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 환자에 친구를 소개해주는 서비스…"'삶을 바꿨다' 반응에 보람"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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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의 진주들]
2020년 '어센트 오티즘' 창업한 이혜련 대표
온라인 네트워킹으로 비슷한 그룹 형성, 자폐인 삶의 질 개선에 역할
"친구가 필요하지만, 어떻게 친구를 만드는지 모르는 게 자폐"
"스스로 신청하는 성인 환자 많아.. 오랫동안 외로웠던 이들"
2020년 '어센트 오티즘' 창업한 이혜련 대표
온라인 네트워킹으로 비슷한 그룹 형성, 자폐인 삶의 질 개선에 역할
"친구가 필요하지만, 어떻게 친구를 만드는지 모르는 게 자폐"
"스스로 신청하는 성인 환자 많아.. 오랫동안 외로웠던 이들"
자폐증(Autism)을 가진 이들은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겪는다. 대인관계에서 일반적인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이 자폐의 대표적인 증상이므로, 많은 이들은 이들이 친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일면 사실이다. 하지만 자폐증을 겪는 이들이 친구가 없기를 ‘바라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친구를 원하지만, 친구를 구하지 못한 경우가 사실은 대다수다. 자폐증 환자는 결코 적지 않다. 미국 어린이 44명 중 1명은 자폐 진단을 받는다(CDC 보고 기준). 그러나 일반인이 훨씬 많은 사회에서 마음이 맞는 이들과 연결되기는 대단히 어렵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어센트 오티즘(Ascent Autism)은 이 문제를 정보기술(IT)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려는 회사다. 이 회사를 차린 이혜련 대표는 “자폐아를 둔 100여명의 가족과 인터뷰를 했는데, 이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pain point)은 자녀에게 ‘친구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부모와의 상호작용도 강하지 않고, 친구를 갖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른다는 게 이들의 특징”이라며 “일반적인 10대들이 겪는 친구와의 상호작용이 없는 채로 성장하며 우울증이나 자살충동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식을 아무리 사랑하는 부모라 해도 해결해 주기 어려운 문제다.
자폐증 환자가 친구를 만들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자폐의 스펙트럼이 너무나 넓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주변에서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다운증후군의 경우 증상이 비교적 뚜렷하고 공통적인 반면, 자폐증은 스펙트럼이 매우 넓습니다. 천재 같은데 강박증이 심한 경우도 있는가 하면 말도 못하고 지능이 연령에 비해 크게 낮은 경우도 있고, 스스로 자학을 하거나 공격적인 경우와 전혀 그렇지 않고 온건한 경우가 모두 다 ‘자폐’로 분류되지요.”
하지만 이 대표가 100여 가족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확인한 것은 기존 프로그램들이 A 상황에서는 ‘감사합니다’, B 상황에서는 ‘미안합니다’를 말해야 한다고 알려주는 주입식 교육 중심이라는 점이었다. 일반인 선생님과 자폐증 학생 간의 일방적인 소통은 환자들이 사회에서 겪는 문제를 줄여줄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들에게 진짜 친구를 만들어 줄 수는 없었다.
이 대표가 찾은 대안은 줌을 통한 온라인 소셜 네트워킹이었다. 그는 “어센트 오티즘에 가입하는 회원들의 연령, 성별, 관심사 등을 바탕으로 비슷한 이들을 매칭해서 이들끼리 친구가 되고, 친구를 만드는 방법을 부담 없이 익힐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온라인을 택한 이유에 대해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초에 창업한 것도 한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매칭’을 잘하기 위해서는 지역적 한계를 넘어야 했다”고 밝혔다. 상대적으로 소수인 자폐증 환자가 마음이 맞는 친구를 찾으려면 풀을 넓혀야 하고 지역을 한정하면 매칭이 성공할 확률이 더 낮아지기 때문이다.
불안이 강한 자폐증 환자들이 차를 타고 멀리 치료센터를 방문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리스크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그가 온라인을 택한 이유였다. “친숙한 공간인 자기 집, 자기 방 안에서 안전하게 스크린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오히려 자폐를 가진 이들에겐 더 좋은 환경일 수 있습니다.”
하나의 그룹은 평균 4~7명으로 구성된다. 주로 3~35세 이용자가 많다. 이 대표는 “1968년생(54세)이 신청을 했는데 처음에는 비슷한 연령 그룹이 잘 구성되지 않을 것으로 여겨 거절하려고 했으나, 이후 40대 후반들의 신청이 들어와서 그룹을 만들 수 있었다”고 전했다. 운영 시간은 한 시간이다.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자폐증 환자 가운데 상대적으로 기능상 어려움이 없는 수준의 환자들이 참여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일단 홍보를 시작하자 반응은 뜨거웠다. 눈덩이가 굴러가듯 새로운 회원 수도 늘고 있다. 그만큼 친구에 목마른 자폐증 환자들이 많다는 얘기다. 이 대표는 “이제는 매칭이 안 되는 일은 거의 없다”며 “신규 회원이 계속 유입되고 있으니 당장 맞는 그룹이 없더라도 조금만 기다리면 곧 매칭을 해줄 수 있는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성인 자폐증 환자가 스스로 신청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겉으로는 무난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친구가 없는 데 따른 외로움을 해소하고 싶어 먼저 어센트 오티즘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회사의 설립과 운영 과정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회사 설립 초기 부모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운 적도 많았어요. 환자들도, 부모들도 사는 게 너무 힘들다는 것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어센트 오티즘이 우리 가족의 삶을 바꿨다’거나 ‘아이가 바뀌었다고 학교에서 놀란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말할 수 없이 기쁘죠.”
이 대표는 회사 규모를 키우는 일에 너무 매달리지 않고 ‘천천히 가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프리시드 자금만 아주 조금 받아서 시작했고, 자금조달(fundraising)은 일반 스타트업에 비해 상당히 늦게 시작했다. 그것도 좋은 벤처캐피털(VC)의 투자자금이 들어오는 것이 회사의 신뢰도에 좋다고 판단해서 받은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성장은 언제든지 돈으로 할 수 있다”며 “우리는 그보다는 우리 서비스를 소비자가 사랑할 수 있게 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향후 어센트 오티즘을 사회적 기술을 배우는 공간으로 확장하고 글로벌 서비스로 넓히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과학자 출신 답게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이 자폐증 치료의 효과를 보는지 여부에 대한 추적 관찰도 하고 있다. “이런 서비스가 효과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면, 자폐증 환자의 사회적 기능을 치료하는 한 축이 될 수 있어요. 그것이 저희의 큰 목표입니다.” 실리콘밸리=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그렇지는 않다. 친구를 원하지만, 친구를 구하지 못한 경우가 사실은 대다수다. 자폐증 환자는 결코 적지 않다. 미국 어린이 44명 중 1명은 자폐 진단을 받는다(CDC 보고 기준). 그러나 일반인이 훨씬 많은 사회에서 마음이 맞는 이들과 연결되기는 대단히 어렵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어센트 오티즘(Ascent Autism)은 이 문제를 정보기술(IT)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려는 회사다. 이 회사를 차린 이혜련 대표는 “자폐아를 둔 100여명의 가족과 인터뷰를 했는데, 이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pain point)은 자녀에게 ‘친구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다”고 설명했다.
◆"친구가 없어도 되는 게 아니라, 친구를 어떻게 만들지 모르는 것"
그는 “자폐증 환자는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고, 그래서 같은 집에 사는 형제가 있어도 대화를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자녀가 자폐 진단을 많이 받는 서너살 무렵에는 부모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자녀를 곁에 딱 붙어 뒷바라지하기 때문에 잘 느끼지 못해요. 그런데 10대가 되면 ‘우리 아이가 지능은 멀쩡한데, 17년 인생에 친구가 단 하나도 없었구나’ 하고 자각하는 시기가 옵니다.”이 대표는 “부모와의 상호작용도 강하지 않고, 친구를 갖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른다는 게 이들의 특징”이라며 “일반적인 10대들이 겪는 친구와의 상호작용이 없는 채로 성장하며 우울증이나 자살충동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식을 아무리 사랑하는 부모라 해도 해결해 주기 어려운 문제다.
자폐증 환자가 친구를 만들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자폐의 스펙트럼이 너무나 넓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주변에서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다운증후군의 경우 증상이 비교적 뚜렷하고 공통적인 반면, 자폐증은 스펙트럼이 매우 넓습니다. 천재 같은데 강박증이 심한 경우도 있는가 하면 말도 못하고 지능이 연령에 비해 크게 낮은 경우도 있고, 스스로 자학을 하거나 공격적인 경우와 전혀 그렇지 않고 온건한 경우가 모두 다 ‘자폐’로 분류되지요.”
◆비슷한 이들끼리 묶어 교류 기회 제공
어센트 오티즘은 비슷한 부류의 자폐증 환자들을 모아 사회적으로 교류하는 방법(social skill)을 연습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지금껏 이런 프로그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자폐증 환자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은 이미 적지 않게 존재한다.하지만 이 대표가 100여 가족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확인한 것은 기존 프로그램들이 A 상황에서는 ‘감사합니다’, B 상황에서는 ‘미안합니다’를 말해야 한다고 알려주는 주입식 교육 중심이라는 점이었다. 일반인 선생님과 자폐증 학생 간의 일방적인 소통은 환자들이 사회에서 겪는 문제를 줄여줄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들에게 진짜 친구를 만들어 줄 수는 없었다.
이 대표가 찾은 대안은 줌을 통한 온라인 소셜 네트워킹이었다. 그는 “어센트 오티즘에 가입하는 회원들의 연령, 성별, 관심사 등을 바탕으로 비슷한 이들을 매칭해서 이들끼리 친구가 되고, 친구를 만드는 방법을 부담 없이 익힐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온라인을 택한 이유에 대해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초에 창업한 것도 한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매칭’을 잘하기 위해서는 지역적 한계를 넘어야 했다”고 밝혔다. 상대적으로 소수인 자폐증 환자가 마음이 맞는 친구를 찾으려면 풀을 넓혀야 하고 지역을 한정하면 매칭이 성공할 확률이 더 낮아지기 때문이다.
불안이 강한 자폐증 환자들이 차를 타고 멀리 치료센터를 방문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리스크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그가 온라인을 택한 이유였다. “친숙한 공간인 자기 집, 자기 방 안에서 안전하게 스크린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오히려 자폐를 가진 이들에겐 더 좋은 환경일 수 있습니다.”
◆친숙한 공간에서 안전하게 상호작용 선호
회원들이 온라인으로 접속하면 그 다음엔 어떻게 될까?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인데, 멀뚱멀뚱 서로 화면만 보고 있다면? 이 대표는 “모임을 진행하는 진행자(facilitator)가 있다”고 답했다. 진행자는 자폐아 치료 경험이 4~5년 이상 있는 이들이며 어센트 오티즘이 풀타임으로 고용한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하나의 그룹은 평균 4~7명으로 구성된다. 주로 3~35세 이용자가 많다. 이 대표는 “1968년생(54세)이 신청을 했는데 처음에는 비슷한 연령 그룹이 잘 구성되지 않을 것으로 여겨 거절하려고 했으나, 이후 40대 후반들의 신청이 들어와서 그룹을 만들 수 있었다”고 전했다. 운영 시간은 한 시간이다.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자폐증 환자 가운데 상대적으로 기능상 어려움이 없는 수준의 환자들이 참여한다”는 설명이다.
◆"'우리 가족의 삶이 달라졌다'는 피드백에 보람"
이 대표는 한림대에서 학사, 서울대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고 스탠포드대에서 신경외과 관련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했다. “뇌에서 학습과 기억의 역할 등을 주로 공부했고, KAIST와의 공동연구를 계기로 자폐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는 앞서 반려견에 적합한 항암제를 찾아주는 서비스를 제공해 큰 관심을 얻고 있는 임프리메드를 공동 창업한 경험이 있다.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평소 관심이 컸던 자폐증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를 직접 세웠다. 스타트업 벳스파이어를 세웠다가 마이크로소프트(MS)에 매각한 컴퓨터 사이언티스트 파다비 파라즈 공동대표가 소프트웨어 관련 지식을 든든하게 뒷받침해줬다. 그는 “초반에 회원 수가 40~50명에 이를 때까지가 제일 힘들었다”고 말했다. 매칭 서비스의 특성상 회원 수가 일정 규모에 이르지 않으면 매칭이 제대로 성사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폐아들이 많았기 때문에 부모들에게 당장은 좋은 매치를 찾을 수 없으니 기다려 줄 수 있느냐고 솔직하게 말했다”며 “일반인 봉사자들이 친구가 되어준 적도 있었다”고 했다. 구글애드와 페이스북 애드 등으로 조금씩 광고를 해서 대상자를 찾았다.그러나 일단 홍보를 시작하자 반응은 뜨거웠다. 눈덩이가 굴러가듯 새로운 회원 수도 늘고 있다. 그만큼 친구에 목마른 자폐증 환자들이 많다는 얘기다. 이 대표는 “이제는 매칭이 안 되는 일은 거의 없다”며 “신규 회원이 계속 유입되고 있으니 당장 맞는 그룹이 없더라도 조금만 기다리면 곧 매칭을 해줄 수 있는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성인 자폐증 환자가 스스로 신청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겉으로는 무난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친구가 없는 데 따른 외로움을 해소하고 싶어 먼저 어센트 오티즘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회사의 설립과 운영 과정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회사 설립 초기 부모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운 적도 많았어요. 환자들도, 부모들도 사는 게 너무 힘들다는 것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어센트 오티즘이 우리 가족의 삶을 바꿨다’거나 ‘아이가 바뀌었다고 학교에서 놀란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말할 수 없이 기쁘죠.”
이 대표는 회사 규모를 키우는 일에 너무 매달리지 않고 ‘천천히 가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프리시드 자금만 아주 조금 받아서 시작했고, 자금조달(fundraising)은 일반 스타트업에 비해 상당히 늦게 시작했다. 그것도 좋은 벤처캐피털(VC)의 투자자금이 들어오는 것이 회사의 신뢰도에 좋다고 판단해서 받은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성장은 언제든지 돈으로 할 수 있다”며 “우리는 그보다는 우리 서비스를 소비자가 사랑할 수 있게 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향후 어센트 오티즘을 사회적 기술을 배우는 공간으로 확장하고 글로벌 서비스로 넓히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과학자 출신 답게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이 자폐증 치료의 효과를 보는지 여부에 대한 추적 관찰도 하고 있다. “이런 서비스가 효과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면, 자폐증 환자의 사회적 기능을 치료하는 한 축이 될 수 있어요. 그것이 저희의 큰 목표입니다.” 실리콘밸리=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