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적극적 채식주의) 레스토랑이 식품업계의 격전지로 떠올랐다. 급속도로 늘어난 비건 인구를 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가치 소비, SNS문화와 맞물려 ‘트렌디한 콘텐츠’로 떠오른 비건시장에 31살의 젊은 셰프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농심의 비건레스토랑 ‘포리스트 키친’의 총괄셰프를 김태형 셰프를 한국경제신문이 인터뷰했다.

12일 잠실 포리스트키친에서 만난 김태형 셰프는 하얀 요리복에 흑색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왼쪽 가슴에 새겨진 자수가 그가 총괄 셰프임을 보여줬다.
사진=김병언 한국경제신문 기자
사진=김병언 한국경제신문 기자
축구선수, 피아니스트 등 다양한 꿈을 갖고 있던 그는 중학생 때 어학연수 차 떠난 미국에서 요리사의 꿈을 키우게 됐다. 미국 미네소타주의 하숙집에서 거주하면서 요리의 재미를 깨달은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에도 직장 생활을 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에게 간단한 요리를 해주던 그였다. 김태형 셰프는 “노루와 사슴이 뛰어다니는 자연 속에서 사냥하고 낚시 가는 것은 일상이었다”며 “사냥, 발골, 요리까지 과정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요리에 대한 열망이 커졌다”고 회상했다.

김 셰프는 세계 3대 요리학교 중 하나인 미국 CIA에 진학한 뒤 더 모던(미슐랭 2스타), 링컨 리스토란테(미슐랭 1스타) 등 뉴욕의 레스토랑에서 근무했다. 이 시기 미국에서는 비건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채식주의가 이미 대중화되어있었지만 비욘드미트, 임파서블푸드 등이 대체육을 개발해 햄버거 패티를 생산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채식주의가 반향을 일으켰다.

김 셰프는 “기존 레스토랑들이 비건 전문 레스토랑으로 업을 바꾸는 사례를 무수히 봤다”며 “비건이 외식사업에서 필수 성공 요인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고 말했다. 유명 레스토랑 일레븐 매디슨 파크의 대니얼 흄 셰프는 2020년 “육류와의 결별을 선언한다”며 돌연 비건레스토랑으로 전환했다. 프랑스 스타 셰프 알랭 뒤카스도 최근 파리에 비건 버거 팝업 레스토랑 ‘버갈(Burgal)’을 열었다.

미국에서 비건 사업의 성장 가능성을 목도한 김 셰프는 한국에서도 비건 레스토랑을 열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다. 한국에 돌아와 채식 요리를 연구하고 지속적으로 미국과 한국의 외식 트렌드를 살폈다. 작년에는 전 직장 동료였던 차현주 셰프와 함께 ‘내 몸이 빛나는 순간, 마이 키토채식 레시피’라는 비건 서적을 출판했다.

이후 농심 외식사업팀과 연이 닿아 포리스트키친의 총괄셰프 자리에 오르게 됐다. 그는 한국에서 비건 문화가 신념소비자들을 넘어 비건이 아닌 사람들(논비건)까지 즐길 수 있는 문화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SNS에 익숙한 MZ세대들이 새로운 경험의 일종으로 비건 음식을 받아들인다는 것. ’선한 영향력‘이라는 키워드도 MZ세대를 유입시킬 수 있는 요인이라고 판단했다.

김태형 셰프는 “포리스트 키친 런칭을 준비하면서 캐주얼다이닝이 아닌 파인다이닝 컨셉을 제안한 것도 코스 요리에 스토리를 넣어 일종의 ‘비건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비건 요리에 사용할 수 있는 식재료가 한정적이라는 점은 요리사로서 그에게 고민을 안겼다. 특히 디저트에 계란·우유·버터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김 셰프는 “남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식자재를 사용하고 그간 쌓아온 노하우를 통해 풍미가 가득한 식물성 메뉴들을 개발해냈다”며 “에피타이저 메뉴 ‘작은 숲’에 가장 애정이 깊다”고 말했다. 작은 숲은 숲처럼 꾸민 식기에 제철 채소를 이용한 한입거리 음식, 콩 커스터드, 콩 꼬치등을 담아낸 메뉴다.
축구선수 꿈꾸던 소년에서 비건 전문가로…김태형 농심 비건레스토랑 총괄셰프
미국 레스토랑처럼 한국에서도 비건 레스토랑을 미슐랭 가이드에 등재시키는 것이 그의 목표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81개의 비건 레스토랑이 미슐랭 별을 획득했을 정도로 채식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