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술이 주는 취흥보다 벗들과의 술자리 담소를 더 좋아한다. 개량한복보다 청바지를,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더 좋아한다. 동양의 산수화보다 도시인의 고독을 그린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나 마크 로스코의 추상 회화를 더 좋아한다. 현대 건축의 거장으로 꼽는 르 코르뷔지에보다 핀란드 건축가 알바 알토를 더 좋아한다. 하드록보다 고전음악 듣는 걸 더 좋아한다. 시리얼보다 밥을 더 좋아한다. 간판이 즐비한 도심보다 제주도 사려니숲이나 한적한 바닷가 걷기를 더 좋아한다. 이것은 곧 내 취향에서 반향을 한 것이다.

이젠 감성·취향이 이끄는 시대

[장석주의 영감과 섬광] 멋있게 살고 싶다면 좋은 취향을 기르시라
좋아하는 습관이 취향으로 길러진다. 취향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리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보탬이 된다. 후천적 학습으로 얻은 사치, 특정 사물이나 경향에 끌리는 것을 취향이라고 한다. 취향은 실존보다는 가벼운 미적 감수성이고, 의식의 지향이며, 삶을 향유하는 방식의 일부다.

삶의 원리로서의 도덕이나 인생 중대사를 결정하는 척도를 제시하던 이성의 힘은 과거에 견줘 확연하게 약해졌다. 그 대신 취향이 삶을 그러쥐는 힘은 더 세졌다. 취향은 소비생활이나 직업 선택에 두루 영향을 미치고, 과거에 견줘 훨씬 더 큰 지출을 일으킨다. 우리는 감성과 취향이 이념이나 도덕을 대체하는 시대로 들어섰다. 지금 우리를 쥐락펴락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고, 도덕이 아니고 취향이다.

친구 K는 누구보다 담배를 사랑했다. K에게 담배는 참을 수 없는 충동이고, 전유(專有)된 것, 자유,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용물, 공중으로 사라지는 한 줌의 쾌락이었을 것이다. K는 돌연 폐암을 진단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아마 폐암과 흡연은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다.

담배를 끊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건강을 원하면서도 담배의 유혹에 빠져든다. 흡연은 피로에 젖은 육신을 진정시키고 지루함을 견딜 수 있게 미약한 도취와 나른한 행복을 가져다준다.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가 새벽부터 밤까지 한시도 궐련을 입에서 떼어놓은 적이 없는 애연가였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나는 비흡연자로 살았다. 흡연이 도락이나 취향인 적은 없었고, 앞으로도 담배를 피울 생각은 없다. 담배 맛을 모른 채 살았다고 억울한가? 그렇지 않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비흡연자의 보람으로 금연을 이유로 육체 에너지나 시간을 소모하지 않은 점을 내세울 수 있다. 담배를 피우고 말고는 개인의 자유에 속한다. 흡연자가 의지박약이거나 타인의 건강과 행복을 위협하는 무례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다. 물론 히틀러 같은 세기의 살인마가 흡연을 경멸하고 흡연자를 악마처럼 대했다는 걸 굳이 얘기하고 싶지도 않다.

당신은 흡연자인가, 아니면 비흡연자인가? 담배 피우기는 인류를 사로잡은 가장 강력한 취향 중 하나일 것이다.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 피우는 행위, 즉 흡연은 해악이 많은 취향, 역설과 아이러니를 품은 도락이다. 오늘날 담배가 몸에 해악을 끼친다는 건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백해무익한 담배를 끊지 못한다면 누구든 공공의 적으로 낙인이 찍힐 수 있다. 더러는 봉변을 당할 수도 있고, 공공장소에서 추방당할 수도 있다.

우리는 흡연자의 회색빛 슬픔에 대해 다 알지 못한다. 흡연이 몸에 해롭다는 이유로 흡연자를 겁박하는 행위는 마뜩잖다. 흡연자가 태양계를 도는 행성들의 궤도에 영향을 미쳤다거나 지구 생물을 절멸시킬 만큼 나쁘지는 않다는 것도 우리는 안다. 누군가는 소금을 더 좋아하고, 누군가는 후추를 더 좋아하고, 누군가는 설탕 든 음식을 더 선호한다.

소금과 후추…설탕·담배의 역설

시인이자 화가였던 장 콕토는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여 한 모금을 폐 깊이 빨아들이는 흡연을 ‘의식’으로 승화시킨다. 담배 연기를 흡입할 때 담배 끝에서 불꽃이 타오른다.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작은 불의 꽃! 이게 꺼지면 한 줌의 재만 남는다. 인간도 화장장의 불꽃에 삼켜지고 한 줌의 재만 남긴다. 우리를 재의 천국으로 이끄는 담배는 인생의 덧없음에 대한 은유로 부족함이 없다.

보들레르는 “인생은 담배이며,/불꽃, 재, 그리고 불 그 자체다”라고 썼다. 담배 한 대가 가진 쾌락, 이 덧없고 달콤한 행복에 자기를 바치는 흡연자는 영웅적 자기희생자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마약 문제로 기소되자 재판정에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삶은 제 의지와 선택의 결과여야 한다는 사강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옹호는 취향에서도 존중돼야 한다.

좋은 취향 없으면 매력도 반감

지구인 중 일부는 여전히 흡연을 통해 고통을 견디는 힘을 얻고 가느다란 위안을 구한다면, 흡연자를 대할 때 약간의 너그러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설사 흡연이 ‘부정적 쾌락’을 얻는 유력한 수단이라고 해도 나는 흡연자를 ‘색출’하고, ‘저격’하며, ‘추방’하려는 집단 광기에 힘을 보탤 생각은 없다.

시, 무용, 코미디가 그렇듯이 담배는 무용하다. 흡연은 무용한 것에 바치는 자기희생의 의식이다. 아름다움은 덧없음을 성분으로 삼는다. 취향의 숭고성은 그것이 산출하는 유용성에서 비롯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담배의 쾌락이 더는 즐겁지 않다면, 그리고 약간의 꺼림칙함이 느껴진다면 담배를 끊어야 할 때가 됐다는 신호다.

꺼림칙함의 바탕은 죄책감이다. 더 나은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당신을 위해서 담배를 끊자. 어떤 취향이든 우리 생의 에너지를 갉아먹고 죄책감을 준다면 그것과 결별하는 게 옳다. 당신이 방금 피운 담배 한 대는 마지막 담배다. 이제 당신의 취향 목록에서 흡연은 과감하게 삭제하시라!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날 ‘얼어 죽어도 난 아이스 아메리카노야!’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무심코 발설한 당신의 취향일 테다. 옷, 구두, 모자, 안경 같은 액세서리를 고를 때 드러나는 특정한 안목과 지향성이 취향이다. 취향은 본디 뾰족하다. 뾰족한 탓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 취향은 생활방식, 태도, 스타일에 관여하는 힘이다. 결과적으로 당사자의 품격과 분위기를 빚는다.

삶을 더 즐겁게, 멋지게 살고 싶다면 좋은 취향을 기르시라. 취향 없이 밋밋한 사람을 나는 존경하거나 친구로 삼고 싶지 않다. 좋은 취향을 갖지 못한 사람은 매력이 반감될뿐더러 조금은 불행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