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일은 ‘세계헌혈자의 날’이다. ABO식 혈액형을 발견하고, 치료 목적으로 수혈을 가능하게 한 오스트리아 병리학자 카를 란트슈타이너 박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생일을 세계헌혈자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올해 세계헌혈자의 날 캠페인 슬로건을 ‘함께하는 헌혈, 우리의 헌혈이 생명을 살립니다’로 정하고, ‘자발적 무상헌혈’로 사회적 협력과 결속을 강화할 것을 호소했다.

우리나라 무상헌혈의 역사는 6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4·19혁명 당시 수백 명의 부상자를 치료하기 위해 대량의 혈액이 필요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병원으로 모여들어 자신의 피를 나눠주겠다고 한 것이 시초가 됐다. 이러한 정신은 5·18민주화운동으로 이어져 위험을 무릅쓴 시민의 헌혈로 부상자들을 치료할 수 있었다. 국민들의 이타심이 수많은 생명을 살린 것이다.

‘헌혈’ 하면 개인적으로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필자가 인턴 시절에 겪은 일로, 심장 수술을 앞두고 혈액 냉장고에 넣어놓은 혈액을 냉장고가 고장 나 폐기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당장 수술해야 하는데 수혈할 혈액이 없으니 자칫 환자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 환자와 혈액형이 같았던 필자와 동료 인턴은 망설임 없이 팔을 걷어붙였고 환자는 무사히 수술받을 수 있었다. 혈액이 인간의 생명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현장에서 몸소 느낀 소중한 경험이었다.

다행히 한국 국민의 헌혈 참여율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꽤 높은 편이다. 하지만 총 헌혈자의 57%가 10~20대에 몰려 있고, 저출산·고령화 현상은 헌혈 인구 확보에 큰 위협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적십자사는 중장년층 헌혈자 건강 서비스 강화, 헌혈자 공가 부여 및 예비 헌혈자 교육 등을 통해 헌혈 인구를 확대하는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 적십자는 정부와 국회의 협조로 ‘혈액관리법’을 개정해 세계헌혈자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국민에게 헌혈의 중요성을 알리고, 헌혈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예우를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작년 보건복지부에서 실시한 ‘국민 헌혈 인식도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5명이 평소 헌혈에 관심이 있으며, 10명 중 7명은 ‘헌혈은 불편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응답했다. 문제는 지속성이다. 혈액은 인공적으로 만들 수 없고, 장기간 보관할 수도 없다. 혈액 부족으로 환자의 고귀한 생명이 위협받지 않기 위해서는 약간의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관심을 실천으로 옮기는 우리 모두의 의지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