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참석 발표…日 총리와 2년7개월 만에 정상회담 추진
"회담 성사된다 해도 시작일 뿐…과거사와 안보 현안 분리해야"

2년 넘게 중단됐던 한일 정상 간 만남이 이달 말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무대에서 성사될 가능성이 커져 주목된다.

[이슈 In] '빅 이벤트' 된 나토 정상회의…한일 정상, 새 시대 서막 여나
한일 정상간 회담은 양국 관계 악화 등의 영향으로 2019년 12월을 끝으로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일본의 총리가 기시다 후미오로 교체되고, 올해 5월에는 한국도 한일 관계 개선을 중시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나토가 오는 29∼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정상회의에 처음으로 비회원국인 한일 정상을 초청하고,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회의 참석을 적극 추진하면서 한일 정상이 스페인에서 만날 가능성이 커졌다.

◇ 尹-기시다, 스페인서 회동할 듯…꼬인 실타래 풀릴까
대통령실은 10일 윤 대통령이 한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이달 말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의 해외 방문은 지난달 10일 취임한 이후 50여일 만이다.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는 한국 외에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도 파트너국 자격으로 처음 초청됐다.

윤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 결정으로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기시다 총리와의 한일정상회담 성사 여부다.

한일 정상은 2019년 12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가 중국 청두(成都)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양자회담을 가진 것을 끝으로 사실상 대화가 중단됐다.

윤 대통령이 취임 전부터 한일 관계 개선에 의욕을 보인 만큼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기시다 총리와 2년7개월 만에 양자 정상회담을 하게 될지 관심이 쏠린다.

9일 일본 아사히 신문은 복수의 한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윤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한일정상회담을 열고 대일관계 개선에 탄력을 붙인다는 구상이라고 보도했다.

한국 정부 고위 관계자는 "서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식 회담으로 정상 간에 신뢰를 구축하고 싶다"며 한일 정상회담에 의욕을 보였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기시다 총리도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만큼 새 정부 출범 후 첫 한일정상회담이 마드리드에서 이뤄질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슈 In] '빅 이벤트' 된 나토 정상회의…한일 정상, 새 시대 서막 여나
기시다 총리는 오는 26∼28일 독일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 후 스페인으로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한일은 이달 중하순 일본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 간 양국 외교장관 회담을 여는 방안을 최종 조율 중이다.

회담이 성사될 경우 첫 한일정상회담의 의제 조율이 주목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는 "한국 측은 외교장관 회담에서 관계 개선에 대한 양측의 강한 의사를 확인하고 나토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의 첫 회담을 실현하기 위한 환경을 조성해간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일본 언론은 박 장관의 과거 도쿄대 유학 경력과 함께 그의 일본어 구사 능력 등을 거론하며 한국의 새 외교라인에 대한 기대 섞인 시각을 드러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도 한일 양국 정상이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 양자 회담을 하는 방향으로 외교적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애초 미국 관리들이 지난달 조 바이든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때 한일 양국 정상과 함께 만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일본 측의 반대로 무산됐다고 전했다.

일본 관리들은 대선에서 근소한 차이로 승리한 윤 대통령이 일단 취임하고 난 뒤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지켜보기를 원했다고 이 신문은 설명했다.

즉, 성과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히 만남을 추진하기보다는 윤 대통령이 취임 후에도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했던 말들을 지키려고 노력하는지 지켜본 뒤 양자 회담을 추진하려 했다는 것이다.

FT에 따르면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던 일본 관리들은 윤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 여당이 이달 초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윤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강화된 데 고무된 것으로 전해졌다.

FT는 관리와 분석가들을 인용해 "스페인에서 한미일 3자 회담이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시작일 뿐"이라며 만약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위안부나 징용공 문제같이 껄끄러운 이슈들을 회피하려는 것처럼 비친다면 여론의 반발에 부딪힐 위험이 있다고 분석했다.

◇ "정상간 신뢰 회복이 우선…과거사와 안보 현안 분리해야"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으로 추락한 양국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견해는 한일이 비슷하지만 접근법에 있어서는 온도 차가 느껴진다.

한국이 윤석열 정부 출범 초기 손상된 양국 관계 복원을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데 반해 일본 정부의 태도는 좀 더 신중한 편이다.

아사히신문은 10일 일본 측이 정치적 위험을 내포한 한일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신중히 판단한다는 태도라고 전했다.

다음달 초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한일 역사 문제를 다루게 될 정상회담에 부담을 느낀다는 것이다.

지난달 미국이 바이든 대통령의 한일 양국 순방을 계기로 한미일 3국 정상간 회동을 추진했지만 일본 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던 데서도 이런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이슈 In] '빅 이벤트' 된 나토 정상회의…한일 정상, 새 시대 서막 여나
일본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정부 때 체결했던 한일 위안부 합의를 문재인 정부가 무력화한 뒤 한국에 대해 '국가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못 믿을 나라'라는 시각이 팽배한 상황이다.

설사 바뀐 한국 정부와 또 다른 합의나 약속을 하더라도 나중에 또 이를 뒤집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느냐는 것이 일본 자민당 정치인들의 지배적 인식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과거사를 둘러싼 극한 대립과 장기간 대화 단절 등으로 양국 정부와 정상 간 신뢰가 무너진 것이 관계 회복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걸림돌로 보고 있다.

주일대사를 지낸 이준규 한국외교협회 회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을 계기로 한일 정상이 하루빨리 대화의 통로를 열어 신뢰를 구축해야 현안에 대한 해결책도 나올 수 있다"며 "허니문 기간이 지속되는 정권 초기에 조속히 한일 관계 개선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사와 시급한 안보 현안을 분리해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전인범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은 FT에 "한국과 일본 정부는 과거사 문제와 경제적 마찰을 상호 안보 이익과 분리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은 일본 없이는 한반도에서의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기시다 총리가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국과 섣부른 관계 완화 행보를 보일 경우 정치적으로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FT는 전했다.

한국 문제 전문가인 니시노 준야 게이오대 교수는 FT에 "한일 간 분쟁을 해결하려면 방향성의 급격한 변화를 포함한 강력한 리더십이 요구되기 때문에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