 매긴 머스크…우주 비즈니스 열다
《우주에 도착한 투자자들》은 ‘우주 비즈니스’ 책을 표방한다. 일찍부터 우주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해온 로버트 제이콥슨이 썼다. 다양한 우주 스타트업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앞으로 전망과 우주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와 민간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도 담았다.

책은 스페이스X가 우주 비즈니스에 큰 획을 그었다고 설명한다. 우주를 둘러싼 시장을 만들었다는 이유에서다.

“우주를 둘러싼 시장이 생기려면 먼저 ‘가격’이 있어야 한다. 그 토대를 놓은 게 스페이스X다. 스페이스X는 비행체 발사에 가격을 매겼다. 이전에는 우주에 무언가를 발사하고 싶어도 사업 계획서조차 작성할 수 없었다. 자금을 마련하기 전에는 견적을 받을 수 없었고, 견적을 받기 전에는 자금을 마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발사에 가격이 매겨지자 파생 산업과 스타트업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대표적인 게 소형 위성사업이다. 2010년 창업한 플래닛랩스는 두 손으로 들 수 있을 만한 작은 크기의 위성을 지금까지 200개가량 쏘아 올렸다. 작고 가벼운 만큼 만들고 발사하는 데 돈이 적게 들었다. 그렇다고 성능이 크게 뒤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PC가 스마트폰으로 바뀐 것과 비슷했다. 이렇게 작은 위성을 무수히 쏘아 올리자 지구 어디든 거의 실시간으로 살펴볼 수 있게 됐다. 이 덕분에 플래닛랩스는 지난해 1억3120만달러(약 164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책마을] 누구도 못한 '발사 가격' 매긴 머스크…우주 비즈니스 열다
‘승차 공유’ 스타트업도 생겨났다. 로켓랩스가 그런 예다. 플래닛랩스 위성 9개를 로켓에 탑재해 발사하면서 빈 자리에 캐논전자 위성 1개를 같이 실어보내는 식이다. 택시가 목적지가 비슷한 두 손님을 함께 태우는 것과 같다. 스페이스X 역시 승차 공유를 시작하며 시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우주 자원 채굴도 유망 분야로 꼽힌다. 일본 스타트업인 아이스페이스를 비롯해 문익스프레스, 마스턴 스페이스 시스템, 애스트로보틱 등이 달에서 자원을 채굴할 수 있는 로봇을 개발 중이다. 이 로봇들은 소행성에도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 그곳에 희토류가 많기 때문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지구 근처에 소행성이 10만 개 있고, 그곳에 백금, 니켈, 코발트, 철, 희토류 등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민간 우주 개발에는 ‘규제 완화’라는 약(藥)이 필요했다. 1962년 AT&T는 최초의 상업 위성인 텔스타 1호를 쏘아 올렸다. 하지만 그해 제정된 통신위성법 때문에 우주 민영화는 금지됐다. 1984년에는 상업우주발사법이 만들어졌지만, NASA가 불필요한 요식 행위를 요구하면서 민간 기업의 참여는 저지됐다. 숨통은 2004년에 트였다. 상업우주발사수정법 덕분이었다. 민간의 우주 사용이 실질적으로 합법화됐다. 하지만 책은 아직도 수많은 규제가 민간 우주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미국이 민간 우주산업에서 앞서나가는 이유도 알려준다. 도전을 장려하는 문화, 기업가정신, 잘 발달한 벤처 생태계, 규제 완화 등이다. 머스크, 베이조스 등 우주기업 창업가들이 어릴 때부터 공상과학(SF) 소설·영화를 보며 꿈을 키웠기 때문이란 설명도 흥미롭다.

하지만 깊이가 얕고 짜임새가 엉성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우주개발 역사와 기업, 현황을 너무 빠르게 흩고 지나간다. 민간 우주산업에 대한 개괄서나 입문서로 알맞은 책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