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회계 오류로 주가 하락하면 배상해야"…삼광글라스 주주 승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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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삼광글라스 소액주주 손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 지난 9일 삼광글라스 주주 승소 판결
자본시장법상 회계상 오류에 손해배상 책임 첫 인정
삼광, 2018년 3월 ‘한정의견’에 주가 급락
폐기한 재고 172억원 손실 반영에 215억 영업적자
재판부 “중요사항 거짓기재로 투자판단 영향”
사측 “단순 회계정책 변경일 뿐”
서울중앙지법, 지난 9일 삼광글라스 주주 승소 판결
자본시장법상 회계상 오류에 손해배상 책임 첫 인정
삼광, 2018년 3월 ‘한정의견’에 주가 급락
폐기한 재고 172억원 손실 반영에 215억 영업적자
재판부 “중요사항 거짓기재로 투자판단 영향”
사측 “단순 회계정책 변경일 뿐”
상장회사가 회계상 오류를 정정하는 과정에서 주가가 하락한 경우 회사 측이 손실을 본 투자자에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재고자산과 영업이익·순이익 등 재무제표 허위 기재는 투자 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오류라고 본 것이다.
경영계에서는 다른 상장사로 소액주주들의 무차별 소송이 확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합병비율 관련 법안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OCI그룹 계열사인 SGC에너지는 ‘글라스락’ 등 유리용기로 알려진 삼광글라스와 군장에너지·이테크건설이 2020년 11월 합병해 탄생한 사업형 지주회사다. 합병 후엔 열병합발전소 등 발전·에너지 사업을 주로 영위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1조8984억원, 영업이익 1522억원을 올렸다. 김씨는 2015년 8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삼광글라스 주식 2만216주를 10억7536만원에 사들였다. 평균 매수 단가는 약 5만3200원이다. 하지만 회사 주가가 2018년 4월2일 하한가(–29.86%)를 맞은 것을 기점으로 4만원대로 주저앉자 김씨는 1억7858만원의 손실을 봤다.
그해 4월 2일은 삼광글라스 매매 거래가 재개된 첫날이다. 삼광글라스 감사인인 안진회계법인은 3월 29일 2016~2017년 재무제표에 ‘한정의견’을 제출했다. 삼광글라스는 2017년 11월 재고자산 172억원 어치를 폐기하고 이를 손실로 인식했다. 2016년 34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은 2017년 215억원 손실로 적자 전환했다.
안진은 “경영진이 추정한 재고자산의 실현 가능가치가 신뢰할 수 있는지 증거를 입수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사측이 회계 감사에 필요한 충분한 자료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감사인의 한정의견이 나오자 한국거래소는 삼광글라스 거래를 정지하고 관리종목으로 지정했다. 감사인 한정의견과 관리종목 지정은 주가를 끌어내리는 대표적인 악재로 꼽힌다.
이후 삼광글라스는 2018년 11월 2015~2017년 재무제표를 정정했다. 2016년 영업이익의 경우 34억원에서 17억원으로 줄고, 순손실은 20억원에서 34억원으로 커졌다.
재판부는 “기업회계기준에서 허용하는 합리적·객관적 범위를 넘어 자산을 과대평가해 재무제표에 기재하는 것은 가공의 자산을 계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짓 기재에 해당한다”며 “투자자의 합리적인 투자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오류”라고 판단했다.
단순한 회계정책 변경이라는 회사 측 주장에 대해선 “재고자산 순실현가능가치 추정 방법 변경은 회계추정의 변경이지 회계정책 변경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일축했다.
다만 유리용기 분야 경쟁 격화 등 다른 요인을 고려해 사측의 손해배상 책임은 전체 손해액의 30%로 한정했다.
원고를 대리한 박종일 법무법인 제이엘 대표변호사는 “검찰 수사와 금감원 조사 등에서 드러나지 않은 회계상 오류에 대해서도 자본시장법상 주주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SGC에너지 관계자는 “강화된 회계기준에 따라 재무제표를 수정하는 상장회사들 대다수가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며 “즉각 항소하겠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전기 재무제표를 이후 공시를 통해 정정한 상장사는 2019년 24개사에서 2020년 107개사로 급증했다. 2020년 말 상장사 2364개 중 4.5%에 해당한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판결이 합병비율과 관련한 국회 법안 논의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말이 나온다.
원고 측은 재고자산 가치 평가 문제가 2년 뒤 삼광글라스와 군장에너지·이테크건설 합병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2018년 감사인 한정의견과 관리종목 지정 등으로 주가가 급락한 것은 향후 합병과 승계 등을 염두에 두고 기업가치를 낮추려 시도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실제 2020년 3월 삼광글라스가 합병안을 내놓자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들과 주주들은 “삼광글라스는 자산가치 대비 낮게 평가된 주가(시가) 기준으로, 오너 2세 지분율이 높은 군장에너지·이테크건설은 자산가치를 기준으로 평가해 합병가액을 산정한 것은 문제가 있다”며 반발했다.
결국 금감원이 증권신고서를 두 차례나 반려하면서 정정을 요구하자 삼광글라스는 합병가액 기준을 시가에서 자산가치로 변경해 합병을 완료했다.
다만 SGC에너지 측은 “당시는 군장에너지가 합병 대신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던 시기”라며 “재판부에서도 해당 의혹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삼광글라스처럼 합병 앞둔 상장사 대주주는 인위적으로 주가를 낮추려는 유인을 갖게 된다”며 합병가액 기준 변경을 필요성 주장했다. 과거 삼성물산-제일모직은 물론 최근 동원산업도 합병비율 문제로 진통을 겪은 바 있다.
이 의원은 지난 4월 합병가액 결정 시 주가 뿐 아니라 자산·수익가치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오형주/전범진 기자 ohj@hankyung.com
경영계에서는 다른 상장사로 소액주주들의 무차별 소송이 확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합병비율 관련 법안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법원, "투자자에 5400만원 배상하라"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1민사부(부장판사 강민성)는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인 SGC에너지(옛 삼광글라스) 주주인 김모 씨가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SGC에너지가 김씨에 54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지난 9일 판결했다.OCI그룹 계열사인 SGC에너지는 ‘글라스락’ 등 유리용기로 알려진 삼광글라스와 군장에너지·이테크건설이 2020년 11월 합병해 탄생한 사업형 지주회사다. 합병 후엔 열병합발전소 등 발전·에너지 사업을 주로 영위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1조8984억원, 영업이익 1522억원을 올렸다. 김씨는 2015년 8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삼광글라스 주식 2만216주를 10억7536만원에 사들였다. 평균 매수 단가는 약 5만3200원이다. 하지만 회사 주가가 2018년 4월2일 하한가(–29.86%)를 맞은 것을 기점으로 4만원대로 주저앉자 김씨는 1억7858만원의 손실을 봤다.
그해 4월 2일은 삼광글라스 매매 거래가 재개된 첫날이다. 삼광글라스 감사인인 안진회계법인은 3월 29일 2016~2017년 재무제표에 ‘한정의견’을 제출했다. 삼광글라스는 2017년 11월 재고자산 172억원 어치를 폐기하고 이를 손실로 인식했다. 2016년 34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은 2017년 215억원 손실로 적자 전환했다.
안진은 “경영진이 추정한 재고자산의 실현 가능가치가 신뢰할 수 있는지 증거를 입수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사측이 회계 감사에 필요한 충분한 자료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감사인의 한정의견이 나오자 한국거래소는 삼광글라스 거래를 정지하고 관리종목으로 지정했다. 감사인 한정의견과 관리종목 지정은 주가를 끌어내리는 대표적인 악재로 꼽힌다.
이후 삼광글라스는 2018년 11월 2015~2017년 재무제표를 정정했다. 2016년 영업이익의 경우 34억원에서 17억원으로 줄고, 순손실은 20억원에서 34억원으로 커졌다.
김씨 "재무제표 믿고 10억 투자해 2억 손실"
김씨는 “재고자산과 영업이익, 순이익 등 중요사항이 거짓 기재된 사업보고서를 믿고 투자했다가 주가가 하락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사측은 “재고자산 순실현가치 추정방법이라는 회계정책 변경을 소급적용한 것일 뿐 전기(前期) 오류 수정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재고자산과 영업이익, 순이익 기재는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에서 말하는 ‘중요한 전기오류’로 자본시장법 162조의 ‘중요사항에 관한 거짓 기재’에 해당한다고 봤다. 자본시장법 162조는 중요사항 거짓 기재 시 투자자 배상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재판부는 “기업회계기준에서 허용하는 합리적·객관적 범위를 넘어 자산을 과대평가해 재무제표에 기재하는 것은 가공의 자산을 계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짓 기재에 해당한다”며 “투자자의 합리적인 투자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오류”라고 판단했다.
단순한 회계정책 변경이라는 회사 측 주장에 대해선 “재고자산 순실현가능가치 추정 방법 변경은 회계추정의 변경이지 회계정책 변경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일축했다.
다만 유리용기 분야 경쟁 격화 등 다른 요인을 고려해 사측의 손해배상 책임은 전체 손해액의 30%로 한정했다.
원고를 대리한 박종일 법무법인 제이엘 대표변호사는 “검찰 수사와 금감원 조사 등에서 드러나지 않은 회계상 오류에 대해서도 자본시장법상 주주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사측 "재무제표 수정했다고 배상 책임 가혹"
경영계에서는 이번 판결을 두고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면 회계상 오류를 정정한 다른 상장사들에 대해서도 소액주주를 중심으로 무차별 소송이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SGC에너지 관계자는 “강화된 회계기준에 따라 재무제표를 수정하는 상장회사들 대다수가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며 “즉각 항소하겠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전기 재무제표를 이후 공시를 통해 정정한 상장사는 2019년 24개사에서 2020년 107개사로 급증했다. 2020년 말 상장사 2364개 중 4.5%에 해당한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판결이 합병비율과 관련한 국회 법안 논의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말이 나온다.
원고 측은 재고자산 가치 평가 문제가 2년 뒤 삼광글라스와 군장에너지·이테크건설 합병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2018년 감사인 한정의견과 관리종목 지정 등으로 주가가 급락한 것은 향후 합병과 승계 등을 염두에 두고 기업가치를 낮추려 시도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실제 2020년 3월 삼광글라스가 합병안을 내놓자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들과 주주들은 “삼광글라스는 자산가치 대비 낮게 평가된 주가(시가) 기준으로, 오너 2세 지분율이 높은 군장에너지·이테크건설은 자산가치를 기준으로 평가해 합병가액을 산정한 것은 문제가 있다”며 반발했다.
결국 금감원이 증권신고서를 두 차례나 반려하면서 정정을 요구하자 삼광글라스는 합병가액 기준을 시가에서 자산가치로 변경해 합병을 완료했다.
다만 SGC에너지 측은 “당시는 군장에너지가 합병 대신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던 시기”라며 “재판부에서도 해당 의혹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삼광글라스처럼 합병 앞둔 상장사 대주주는 인위적으로 주가를 낮추려는 유인을 갖게 된다”며 합병가액 기준 변경을 필요성 주장했다. 과거 삼성물산-제일모직은 물론 최근 동원산업도 합병비율 문제로 진통을 겪은 바 있다.
이 의원은 지난 4월 합병가액 결정 시 주가 뿐 아니라 자산·수익가치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오형주/전범진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