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연극 '소프루'
세계적인 예술축제 '아비뇽' 최초
非 프랑스인 예술감독 호드리게스
40여년 일한 프롬프터의 삶 다뤄
연극과 현실 넘나드는 독특한 형식
오는 17~19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 무대에 오르는 ‘소프루(sopro)’는 호드리게스의 대표작이다. 포르투갈 도나 마리아 2세 국립극장이 제작해 2017년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이다. 당시 “연극과 연극을 창조하는 이들에 대한 강렬한 헌사”(르 피가로)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번 서울 무대는 초연 출연진과 제작진이 그대로 내한해 포르투갈어로 공연한다.
‘소프루’는 포르투갈어로 ‘숨’ ‘호흡’을 뜻한다. 영어 자막 영상으로 미리 본 작품은 공연 시작부터 왜 제목이 ‘소프루’인지 짐작하게 한다. 폐쇄된 극장 내부처럼 보이는 무대에 검은 옷을 입은 한 여자가 연극 대본을 들고 등장한다. 손짓으로 배우들을 불러내고 그들에게 다가가 숨을 불어넣듯 나지막이 속삭인다.
공연은 관객이 볼 수 없는 곳에서 배우에게 대사나 동작을 일러주는 ‘프롬프터’를 전면에 등장시킨다. 포르투갈에서 40여 년 동안 현역 프롬프터로 활동해온 크리스티나 비달이 직접 출연한다.
호드리게스는 2010년 도나 마리아 2세 국립극장 소속 극단의 연습 장면에서 비달의 모습을 눈여겨봤다. 2015년 이 극장의 예술감독으로 취임했을 때 비달에게 “당신의 인생을 담은 작품을 쓰겠다”고 제안하면서 직접 출연해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배우가 아니다”며 손사래를 치는 비달을 무대에 세우기까지 2년이 걸렸다.
이런 설득 과정이 무대에서 고스란히 재현된다. 극은 비달의 ‘극장 인생’을 허구와 실재(實在), 연극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형식으로 보여준다. 비달은 약 120분 공연 내내 무대 위에서 프롬프터처럼 배우들에게 대사를 불러주고 연기를 지켜보며 자신의 인생을 연출한다. 극 중 연출가는 프롬프터를 인명 구조요원에 비유한다. 허구와 실재 사이에 흐르는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배우를 건져내 숨을 불어넣는 게 프롬프터의 일이라는 것이다.
연극은 ‘기억의 예술’임을 일깨우는 공연이다. 이 연극은 인생의 대부분을 극장에서 보낸 프롬프터의 기억을 무대로 끄집어내, 비달처럼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타인을 위해 일하며 행복과 의미를 찾는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무대에서 내내 숨만 불어넣던 비달이 마침내 객석을 향해 직접 목소리를 내는 순간의 감동은 꽤나 묵직하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