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천만 영화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영화계를 지배했던 암울한 예측이다. 올해 이 전망은 마동석의 손맛처럼 시원하고 통쾌하게 산산조각 났다. 그것도 ‘형만 한 아우 없다’는 편견에 시달리던 한국 영화 ‘속편’으로.

영화 ‘범죄도시2’가 개봉 25일 만인 지난 11일 오후 1시50분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했다. 한국 영화로는 오스카,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은 2019년 ‘기생충’ 이후 3년 만의 기록이다. 이날까지 범죄도시2의 누적 관객 수는 1017만 명에 달했다. 누적 매출은 1051억원으로 총제작비 130억원의 8배다. 한국 영화 중 속편이 1000만 관객을 모은 건 ‘신과 함께’ 시리즈가 유일했다. 범죄도시2가 이 장벽을 무너뜨리며 ‘어벤져스’ ‘미션 임파서블’ 등 미국 할리우드 시리즈물처럼 한국 영화도 시리즈가 장기간 흥행 기록을 써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검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엔데믹에 입소문 더해져 흥행몰이

범죄도시2, 벌써 1050억 잭팟…"K시리즈물도 연타석 홈런 가능"
범죄도시2의 흥행은 관객들의 입소문이 이끌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의 평가지수인 ‘CGV골든에그지수’에서 이 영화는 개봉 이후 줄곧 99%를 유지하고 있다. 역대 한국 영화 중 최고 기록이다. 1000만 기록 달성 속도도 ‘기생충’(개봉 53일)에 비해 두 배 빠르다. 해외 성적도 좋다. 미국 캐나다 대만 홍콩 등 8개국에서 개봉했고, 현재까지 총 1072만달러(약 13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엔데믹 이후 극장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팬데믹으로 극장을 찾는 관객이 급감해 한동안 침체 일로였던 영화계에 ‘좋은 작품이 있으면 관객은 얼마든지 극장으로 향한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 영화계는 그 어느 때보다 1000만 영화의 귀환을 반기고 있다. 박찬욱 감독은 “이번처럼 남의 영화가 잘되기를 바란 적은 처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황재현 CGV 커뮤니케이션 팀장은 “엔데믹 전환 후 사회적 분위기와 콘텐츠의 힘이 더해져 시너지가 났다”며 “관객들이 극장에서 작품 속 시원한 액션과 유머를 즐기며 영화 보는 재미에 흠뻑 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판 미션 임파서블’ 새 기록 쓸까

영화계가 범죄도시2의 흥행을 눈여겨보는 이유는 또 있다. 지속적인 제작과 흥행이 가능한 시리즈물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한국 영화계에선 “시리즈물은 안 된다”는 게 정설이었다. 전작을 뛰어넘는 속편이 잘 나오지 않아 실망감을 안겨준 사례가 대부분. 할리우드에서 20여 년간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가 8편,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10편 만들어져 흥행 릴레이를 펼칠 동안 국내 영화계는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영화라는 장르는 보지 않고 미리 만족도를 가늠할 수 없는 대표적 ‘경험재’다. 속편은 어느 정도 수준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2편까지만 성공하면 앞으로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는 요인도 된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결국 상업 영화의 힘은 흥행에서 나오는데, 흥행이 일정 부분 보장되는 잘 만든 시리즈물의 탄생이 반갑다”고 했다. 그는 “연간 글로벌 흥행 순위 톱10 영화는 대부분 미국 시리즈물로 채워졌는데 한국 영화도 이제 속편으로 얼마든지 흥행작을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8편까지 계획된 정교한 세계관

12일 서울 시내 한 극장에서 시민들이 영화를 예매하고 있다. 영화 ‘범죄도시2’가 1000만 관객을 달성해 팬데믹 후 모처럼 영화관에 활기가 돌고 있다. 김병언 기자
12일 서울 시내 한 극장에서 시민들이 영화를 예매하고 있다. 영화 ‘범죄도시2’가 1000만 관객을 달성해 팬데믹 후 모처럼 영화관에 활기가 돌고 있다. 김병언 기자
범죄도시2가 전작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비결로는 스케일과 세계관의 대대적 확장이 꼽힌다. 영화에선 마석도 형사(마동석)가 강력한 빌런 강해상(손석구)과 베트남, 한국을 가로지르며 팽팽한 대결을 펼친다. 다양한 사건이 입체적으로 전개되고, 자동차 추격전 등 1편에서 볼 수 없었던 설정도 흥미를 더한다.

‘마동석 유니버스’의 완벽한 구현도 속편 흥행의 원동력이 됐다. 마동석은 이 작품의 기획, 제작, 각색, 출연을 모두 맡았다. 그리고 시즌 1을 기획할 때부터 8편까지 만드는 것을 목표로, 정교하게 세계관을 쌓아 올렸다. 연출을 맡은 이상용 감독은 시즌 1의 조연출이었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연출 데뷔를 했다. 전작부터 함께한 경험을 살려 마동석과 시너지를 냈다.

캐릭터들도 빛났다. 강렬하고 인상 깊은 캐릭터를 구축해 같은 캐릭터가 여러 시리즈에서 활약하는 ‘마블식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마석도 캐릭터는 특유의 유머와 강력한 주먹으로 관객들이 그리워한 시원한 타격감을 선사했다. 영화 관객들은 이제 한 장르로서 ‘마동석’을 이야기하게 됐다. 손석구 열풍도 흥행에 불을 지폈다. 손석구는 지난달 종영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인기를 얻었고, 영화에선 악랄하고 잔인한 빌런 연기를 매끄럽게 소화해냈다.

영화의 시즌 3는 다음달 촬영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마석도에 맞설 새로운 악당으로는 배우 이준혁이 출연한다. 흥행에 힘입어 시즌 4 기획도 동시에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