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투자 트렌드
ESG 투자 후퇴? 이것만은 하락장에서 버텼다

ESG 투자 후퇴? 이것만은 하락장에서 버텼다


인플레이션 공포가 세계 증시를 뒤덮었다. 대장주 삼성전자는 연일 연중 신저가 기록을 갈아치웠고, 밤새 출렁인 미국 증시 탓에 밤잠을 설치는 서학개미들이 속출했다. 문제는 잿빛 전망이 투자 심리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는 것.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한 극단의 카드로 미국 중앙은행(Fed)의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이상 인상)이 등장하면서 전문가들은 한동안 증시가 얼음골 장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이른바 ‘착한 기업’에 투자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상품도 예외가 아니다. 각국에서 제기된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논란에 일각에선 ‘ESG 투자 종말론’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하지만 약세장에서 꿋꿋이 버텨낸 ESG 상품도 상당하다. 공포를 이겨낸 착한 투자의 생존 비결은 무엇일까? ESG 투자는 위기를 넘어설 수 있을까?

나 홀로 버텨낸 펀드는

‘미국 S&P500 -20%, 코스피 -15%, 홍콩 항셍 -10%…’ 연초 이후 약 6개월 만에 전 세계 증시 수익률이 추락했다. 유동성 파티가 끝난 시장에 러·우 전쟁, 인플레이션 공포가 덮친 영향이다. 고공행진 중인 유가와 관련한 종목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테마가 고꾸라졌다. ESG 투자도 마찬가지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ESG 관련 펀드 52개의 연초 이후 수익률(6월 15일 기준)은 -15.70%로 집계됐다. 평균적으로 코스피지수 추락분만큼 하락률을 보였지만, 같은 기간 라이프사이클(-12.59%), 가치주(-12.17%), 배당주(-8.37%), 공모주(-3.38%) 등 성장주를 제외한 다른 테마 수익률에는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글로벌 종목을 포트폴리오에 담은 펀드일수록 수익률이 저조했다. ESG 펀드 중 올 들어 가장 낮은 수익을 낸 키움올바른글로벌ESG펀드는 연초 이후 22.36%에 달하는 손실이 났다. 마이크로소프트, 유나이티드헬스그룹, 알파벳, 아마존 등이 포트폴리오 상단을 차지하는 펀드다. 금리인상 여파로 직격탄을 맞은 성장주 비중이 높은 만큼 국내 펀드보다 성적이 좋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테슬라 순으로 포트폴리오를 꾸린 미래에셋상생ESG펀드(-21.08%)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한 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상승폭이 큰 만큼 골이 깊을 수밖에 없다”며 “뉴욕 우량성장주로 포트폴리오 상단을 채웠더라도 시장 전체가 출렁이는 충격을 피해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장이 공포에 떠는 동안 나 홀로 꿋꿋이 수익률 방어에 성공한 ESG 펀드도 있다. 트러스톤ESG레벨업펀드가 대표적이다. 눈에 띄는 점은 해당 펀드만의 독특한 투자전략이다. ESG 등급 등 획일적 기준으로 ESG 우수 기업을 추려내 포트폴리오를 꾸리는 타 펀드와 달리 트러스톤ESG레벨업펀드의 경우 주주행동을 통해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해 수익을 내는 신개념 행동주의 투자법으로 상품을 운용하고 있다. ESG 항목 중 ‘G’에 집중해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 수익률을 끌어올린 셈이다.

지난해 1월 설정된 이 펀드는 설정 이후 약 10%의 수익을 내고 있다. 투자 상위 종목은 BYC, 태광산업, LS, KT&G, 동아쏘시오홀딩스 등이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2대 주주로 있는 BYC 이사회 의사록의 열람·등사를 허가해달라는 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하는 등 주주로서 “YC 실적에 악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되는 오너 일가 소유 기업과의 내부거래를 포함해 회사 부동산 자산 관리용역 계약 등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진행됐는지 파악하고자 한다”며 적극적인 주주행동에 나선 바 있다.

상장지수펀드(ETF)를 포함한 ESG 펀드 중 올해 수익률이 가장 높은 상품은 한화ARIRANG ESG우수기업 ETF(-2.78%)다. WISE ESG 우수기업 지수를 기초로 한 이 상품은 영원무역홀딩스, 삼천리, 코웨이, KT, 한라홀딩스 등으로 포트폴리오 상단을 채우고 있다.

그린워싱 규제 강화되나

적극적 주주행동, 잘 산출된 기초 지수를 활용해 추락하는 증시를 버텨낸 일부 ESG 상품이 있지만, 최근 2년 새 글로벌 트렌드가 된 ESG를 활용한 투자처가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한 것은 분명하다. 마이너스 수익률로 인해 투자자의 관심이 급격히 사그라든 데다 ESG의 탈을 쓴 그린워싱 상품에 대한 당국의 규제가 본격화하는 모습이 펼쳐지면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들은 지난 5월 말 벌어진 도이체방크 프랑크푸르트지사의 압수수색이 ESG 투자의 앞날을 예고하는 중요한 사건이라고 봤다. 실제 독일 검찰이 지난 5월 31일(현지 시각) 자산운용사 DWS와 그 대주주인 도이체방크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그린워싱 혐의다. DWS그룹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펀드 홍보 시 실제보다 ESG 투자 정도를 부풀렸다는 의혹에 휩싸인 상태다. ESG 투자 열풍 이후 그린워싱에 대해 이처럼 강도 높은 수사가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 측은 DWS그룹이 내놓은 펀드가 실제 판매 계획서에 기재된 내용과 달리 투자 상당수에서 ESG를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몇 달 새 그린워싱 의혹으로 홍역을 치르는 곳이 급증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달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펀드 운용 과정을 조사했다. 골드만삭스가 운용하는 ESG 관련 상품이 그린워싱을 통해 소비자를 기만한 사실이 없는지 들여다본 것으로 알려졌다. 골드만삭스 측은 ESG 펀드의 80%를 자체 펀드 기준을 충족하는 기업 주식으로 구성하려 하며 술, 담배, 무기, 석탄, 원유, 가스 판매 등으로 수입 대부분을 얻는 기업을 배제한다고 홍보해왔다. 앞서 미국 내에서 그린워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SEC는 그린워싱을 식별할 전담팀을 구성, 그린워싱으로 볼 수 있는 소지가 있는 일부 펀드에 대해 경고장을 날리기도 했다.

미국의 ‘BNY멜론 투자자문’도 그린워싱으로 홍역을 치렀다. SEC는 BNY멜론 투자자문에 벌금 150만 달러(약 18억원)를 부과했다. BNY멜론 투자자문이 운용 중인 뮤추얼펀드가 ESG 투자 지표를 잘못 기재한 탓이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대형 금융사를 대상으로 그린워싱에 대한 경계감이 높아진 상황인 데다 각국의 규제가 강화되는 시점”이라며 “향후 그린워싱을 방지하기 위한 공통적 규제안 등이 마련되는 과정이라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박재원 한국경제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