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살바도르 정부가 암호화폐인 비트코인 투자에 실패해 재정난이 심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국가 법정화폐로 비트코인을 채택한 뒤 가격이 폭락하자 5600만달러에 이르는 손실을 기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5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엘살바도르 정부가 국고로 매수한 비트코인 가치가 반토막났다고 보도했다. 엘살바도르는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약 1억 5000만달러(약 1919억원)를 들여 비트코인 2301개를 매수했다. 이날 기준으로 비트코인 평가 손실액이 5000만달러(약 646억원)로 추산됐다.


투자 손실이 불어났지만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사진)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그는 SNS에 암호화폐 전문매체인 비트코인 매거진의 기사를 공유했다. 엘살바도르 국가 재정의 0.5%에 달하는 손실을 기록했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그는 “비트코인을 더 매수하라고 말하는 걸까?”라고 썼다.

2019년 37세 나이에 대통령으로 선출된 선출된 부켈레는 지난해 9월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채택했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국고를 들여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세였던 올해도 매수를 지속했다. 지난달에도 비트코인 500여개를 평균 단가 3만 744달러에 매수했다. 16일 기준 코인마켓갭에서 비트코인은 2만 2000달러 수준에서 손바뀜했다. 최근 한 달 새 손실이 400만달러 더 불어난 셈이다.

알레한드로 셀라야 엘살바도르 재무장관은 지난 13일 “손실 금액은 우리 전체 예산의 0.5%도 안 된다”며 “재정 위험은 극도로 작다”고 밝혔다. 하지만 엘살바도르 재정 상태는 악화 일로를 걷는 중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엘살바도르는 내년 1월 8억달러 규모의 국채를 상환해야 한다. 재정적자는 갈수록 불어나는 가운데 비트코인 투자 실패를 반복해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었다. 비트코인과 연동된 국가 부채 때문에 엘살바도르 국채는 남미 국가 중에서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S&P글로벌레이팅스는 엘살바도르의 채무 상환 능력에 관한 우려가 커졌다며 국가신용등급을 ‘CCC+’로 강등했다.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신용등급과 동일한 수준이다.

국제신용평가회사 피치도 지난 2월 엘살바도르의 국가신용등급을 B-에서 CCC로 두 단계 끌어내렸다. 이미 ‘정크(투기)’ 등급을 받은데 이어 채무불이행(디폴트)에 가까운 CC 등급까지 두 단계만 남겨놓게 됐다. 당시 피치는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채택하며 국제통화기금(IMF)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불확실해졌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