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재즈계의 간판스타인 보컬리스트 웅산(오른쪽)과 피아니스트 배장은이 오는 23일 서울 대흥동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재즈 리부트’ 무대에 함께 오른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국내 재즈계의 간판스타인 보컬리스트 웅산(오른쪽)과 피아니스트 배장은이 오는 23일 서울 대흥동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재즈 리부트’ 무대에 함께 오른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25년 전에 각자 갈 길을 갔다면 웅산(49)과 배장은(48)이 만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록밴드 보컬’(웅산)이 ‘클래식 피아니스트’(배장은)와 합을 맞추리라곤 두 사람도 생각하지 못했을 터. 하지만 웅산과 배장은은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때 재즈에 빠져들었고,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수’가 됐고, 며칠 뒤 한 무대에 선다.

오는 23일 서울 대흥동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재즈 리부트(JAZZ REBOOT)’ 공연에서다. 1004석 규모로 리모델링한 마포아트센터 재개관을 기념해 열리는 이 공연에서 웅산은 ‘배장은 리버레이션 밴드’와 협연한다. 똑같이 1996년에 데뷔한 두 사람이 한 무대에 서는 건 초창기 서울의 자그마한 클럽에서 손을 맞춘 이후 20여 년 만에 처음이다. 국내 재즈 팬들을 설레게 한 이들을 지난 13일 서울 양재동 지하 연습실에서 만났다.

재즈 스타들의 만남

지난 13일 서울 양재동에서 연습하고 있는 배장은(왼쪽)과 웅산.
지난 13일 서울 양재동에서 연습하고 있는 배장은(왼쪽)과 웅산.
두 사람은 20년도 더 지난 얘기를 더듬으며 서로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냈다. 배장은이 “언니, 우리 야누스에서 같이 무대에 올랐었죠?” 하고 묻자, 웅산은 “피플! 거기서도 만났잖아”라며 맞장구를 쳤다. 야누스와 피플은 올댓재즈, 원스인어블루문과 함께 당시 재즈 애호가들이 찾던 서울의 대표적인 재즈클럽이었다.

당시 여섯 곡에 2만원을 받고 자그마한 재즈클럽 무대에 올랐던 이들은 이제 국내 재즈 2세대를 대표하는 간판스타가 됐다. 웅산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재즈 보컬리스트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의 ‘재즈 명예의 전당’ 격인 빌보드라이브와 블루노트 등에 초청받은 1호 한국인이다. 한국대중음악상을 비롯해 한국과 일본에서 주는 수많은 상의 단골 수상자다. 작년 1월부터 사단법인 한국재즈협회장도 맡고 있다.

배장은도 만만치 않다. 세계적인 재즈 색소포니스트 그렉 오스비를 비롯해 멧 팬먼, 이딧 쉬너, 아리 호닉 등 세계 뮤지션들과 함께 무대에 서면서 이름을 날렸다.

지금은 ‘한국 재즈의 아이콘’이 됐지만 두 사람의 음악 인생 출발점은 재즈가 아니었다. 대학 시절 록밴드 보컬이었던 웅산은 빌리 할리데이의 ‘I’m a fool to want you’를 듣고선 재즈로 방향을 틀었다. 배장은은 서울예대 은사였던 고(故) 정성조 교수를 따라 재즈클럽에 다니다가 우연히 펑크를 낸 피아니스트 자리를 대신한 게 프로 재즈 피아니스트가 된 계기가 됐다. 신관웅, 김광민 등 국내 재즈 음악을 개척한 1세대와 함께 무대에 오르면서 성장했다.

두 사람은 이번 공연에 대해 “재즈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며 한목소리를 냈다. 배장은은 “이번 공연에 올리는 모든 곡을 직접 편곡했다”며 “기본 밴드에 더해 트럼펫(오재철)·색소폰(여현우)·트롬본(서울) 연주자들을 추가 섭외한 만큼 보다 화려하고 깊은 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웅산은 “관객들과의 호흡이 뭔지 보여주겠다”고 했다. 연주가 전부인 클래식 음악 공연과 달리 재즈는 연주자·보컬과 관객이 함께 무대를 만든다. 웅산은 “재즈는 같은 편곡과 연주자, 보컬이라도 어떤 시간·공간에서 어떤 관객과 함께하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공연이 된다”며 “최상의 ‘잼’(즉흥연주)은 연주자·보컬과 관객이 하나가 될 때 나온다”고 했다. “공연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을 맞추는 건 관객”이란 얘기도 했다. 웅산은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는 뛰어난 가창력과 능숙한 무대 매너로 잘 알려져 있다.

“K팝 다음 주자는 K재즈”

수많은 공연이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았지만, 재즈는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흔들린 분야로 꼽힌다. 라이브 공연이 재즈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높아서다. 배장은은 “서울 이태원의 올댓재즈, 청담동의 원스인어블루문과 같은 역사적인 재즈클럽들이 코로나19를 이기지 못하고 폐업해 마음이 아프다”며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처럼 매주 한 번 클럽 공연을 통해 재즈 팬들과 더 자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2년간 시장은 크게 위축됐지만, 오히려 ‘K재즈’가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을 가능성은 높아졌다고 두 사람은 입을 모았다. 웅산은 “해외에서 공연하다 보면 K팝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 재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걸 체감한다”며 “세계적인 재즈 뮤지션과 함께 투어를 다니는 젊은 한국 연주자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배장은도 “많은 대학이 실용음악과를 신설하고 음악시장이 커지면서 재즈로 승부를 보려는 젊은 뮤지션이 늘고 있다”며 “이들이 주역이 될 때쯤엔 K재즈가 K팝에 이어 세계 시장을 호령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즈의 전설’ 루이 암스트롱은 누군가 “재즈가 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당신이 재즈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재즈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웅산과 배장은도 같은 질문에 비슷한 대답을 내놨다.

“재즈는 공부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들리는 대로 들으세요. 그리고 느끼세요. 재즈는 아티스트와 관객이 자유롭게 영감과 에너지를 주고받는 ‘자유의 음악’입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