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링거인겔하임은 14일(미국 시간) 트루티노 바이오사이언스와 인수옵션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특정 성과(마일스톤)를 달성하면 베링거가 트루티노를 인수한다는 것이다.

트루티노는 사이토카인을 종양미세환경에서만 활성화시키는 ‘주문형 사이토카인 플랫폼(ODC)’ 기술을 보유한 회사다. ‘인터루킨-2(IL-2)’ 기반 면역항암제를 개발하고 있다. 업계는 지난 3월에 있었던 넥타 테라퓨틱스의 IL-2 기반 임상 실패의 충격을 아직 잊지 못하는 상황.

베링거인겔하임이 ‘러브콜’을 보낸 이유를 필립 김 트루티노 대표(사진)에게 물었다. 김 대표는 1982년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재미교포 1.5세대다. 아래는 김 대표와의 화상 인터뷰 일문일답.

Q. ‘인수옵션 계약’이라는 개념이 생소하다.
A. 특정 조건을 달성하면 인수하는 것으로 보면 쉽다. (밝힐 수는 없지만) 베링거인겔하임은 트루티노에 ‘미션’을 줬고, 우리가 그 미션을 달성하면 베링거인겔하임이 트루티노의 주식 전부를 인수할 예정이다. 어렵거나 까다로운 그런 미션은 아니다. 우리의 후보물질(파이프라인) 연구개발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충분히 달성가능한 조건이다. 베링거인겔하임은 소위 ‘간’을 본다거나 하는 식으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두터운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인수옵션 계약을 제시한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이 같은 방식의 인수가 늘어나는 추세다. 과거에도 베링거인겔하임이 같은 방식으로 신약벤처 기업을 인수한 사례가 있다. 무엇보다 베링거인겔하임은 평판을 중요하게 여기는 회사다. 정당한 결격사유 없이 계약을 파기하거나 한다면, 이후 다른 신약벤처들이 진지하게 협력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윈-윈’이 아니라 서로에게 ‘마이너스’가 되는 관계가 될 수 있다.

Q. 베링거가 트루티노를 인수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A. 이번 인수옵션 계약이 하루아침에 나온 게 아니라는 점을 먼저 강조하고 싶다. 베링거인겔하임과의 협력은 2020년 2월부터 공식화됐다. 트루티노의 ODC 플랫폼을 기반으로 연구협력 및 세계 권리 이전 계약을 체결한 게 이때다. 최대 3개 후보물질을 공동개발하는 협약이었다. 공동연구를 시작한 뒤엔 ‘찐한’ 네트워크를 쌓아갔다. 보통 신약벤처들은 분기 정도마다 연구성과를 공유하는데 우린 매주 베링거인겔하임과 논의했다. 그렇게 2년을 보내니 베링거인겔하임과 트루티노가 거의 한 몸처럼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게 됐다.

Q. 트루티노의 ODC가 베링거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고 보면 되는가?
A. 이것은 ‘자랑’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베링거 쪽의 수요(니즈)를 만족시키지 못했다면 당연히 이 같은 계약이 성사되기 어렵다. 베링거가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이 있고, 트루티노는 그림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퍼즐 조각을 제공한다고 보면 된다. 베링거는 항암 파이프라인, 그 중에서도 T셀 인게이저와 항암 백신에 관심이 크다. 사이토카인은 면역세포의 활성을 높이는 신호전달 단백질이다. 우리의 무독성 사이토카인 기술이 있으면 다양한 병용을 시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Q. IL-2 임상이 실패한 사례가 있었다. 트루티노는 이와 어떤 차별점을 갖고 있나?
A. 이를 설명하기 위해선 먼저 IL-2의 한계점에 대해 짚어봐야 한다. IL-2는 알다시피 면역세포의 활성을 높이지만 반감기가 짧다. 때문에 기대하는 만큼의 효과를 보기 위해선 고농도로 투여해야 한다. 하지만 이 때 다양한 부작용이 생긴다. 혈액과 혈액 성분이 혈관 바깥으로 누출되는 모세혈관 누출 증후군이나 백혈구 수가 줄어드는 호중구 감소증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임상의 실패 원인은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IL-2의 활성을 너무 낮춘 데 있다고 본다. 부작용을 줄인 데까진 좋았지만 약효도 함께 떨어져 버린 것이다.
트루티노의 ODC는 IL-2 등 사이토카인을 탑재하는 플랫폼으로 보면 이해하기 쉽다. 종양미세환경에 도달했을 때 특정 조건에 의해 사이토카인이 노출되는 식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종양미세환경에서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도록 조작(엔지니어링)했다. 그 결과, 전임상에서 면역세포가 주위에 있어도 반응하지 않는 ‘콜드 튜머’를 면역세포 활성이 활발한 ‘핫튜머’로 바꾸는 것을 확인했다. ODC는 종양미세환경이 아니면 사이토카인을 노출시키지 않기 때문에 표적하는 곳이 아닌 곳에선 부작용에 대한 염려도 적다.
트루티노의 파이프라인 ODC-IL2는 IL-2를 약물(페이로드)로 쓰고 있지만, 플랫폼 기술인 만큼 IL-2외 다른 사이토카인 등 다양한 물질을 실을 수 있다.

Q. 베링거 외 다른 제약사에서의 ‘러브콜’은 없었나.
A. 베링거와 본격적인 협력에 들어가기에 앞서 당연히 다양한 글로벌 제약사들을 만났다. 하지만 모든 곳이 베링거처럼 진지하지는 않았다. 베링거와의 관계는 상당히 빠르게 진전됐다. 2019년 2월 처음 만난 뒤, 4월, 6월, 8월 이런 식으로 격달로 회의를 하다, 11월 좀 더 진지한 이야기가 오간 뒤 2020년 2월 공동개발 계약을 하게 된 거다. 이번 인수옵션 계약은 지난 1월 JP모간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얘기가 나온 뒤 5개월 만에 도장을 찍은 거다.

Q. M&A를 희망하는 다른 신약벤처 기업들에게 조언한다면?
A. 제약사마다 추구하는 것이 다르다. 베링거는 초기 기업과 함께 손발을 맞추며 초기 단계 약물을 발전시켜나가는 방식을 선호하는 곳이다. 그에 반해 임상 2상이나 3상 데이터를 본 뒤에나 신중하게 인수하는 곳도 있다. 이런 점을 먼저 이해하면 접근하기 쉽다.
우리 기술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기 위해선 결국 그들이 가진 파이프라인을 눈여겨 봐야 한다. 특히 실패한 것들을 봐야 한다. 완전히 접었다면 어렵겠지만, 소위 미련이 남았다면 해볼 만하다. 이미 경쟁약이 나온 상황이더라도, 우리가 가진 약과 시너지 효과가 난다면 의미가 있다.
‘밀당’도 필요하다. 모든 패를 공개해버리면 상대방은 당연히 흥미가 떨어진다. 여러 번 만날수록 친밀한 관계를 쌓을 가능성이 커진다.

Q. 파트너스인베스트먼트는 베링거를 만나기 전까지 유일한 투자자였다. 어떤 인연인가.
A. 2017년 삼성서울병원과 협업할 일이 있었다. 이때 내가 스타트업(신생벤처)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니 파트너스인베스트먼트를 소개해줬다. 2017년 가을께에 화상으로 처음 만난 뒤, 2018년 오프라인 회의를 처음 갖고 그해 가을 150만달러를 투자해줬다. 당시엔 정말 보여줄 수 있는 데이터가 별로 없었는데, 믿고 투자해줘 여기까지 오는 데 큰 힘이 됐다.

Q. 트루티노의 올해 목표는?
A. IL-2 기반 후보물질인 ‘ODC-IL2’의 임상시험계획 신청 전 회의(pre-IND meeting)를 오는 9월께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임상시험계획(IND)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제출하기까지는 8~9개월이 더 걸릴 것으로 본다. 이 외에도 플랫폼이라는 특성을 활용해 파이프라인 수를 좀 더 늘리고자 한다.

필립 김 대표는?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미생물·면역학·분자유전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6년부터 2016년까지 11년 동안 네슬레의 자회사인 프로메테우스 연구소에서 연구개발 분야 시니어 디렉터로 지내며 종양학과 자가면역질환 관련 기술을 개발했다. 항암제 신약개발을 본격적으로 하고자 트루티노 바이오사이언스를 2018년 설립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