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의 목에 났던 혹이 〇〇을 먹으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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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의 본초여담]
중국 하남성(河南)의 깊은 산속에는 아주 작은 절이 있었다. 절에는 그래도 꽤 많은 스님이 기거했다. 너무 깊은 산중이라 한번 들어오면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입을 것, 먹을 것 등 모든 것을 자급자족해야만 했다.
그런데 작은 절의 스님들은 불심이 깊었다. 그 불심은 다른 큰 절의 스님들조차 모두 동경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인근 낙양(洛陽)의 아주 큰 절의 스님들이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큰 절의 스님들은 모든 것이 풍족해서 부러울 것이 없었지만, 불심만은 산속의 작은 절의 스님들을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불심을 함께 닦고자 방문하게 된 것이다.
큰 절의 스님들은 산속의 작은 절을 찾아 숲길을 걸었다. 걸어도 걸어도 절은 나오지 않았다. 점점 깊숙한 좁은 산길 걷기를 만 이틀 만에 저 멀리 절을 발견했다. 작은 절의 스님들이 불경을 읽는 소리도 들렸다. 주위를 보니 농사지을 밭도 없었고, 험준한 산속에 절만 자리했다. 그래도 큰절 스님들은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대충 들은 바가 있어서, 자신들이 먹을 식량을 나귀에 실어 날라왔기 때문이다. 1년 정도 기거할 요량으로 왔기에 그 종류와 양도 상당했다.
“나무아미타불” 절에 도착하자, 작은 절의 스님들이 마중을 나왔다. 그런데 깜짝 놀랐다. 이상하게 작은 절의 스님들의 목에 모두 혹이 달린 것이었다. “도대체 그 혹들은 어찌 된 영문이요?” 큰 절의 스님들이 물었다.
작은 절의 스님들은 뭐가 이상하냐는 듯, 서로를 쳐다보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곳에 기거하는 거의 모든 스님의 목에 혹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필경 부처님의 뜻이라고 생각해 왔다. 작은 절의 주지는 “이 혹들은 우리 절의 스님이라는 부처님의 징표일 것이요”라고 답했다.
큰절 스님 중에는 의술에 도통하고 불경만큼이나 의서를 많이 읽었던 스님도 있었다. 사실 그 스님은 속세에서 의원을 하다가 뜻한 바 있어 스님이 된 것이었다. 그 스님은 “이것은 영류(癭瘤)요!!! 부처님의 징표가 아니라 지금 병을 앓고들 있는 것이요.”라고 했다. 영류(癭瘤)란 바로 요즘의 갑상샘종을 말한다.
그 스님은 이어서 말하기를 “옛말에 두 산 사이의 물은 대부분 영류를 생기게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해당 지역에 바람이 많이 불고 모래가 많아서 모래가 식수에 들어가서 그 물을 마시면 영류가 생긴다고 했죠. 그러나 두 산 사이의 물이나 바람과 모래가 많은 지역이라는 것은 바로 바닷가와 멀리 떨어져 있는 내륙지방을 의미하는 것일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때 작은 절의 스님 한 분이 “그래서 뭐 어쨌다는 것이요? 절이 깊은 산속에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요?”라고 되물었다. 이어서 묻기를 “그런데 큰 절의 스님들도 절이 산속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목이 모두 멀쩡한 것은 어떤 연유요?”라고 했다.
의원을 했던 스님은 ”아마도 먹는 음식의 차이 때문일 것이요.”라고 했다. 그러자 작은 절의 스님 한 분이 “그럼 혹시 큰절의 스님들은 육고기라도 드신다는 말씀이시오?”하고 놀랐다.
의원을 했던 스님은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 않소. 제가 말씀드린 음식의 차이는 바로 해조류를 말하는 것입니다. 의서에 보면 해조류의 짠맛은 뭉친 기운을 풀어주는데, 특히 목에 생긴 혹에 특효라고 나와 있습니다. 아마도 이 깊은 산중의 스님들은 절에 들어오면서부터 해조류를 전혀 맛보지 못해서 이렇게 목에 혹이 생긴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의 큰절에는 전국 각지의 나물류와 함께 동해바닷가의 미역, 다시마, 김까지 공양물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저희 쪽 스님들은 적절한 해조류를 섭취해서 목에 혹이 없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올 때 이미 나귀에 해조류를 말린 것들은 한가득 가져왔으니 공양을 올릴 때 함께 드시자고 안심시켰다. 그렇게 스님들은 해조류 말린 것들을 찬으로 해서 공양을 드리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정말 작은 절의 스님들의 목에 난 혹이 조금씩 작아지더니 3개월 정도 되니 모두 사라졌다. 해조류에는 갑상샘종을 예방하는 요오드가 풍부했다.
그런데 유독 한 스님의 목에 난 혹은 도대체 줄어들 기미가 없었다. 그 스님은 “아니~ 제 목에 난 혹만은 왜 이렇게 변화가 없는 것이요?”라고 따져 물었다. 마치 이 혹이 의원이었던 스님 때문에 생긴 것처럼 퉁명스러웠다.
의원이었던 스님은 “글쎄올시다. 아마도 다른 원인이 있는 듯한데, 혹시 요즘 마음공부는 잘 되시는지요?”하고 물었다. 그런데 혹이 여전한 스님의 얼굴이 갑자기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사실 자신은 이 산속의 절에 기거하는 것이 항상 불만이었고, 그래서 ‘언젠가는 속세로 떠나리라’하고 날만 점치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의원이었던 스님은 알겠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목에 난 혹은 음식 때문뿐만 아니라, 몹시 근심하거나 성을 자주 내서 그 화(火)가 심장과 폐장을 상하게 하거나, 혹은 모든 일에 욕심을 내지만 이루지 못하여 억울함을 느끼기를 반복하면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속세의 고부갈등이 심하거나 남편에게 멸시당하는 부인들에게 영류가 많이 생기는 것입니다. 필경 스님은 울화병(鬱火病)이 원인인 듯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작은 절의 주지 스님이 아직도 목에 혹이 있는 스님을 지긋하게 쳐다보면서 “나무아미타불~ 네가 많이 힘이 들었구나. 나도 다 알고 있었다. 부처님도 너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쉬거라. 너에게 파계(破戒)를 허락하노라”라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목에 혹이 있던 스님은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되면 속세로 갈 수 있어 기쁜 줄 알았는데, 너무도 창피했고 슬펐다. 그 스님은 갑자기 펑펑 소리 내며 울었다. 아무도 자신의 힘듦을 몰라준다고 생각했는데, 주지 스님의 말을 듣고 나니 마음속에 응어리졌던 뜨거운 화기(火氣)는 온데간데없이 갑자기 가슴이 펑 뚫리더니 시원한 계곡의 찬 바람이 빨려 들어오는 듯했다. “아닙니다. 주지 스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초발심(初發心)으로 되돌아가겠습니다.”
시간은 흘러, 그렇게 두 절의 스님들의 1년여의 수양은 끝이 났다. 3개월째 목의 혹에 변화가 없었던 스님의 얼굴은 평온해졌으며 목도 매끈해졌다. 큰 절의 스님들은 자신들이 가져온 해조물들은 남기고 가겠다고 하면서 “아무쪼록 바다의 나물들도 간간이 챙겨 드시길 바랍니다. 앞으로 해조류 말린 것도 종종 공양 드리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큰절의 스님들은 제 절로 떠났고, 그 이후로는 산속의 모든 스님도 간간이 해조류를 섭취해서 목에 난 혹도 다시는 재발하지 않았다.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그런데 작은 절의 스님들은 불심이 깊었다. 그 불심은 다른 큰 절의 스님들조차 모두 동경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인근 낙양(洛陽)의 아주 큰 절의 스님들이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큰 절의 스님들은 모든 것이 풍족해서 부러울 것이 없었지만, 불심만은 산속의 작은 절의 스님들을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불심을 함께 닦고자 방문하게 된 것이다.
큰 절의 스님들은 산속의 작은 절을 찾아 숲길을 걸었다. 걸어도 걸어도 절은 나오지 않았다. 점점 깊숙한 좁은 산길 걷기를 만 이틀 만에 저 멀리 절을 발견했다. 작은 절의 스님들이 불경을 읽는 소리도 들렸다. 주위를 보니 농사지을 밭도 없었고, 험준한 산속에 절만 자리했다. 그래도 큰절 스님들은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대충 들은 바가 있어서, 자신들이 먹을 식량을 나귀에 실어 날라왔기 때문이다. 1년 정도 기거할 요량으로 왔기에 그 종류와 양도 상당했다.
“나무아미타불” 절에 도착하자, 작은 절의 스님들이 마중을 나왔다. 그런데 깜짝 놀랐다. 이상하게 작은 절의 스님들의 목에 모두 혹이 달린 것이었다. “도대체 그 혹들은 어찌 된 영문이요?” 큰 절의 스님들이 물었다.
작은 절의 스님들은 뭐가 이상하냐는 듯, 서로를 쳐다보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곳에 기거하는 거의 모든 스님의 목에 혹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필경 부처님의 뜻이라고 생각해 왔다. 작은 절의 주지는 “이 혹들은 우리 절의 스님이라는 부처님의 징표일 것이요”라고 답했다.
큰절 스님 중에는 의술에 도통하고 불경만큼이나 의서를 많이 읽었던 스님도 있었다. 사실 그 스님은 속세에서 의원을 하다가 뜻한 바 있어 스님이 된 것이었다. 그 스님은 “이것은 영류(癭瘤)요!!! 부처님의 징표가 아니라 지금 병을 앓고들 있는 것이요.”라고 했다. 영류(癭瘤)란 바로 요즘의 갑상샘종을 말한다.
그 스님은 이어서 말하기를 “옛말에 두 산 사이의 물은 대부분 영류를 생기게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해당 지역에 바람이 많이 불고 모래가 많아서 모래가 식수에 들어가서 그 물을 마시면 영류가 생긴다고 했죠. 그러나 두 산 사이의 물이나 바람과 모래가 많은 지역이라는 것은 바로 바닷가와 멀리 떨어져 있는 내륙지방을 의미하는 것일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때 작은 절의 스님 한 분이 “그래서 뭐 어쨌다는 것이요? 절이 깊은 산속에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요?”라고 되물었다. 이어서 묻기를 “그런데 큰 절의 스님들도 절이 산속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목이 모두 멀쩡한 것은 어떤 연유요?”라고 했다.
의원을 했던 스님은 ”아마도 먹는 음식의 차이 때문일 것이요.”라고 했다. 그러자 작은 절의 스님 한 분이 “그럼 혹시 큰절의 스님들은 육고기라도 드신다는 말씀이시오?”하고 놀랐다.
의원을 했던 스님은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 않소. 제가 말씀드린 음식의 차이는 바로 해조류를 말하는 것입니다. 의서에 보면 해조류의 짠맛은 뭉친 기운을 풀어주는데, 특히 목에 생긴 혹에 특효라고 나와 있습니다. 아마도 이 깊은 산중의 스님들은 절에 들어오면서부터 해조류를 전혀 맛보지 못해서 이렇게 목에 혹이 생긴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의 큰절에는 전국 각지의 나물류와 함께 동해바닷가의 미역, 다시마, 김까지 공양물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저희 쪽 스님들은 적절한 해조류를 섭취해서 목에 혹이 없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올 때 이미 나귀에 해조류를 말린 것들은 한가득 가져왔으니 공양을 올릴 때 함께 드시자고 안심시켰다. 그렇게 스님들은 해조류 말린 것들을 찬으로 해서 공양을 드리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정말 작은 절의 스님들의 목에 난 혹이 조금씩 작아지더니 3개월 정도 되니 모두 사라졌다. 해조류에는 갑상샘종을 예방하는 요오드가 풍부했다.
그런데 유독 한 스님의 목에 난 혹은 도대체 줄어들 기미가 없었다. 그 스님은 “아니~ 제 목에 난 혹만은 왜 이렇게 변화가 없는 것이요?”라고 따져 물었다. 마치 이 혹이 의원이었던 스님 때문에 생긴 것처럼 퉁명스러웠다.
의원이었던 스님은 “글쎄올시다. 아마도 다른 원인이 있는 듯한데, 혹시 요즘 마음공부는 잘 되시는지요?”하고 물었다. 그런데 혹이 여전한 스님의 얼굴이 갑자기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사실 자신은 이 산속의 절에 기거하는 것이 항상 불만이었고, 그래서 ‘언젠가는 속세로 떠나리라’하고 날만 점치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의원이었던 스님은 알겠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목에 난 혹은 음식 때문뿐만 아니라, 몹시 근심하거나 성을 자주 내서 그 화(火)가 심장과 폐장을 상하게 하거나, 혹은 모든 일에 욕심을 내지만 이루지 못하여 억울함을 느끼기를 반복하면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속세의 고부갈등이 심하거나 남편에게 멸시당하는 부인들에게 영류가 많이 생기는 것입니다. 필경 스님은 울화병(鬱火病)이 원인인 듯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작은 절의 주지 스님이 아직도 목에 혹이 있는 스님을 지긋하게 쳐다보면서 “나무아미타불~ 네가 많이 힘이 들었구나. 나도 다 알고 있었다. 부처님도 너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쉬거라. 너에게 파계(破戒)를 허락하노라”라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목에 혹이 있던 스님은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되면 속세로 갈 수 있어 기쁜 줄 알았는데, 너무도 창피했고 슬펐다. 그 스님은 갑자기 펑펑 소리 내며 울었다. 아무도 자신의 힘듦을 몰라준다고 생각했는데, 주지 스님의 말을 듣고 나니 마음속에 응어리졌던 뜨거운 화기(火氣)는 온데간데없이 갑자기 가슴이 펑 뚫리더니 시원한 계곡의 찬 바람이 빨려 들어오는 듯했다. “아닙니다. 주지 스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초발심(初發心)으로 되돌아가겠습니다.”
시간은 흘러, 그렇게 두 절의 스님들의 1년여의 수양은 끝이 났다. 3개월째 목의 혹에 변화가 없었던 스님의 얼굴은 평온해졌으며 목도 매끈해졌다. 큰 절의 스님들은 자신들이 가져온 해조물들은 남기고 가겠다고 하면서 “아무쪼록 바다의 나물들도 간간이 챙겨 드시길 바랍니다. 앞으로 해조류 말린 것도 종종 공양 드리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큰절의 스님들은 제 절로 떠났고, 그 이후로는 산속의 모든 스님도 간간이 해조류를 섭취해서 목에 난 혹도 다시는 재발하지 않았다.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