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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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난에 빠진 사립대들을 구제하기 위해 정부가 규제 완화 카드를 꺼냈다. 캠퍼스 내에 노는 건물과 땅 등 재산을 수익용으로 쉽게 바꿀 수 있도록 해주고, 차입 자금의 용도 제한도 풀어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가에선 14년째 이어지고 있는 등록금 인상 규제가 유지되는 한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란 지적도 나온다.
사립대 규제 푼다…노는 땅·건물 수익용 전환 쉽게

연구실을 상가로 개조 가능

교육부는 사립대학(법인)이 보유한 재산을 유연하게 활용해 재정 여건을 개선할 수 있도록 ‘사립대학 기본재산 관리 안내’ 지침을 이같이 개정한다고 14일 밝혔다. 지난해 서울 주요 사립대의 80%가 재무제표상 운영차액(운영수익-운영비용) 적자를 기록하는 등 대학의 재정난이 심각해지자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본지 6월 9일자 A2면 참조

개정안의 핵심은 사립대가 일정 수준의 교육용 건물·토지를 확보했다면 그 이상의 유휴 재산은 조건 없이 수익용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의 자산은 크게 ‘교육용 기본재산’과 ‘수익용 기본재산’으로 이뤄져 있다. 교육용 재산은 교지(땅), 교사(건물) 등 교육 활동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재산이다. 수익용 재산은 법인이 학교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얻기 위해 수익을 창출하는 재산이다. 남대문 연세재단세브란스빌딩이 대표적이다.

교육용 기본재산을 수익용으로 용도 변경하기 위해 법인으로 넘기려면 해당 재산의 시가에 해당하는 금액을 교비회계에 채워넣어야 하는데 앞으론 유휴 재산에 대해선 이를 면제해주겠다는 것이다. 박준성 교육부 사립대학정책과장은 “사립대들이 교육·연구 활동에 쓰지 않고 있던 토지와 건물을 수익용으로 전환해 적극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늘어난 수익금을 교육환경 개선 등에 재투자함으로써 대학 교육의 질을 제고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정안은 15일부터 바로 시행된다.

“재정난 해소하기엔 역부족”

캠퍼스 안에 수익용 건물을 세우는 것도 가능해진다. 지금까지는 매점, 서점, 커피숍 등 일부 업종만 허용했는데 이제는 학원, 주점 등 금지 업종을 제외하고 대부분 들어올 수 있게 된다. 1~2층에는 병원, PC방, 체육시설이 있고 3~5층은 강의실로 쓰는 복합시설을 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밖에 수익용 기본재산의 처분금을 경영난 해소에 사용할 수 있다. 교직원의 임금 지급 등 학교 운영에 쓰기 위해 빚을 내 자금을 조달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대학가에선 교육당국의 이번 조치를 환영하면서도 재정난을 해소할 근본적 대책이 되지는 못할 것이란 반응이 나온다.

서울의 한 사립대 총장은 “국내 사립대 대부분은 수익의 60~70%를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다”며 “등록금 인상 규제가 풀리지 않으면 재정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익사업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취지는 좋지만, 연세대 이화여대 홍익대 등 적립금을 많이 쌓아두거나 부지가 넓고 도심지에 있는 일부 대학이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학령인구 급감에 대비해 자생력이 없는 사립대들의 퇴로를 열어줘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행법상 학교법인이 해산할 경우 청산하고 남은 재산은 모두 국고로 귀속되는 탓에 이를 회피하는 차원에서 버티기에 들어간 부실 대학이 많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2019년 8월 ‘대학 혁신 지원 방안’을 발표하며 부실 대학 청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지만 2년여가 지난 현재까지도 진전된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