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제주도 용수리 해안가에서 ‘블루웨일(BW)-01’의 발사를 앞두고 신동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대표가 웃고 있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제공
지난해 말 제주도 용수리 해안가에서 ‘블루웨일(BW)-01’의 발사를 앞두고 신동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대표가 웃고 있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제공
옛 소련이 쏘아 올린 인공위성 ‘스푸트니크’가 밤하늘을 가로지르자 탄광촌 주민들은 “핵미사일을 떨어뜨릴 것”이라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수군거렸다. 하지만 그 불빛에 마음을 뺏긴 한 소년은 광부의 길 대신 로켓을 쏘아 올리는 꿈을 품었다. 주변 사람들의 비웃음과 만류에도 친구들과 연구에 뛰어들었다. 거듭된 실패 끝에 발사한 로켓은 결국 그의 삶을 바꿨다.

호머 히컴 전 미국 항공우주국(NASA) 연구원의 실화를 다룬 영화 ‘옥토버 스카이’의 주인공들처럼 우리나라엔 글로벌 우주 선진국들의 약진을 보면서 의지를 불태우는 스타트업 ‘긱(괴짜)’들이 있다. 소형 발사체 분야의 글로벌 강자를 꿈꾸는 신동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대표와 김수종 이노스페이스 대표가 그들이다. 한없이 정밀함이 요구되는 분야이다 보니 ‘철야’가 일상이다. 그런데도 신 대표와 김 대표는 “불붙는 엔진 소리가 아직 심장을 뛰게 한다”고 했다. “평생의 목표를 로켓에 걸었다”는 이들은 발사 성과를 쌓으며 어느덧 어릴 적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우주 배관공’들의 도전

김수종 이노스페이스 대표(왼쪽)와 로켓 엔지니어들이 충남 금산에 있는 이노스페이스 로켓시험장에서 발사체 ‘한빛’의 성능을 점검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김수종 이노스페이스 대표(왼쪽)와 로켓 엔지니어들이 충남 금산에 있는 이노스페이스 로켓시험장에서 발사체 ‘한빛’의 성능을 점검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너구리’ 하나에 소시지 두 개면 돼요. 원래 이렇게 먹어요.” 신 대표는 대개 점심을 컵라면으로 때운다. 옷차림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뇌 구조가 엔지니어링(공학)에 집중돼 있어 생활력은 최하입니다.” 웃음기 어린 그의 어투는 언뜻 대학 신입생 같지만 발사체가 화두에 오르는 순간엔 숙련된 엔지니어가 된다. 신 대표는 10년째 로켓을 만들고 있다.

1997년생인 신 대표는 중학교 때부터 발사체를 직접 쏘아 올렸다. 독학의 결과물이었다. 그는 로켓 엔지니어 업무를 ‘우주 배관공’에 비유했다. “고깃집 물병을 보고 로켓 엔진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연속적 고민’을 해야 천재를 이긴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고등학교 때 캐나다로 이민간 뒤 워털루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2016년 ‘로켓을 쏘아 올리겠다’며 학교를 그만두고 한국에 들어와 회사를 차렸다. 대전 둔산동의 한 헬스클럽 건물 4층을 빌려 사무실을 마련했다. 학창 시절부터 네이버 카페 ‘별하늘지기’에서 오랜 시간 교류를 이어온 10명의 또래가 함께했다.

신 대표는 “사무실에 화학물질 제조사업장 허가를 내고 연료 ‘굽기(로켓 연료를 만든다는 뜻의 은어)’를 시작했다”며 “책상값이 비싸 2만원짜리 패널을 사서 쓰고, 하숙비를 아끼기 위해 합숙 생활을 했다”고 했다. 어색한 시작이었지만 실력은 쌓여갔다. 고체 연료에서 액체 연료로 방향을 정립한 것도 이 시기다. 액체 연료 로켓은 정밀한 조작이 가능하지만 상대적으로 개발 난도가 높다고 평가된다.

지원군도 얻었다. 국내 첫 인공위성 ‘우리별’ 개발 주역인 박성동 쎄트렉아이 의장은 그의 멘토를 자처했다. 한재흥 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연구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KAIST 캠퍼스 내 액체 로켓 연소시험장이 생긴 배경이다.

초기 10명이던 임직원은 50명으로 불었다. 지난해 말에는 국내 스타트업 최초 액체 로켓 발사 실험에 성공했다. 그는 “준궤도 비행(고도 100㎞ 상당)을 생략하고, 내년에 제주도에서 배를 빌려 ‘오빗 론치’(Orbit launch·상업 발사 직전 단계)를 완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엔진소리에 아직도 심장이 뛴다”

"누리호 말고 우리도 있다"…우주에 도전하는 '로켓뽕' 맞은 남자들
“저희끼리는 ‘로켓 뽕’ 맞았다고 하거든요. 평생의 목표가 생길 정도로 매력적인 분야입니다.” 김 대표는 “영화 ‘마션’을 열 번 봤다”고 했다. 마션에 표현된 기술들이 현실과 가깝다는 이유에서다. 자신을 ‘우주 덕후(마니아)’로 칭하는 김 대표는 올해 말 역사적인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의 손으로 만든 발사체 ‘한빛 TLV’가 민간 최초의 준궤도 발사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1976년생이다. 한국항공대 기계설계학과를 거쳐 같은 대학원에서 항공우주공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대학교 3학년 때 로켓 엔진 소리를 처음 듣고 장래 희망이 바뀐 적이 없다”고 말했다. 졸업 후엔 이스라엘 테크니언공대에서 발사체 분야 연구원으로 3년을 지냈고, 귀국 후에는 ㈜한화에서 고체 연료 기반 로켓을 개발했다.

그러다가 2017년 한국항공대 석·박사들과 함께 창업에 나섰다. 지난 5년간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절정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였다. 물류 공급망이 불안정해지며 반도체 가격이 한 달에 3배씩 뛰었다. 개발 일정 전체가 지연되면서 자금 소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위기 때 회사를 지탱해준 것은 그의 기술과 열정을 믿어준 투자자들이었다. 지난해 7월 이노스페이스는 25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컴퍼니케이파트너스, 코오롱인베스트먼트 등 기존 재무적 투자자(FI)가 대거 참여했다. 누적 투자액은 350억원에 달한다.

한빛 TLV는 오는 12월 브라질 알칸타라 발사장에서 우주를 향할 예정이다. 높이 16.3m, 직경 1m, 중량 9.2t의 제원으로 국내에선 최초로 시도되는 준궤도 민간 발사체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