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신(新)기업의 가치
법인(法人)의 정의는 법에 의해 권리·의무의 주체로서 자격을 부여받은 ‘사람’을 뜻한다. 기업도 하나의 인격체로서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법학과 교수인 조엘 베이칸은 법률상 기업을 사람(人)으로 본다는 점에 착안해 기업의 인격적 특성을 분석한 바 있다. 사회의 주요 구성원이자 하나의 인격체로서 기업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고민이 나날이 깊어지고 있다.

사실상 기업은 자본주의, 산업화의 주체로서 일면 사회적 정의에 반하는 존재로도 인식돼 왔다. 이윤 추구라는 목적 아래 성장을 위해 사회적 생태계에 함께 존재하는 것들에 소원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기업은 전 세계 사람들의 일상에 깊이 들어와 있으며, 생계와 이윤 창출 수단을 넘어 인류 발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로서 그 책임감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이에 더해 오늘날 사람들은 환경, 인권 등 사회적 가치를 중요시하고 보다 착한 기업, 보다 나은 인격을 가진 법인이 되길 요구한다.

그 맥락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지속가능 경영, 동반성장 등의 경영 키워드가 나오기 시작했고, 오늘날 ESG 경영으로 추구되고 있다. 이제 기업은 투자자뿐 아니라 사회적인 모든 관계와 환경, 사회, 지배구조에 대한 가치를 기업 운영의 필수 고려 요소로 여길 것을 요구받는다. 이런 가치는 투자 가치의 조건으로도 여겨지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이미 오래전부터 기업의 책임에 관해 논의해 왔고, 기후 변화와 환경오염에 대한 경고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기업으로서 가치를 확보하고 지속해 나가는 것의 관건은 얼마나 ‘실행’하고 ‘속도’를 내느냐에 있다. 문제를 인식하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이고 투명하게 사회적 과제의 해결을 이뤄내야 한다.

얼마 전 국내 경제계를 대표하는 76개 기업이 모여 ‘신(新)기업가정신’을 선언하고 관련 협의체인 ‘신기업가정신협의회’를 공식 출범시켰다. 기업 선언문은 일자리 창출과 경제적 가치 제고, 외부 이해관계자에 대한 신뢰와 존중으로 윤리적 가치 제고, 구성원이 보람을 느끼고 발전할 수 있는 기업문화 조성, 친환경 경영 실천,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 등 5대 실천 명제를 명시했다. 일자리 창출, 경제적 제고에 그 주된 역할이 있던 기업이 이제 그 가치의 무게중심을 옮겨 기업의 인격을 함양해 나가고 있다.

병들어가는 지구는 에너지 전환 등 친환경적 가치를 세상에 요구하고 디지털 전환, 인구절벽과 세대의 인식 변화는 존중, 평등, 포용, 다양성, 투명함을 요구한다. 이제 기업들은 세상이 제시하는 나침반을 따라 기업만이 아니라 ‘모두의 지속성’을 위해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