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운전 근로 조건이 악화되면서 플랫폼에 대한 기사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12일 서울 중구 동반성장위원회 앞에서 열린 '대리운전기사 권익과 시민 안전을 보장하는 사회적 대책 촉구 기자회견'.   연합뉴스
대리운전 근로 조건이 악화되면서 플랫폼에 대한 기사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12일 서울 중구 동반성장위원회 앞에서 열린 '대리운전기사 권익과 시민 안전을 보장하는 사회적 대책 촉구 기자회견'. 연합뉴스
퇴근 후 전기자전거로 배달을 하던 A씨는 ‘콜사’(배달 콜이 오지 않는 상황)가 계속되자 대리운전에 뛰어들었으나 한 달만에 포기했다. A씨는 “20%에 가까운 수수료와 새벽택시비, 보험비, 프로그램 이용료 등을 빼면 수입이 많지 않았다”며 "최근 의무적으로 수행해야하는 콜까지 생겨 부담이 컸다"고 전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대리운전 업계 플랫폼에 대한 기사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배달을 그만두고 대리운전에 뛰어드는 등 공급이 늘어나자 중개 업체들이 기사들에 대한 혜택을 줄이고 부담은 늘린다는 불만이다. 소수 사업자가 대리운전 플랫폼을 과점한 가운데, 동반성장위원회가 신규 기업의 진입을 제한하면서 업체 간 경쟁이 없어지고 기사들의 근로 여건은 악화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 수수료, 보험료에...숙제까지”

배달라이더들이 모인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배달 세상’엔 이달 첫 주 동안 대리운전 이직에 관한 글이 20건 가량 올라왔다. 거리두기 해제 전인 1월엔 5건 정도 였음을 고려할 때 대리운전 기사로 전직하는 라이더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리기사 수가 늘자 중개업체들이 대리기사에게 요구하는 사항이 늘어 근로조건이 악화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개 프로그램사 로지는 이른바 ‘숙제’ 제도를 지난 4월 재개해 시행 중이다. 대리기사가 급격히 빠져나간 2020년에 제도를 중단한 지 2년 만이다. 숙제제도는 밤과 새벽 피크타임에 로지 프로그램이 배정한 콜을 수행한 대리기사에게 다음날 선호하는 도착지를 설정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제도다. 수도권에서 대리운전을 하는 한기석 씨는 “숙제를 하지 않으면 다음날 콜을 잘 받을 수 없다”며 “로지가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대리기사들의 콜 선택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수수료 및 각종 비용에 대한 불만도 여전하다. 대전에서 대리운전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광원 씨는 “전화 콜 회사들은 20%의 수수료에 더해 프로그램비, 관리비, 보험비까지 요구하고 있다”며 “회사들이 ‘일하기 싫으면 나가라’고 하면 대응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국내 대리운전 시장은 전화 콜이 80%를 차지한 가운데 로지를 비롯해 콜마너, 아이콘 등 중개 프로그램 회사들이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나머지 20%는 온라인 플랫폼인 카카오모빌리티가 차지하고 있다.

중기 적합업종 지정되자 '배짱'

동반성장위원회가가 전화콜 대리운전 주선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면서 기사들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비판도 나온다. 중소 대리운전 업체들의 과점 구조를 지켜주면서 대리운전 기사들의 처우가 악화됐다는 지적이다. 동반성장위는 향후 3년간 대기업의 전화 콜 대리운전시장 신규 진출과 카카오모빌리티 등의 사업 확대 자제를 권고했다.

대리운전 기사들은 과거 카카오모빌리티가 시장에 처음 진입하며 20%의 수수료를 제시해 기존 업체 수수료도 20%대로 끌어내려지는 반사이익을 봤다. 그러나 동반성장위가 개입한 탓에 대리운전 기사들의 처우 개선이 힘들어졌다. 카카오모빌리티 관계자는 “지난해엔 수수료를 20% 밑으로 내리려했지만 기존 업체들의 반발로 무산됐다”고 전했다.

경쟁이 제한된 상황에서 대리기사 유입이 가속화한다면 기존 업체들의 지배력은 더욱 강해질 전망이다. 김종용 전국대리기사협회장은 “동반성장위원회가 대리운전업체 뿐만 아니라 기사들의 목소리도 반영해 구체적 상생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세영 기자 seyeong202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