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패스 중단되자 종결…민감한 사안 조사 회피 경향에 비판
인권위, "방역패스가 기본권침해" 진정 사건 판단 없이 각하
코로나19 시기 정부의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 정책이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며 제기된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가 뒤늦게 판단 없이 각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권기구로서 예민한 사안의 판단을 회피하고 책임을 방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12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인권위는 최근 방역패스 관련 진정에 대해 "헌법재판소와 법원에 소송이 제기돼 관련 사건이 계속되고 있고, 방역패스 시행이 잠정 중단된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을 위원회가 조사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며 각하 결정을 통보했다.

지난 1월 최재혁(15) 군은 방역패스 때문에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진정을 제기했는데, 인권위는 이로부터 반년이 지나고 방역패스 시행이 중단된 뒤에야 처분을 내린 것이다.

최군은 진정서에서 "정부는 미접종자를 차별대우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생활 필수 시설을 입장하지 못하게 해 미접종자들은 일상생활조차 할 수 없게 됐다"며 "미성년자 방역패스를 포함한 모든 방역패스 정책은 기본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진정이 제기된 당시는 정부가 지난해 11월 1일 처음 도입한 방역패스를 식당·카페 등 실내 다중이용시설 전반으로 확대했다가 반발을 불러일으켰던 때였다.

특히 학원, 독서실·스터디카페도 방역패스 적용 대상에 포함되면서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 논란이 불거졌고, 12∼18세까지 포함하는 '청소년 방역패스' 도입 계획을 두고는 학부모 단체를 중심으로 거센 항의가 일기도 했다.

전국에서 제기된 방역패스 집행정지 신청에 대해 법원에서 효력정지 판결이 연달아 나왔고, 결국 방역패스는 도입 4개월 만인 지난 3월 중단됐다.

이 과정에서 백신패스가 인권을 침해한다는 진정이 여럿 제기됐으나, 인권위는 이렇다 할 의견을 전혀 내놓지 않은 채 사안을 종결해버린 셈이다.

진정인인 최군은 "인권위가 사건에 무관심하고 사건 처리를 회피한다고 느낀다.

인권침해 사건을 인권위에서 조사하지 않으면 어디서 조사할 수 있느냐"며 인권위의 각하 결정을 취소해달라고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인권위, "방역패스가 기본권침해" 진정 사건 판단 없이 각하
인권위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조사를 지지부진하게 진행하거나 각하해 조사 자체를 회피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인권위는 앞서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이 정부의 2019년 북한 선원 2명의 강제 북송이 적절했는지 조사해달라고 제기한 진정을 각하했다.

이후 서울행정법원은 한변이 의견표명 사건 각하결정을 취소해달라며 인권위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한변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부는 "인권위가 들고 있는 '사실 조사의 어려움'이나 '판단의 곤란함' 등을 이유로 진정을 각하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허용될 수 없다"며 진정 사건을 다시 살펴보라고 판단했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는 "인권위는 법원처럼 강제적인 결정을 내리는 곳이 아니고 인권을 기준으로 삼아 의견표명 등을 통해 사안에 즉각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며 "헌법재판소나 법원에서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결정을 미루는 것은 인권위가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