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재 서울대 교수
이유재 서울대 교수
『포화된 시장, 더 이상의 차별화가 어려울 것 같은 제품, 고객 확보와 유지를 위한 치열한 경쟁, 눈높이가 높아져 웬만한 것에는 눈길도 안 주는 고객들. 』

현재 당면한 상황은 우리가 익히 알던 전략으로 대응하기에 녹록치 않다.

더구나 지금까지도 시장의 중심에는 고객이 있었다. 기업들은 변함 없는 이 사실에 대응을 해왔고 고객을 중심에 놓고 철학, 운영, 조직을 변화시켰다. 고객만족에서 고객감동까지. 그러나 고객만족은 이제 더 이상 경쟁의 차별화가 아닌 필수조건이 되었다. 그렇다면, 고객만족을 넘어선 무엇이 더 필요한가?

필자는 그 해답으로 고객가치를 제시한다. 고객가치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고객가치는 주로 고객이 지니고 있는 의의나 중요성을 말하는 것으로 고객수익성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이에 따라, 현장에서는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많이 구입하는 우량고객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고 또는 고객감동까지 가는 고객 중심적 사고가 고객가치경영을 의미하기도 했다.
고객만족을 넘어 고객가치로

고객을 위한, 고객의, 고객에 의한 가치

필자는 지금까지 약간 혼란스럽게 사용된 고객가치의 의미를 고객을 위한(for the customer), 고객의(of the customer), 고객에 의한(by the customer) 가치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제안한다. 고객을 위한 가치는 말 그대로 기업이 고객을 위해 제공하는 가치를 의미하며, 고객의 가치는 고객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의미하며, 고객에 의한 가치는 고객이 스스로 창출하는 가치를 의미한다.

우선 기업들이 고객가치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을 살펴보자. 기업 실무자들은 종종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고객만족이 과연 우리 기업의 성공을 보장하는가?”
“고객은 어지간한 제품이나 서비스에는 만족하지 않는데 어떻게 차별화해야 하나?”
“고객만족을 위해선 비용이 드는데 그것이 과연 기업의 수익에 도움이 되는가?”

공장용 파이프를 생산하는 미국 월리스(Wallace)사는 품질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중소기업 최초로 ‘말콤 볼드리지 국가품질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그러나 품질개선 대비 매출 효과가 미약해 몇 년 뒤 파산했다.

플로리다전력사는 폼질개선에 많은 투자를 해 미국 기업 최초로 데밍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투자에 비해 수익 개선이 미미해 회장이 퇴진하고 그의 품질프로그램도 중단되었다. 이른바 고객만족활동에는 성공했지만 실패한 사례들이다.

우리 주위에도 기업의 궁극적인 관심사인 이익은 도외시하고 단순히 고객만족점수나 순위에만 집착하는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고객만족도 업계 1위,’ 또는 ‘전년 대비 10% 향상’ 등이다. 그런데 고객만족점수에 집착하다 보면 평균의 함정에 빠지며 개별 고객의 가치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혹시 우리 기업은 가치가 작은 고객만을 만족시키고 있지 않은지, 가치가 큰 고객은 오히려 불만스럽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를 따져 볼 일이다. 만약 그렇다면 고객만족도는 높아지지만 기업 성과는 하락할 수 있다.

이 사례들에서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 바로, 고객이든 기업이든 비용 대비 효과를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치(value)의 기본 개념이다. 우선 고객 관점에서는 단순히 만족 보다는 비용 대비 품질을 봐야 한다. 자신이 지불하는 비용에 비해서 얻는 효용 즉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이 치열한 경쟁에서 생존하려면 ‘고객을 위한 가치’(value for the customer)를 차별화해야 한다.

한편 기업의 관점에서 보면 기업의 모든 활동은 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 그런데 기업 가치는 개별 고객들의 장기적 수익성, 즉 고객생애가치(customer lifetime value)의 합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기업의 활동은 고객이 지니는 가치 즉 ‘고객의 가치’(value of the customer)를 높이는 방향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기업은 능동적으로 고객을 선택하고 관계 관리를 통해 고객의 가치를 증대시켜야 한다. 여기서 기업이 고객을 선택한다는 것은 ‘우리가 잘 났다’는 오만이 아니라 제한된 자원과 역량으로 모든 고객에게 잘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의 겸손이다.

그런데 가치를 창출하는데 있어서 고객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고객은 가치를 창출하는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싶어 하고 가치를 추가하거나 확산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존재다. 게다가 소유효과이론에 따르면 고객은 자신이 참여해 만든 제품에 대해 훨씬 많은 애착을 갖는다고 한다. 따라서 고객을 가치창출에 참여시켜 ‘고객에 의한 가치’(value by the customer)를 이끌어 내야 한다.

기업과 고객, 가치창출의 공동 참여자

흔히 고객만족경영은 고객만족이나 ‘고객을 위한 가치’에 중점을 두어 왔다. 그러나 고객과 시장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변화하는 시장 흐름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가치 있는 고객을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고객의 잠재가치를 개발하며 ‘고객의 가치’를 고려해야 한다. 더 나아가, 변화하는 고객의 중요한 특성인 참여 욕구를 활용해 고객이 창출하는 가치 즉 ‘고객에 의한 가치’를 키워야 한다. 이를 통해 기업과 고객은 단순히 생산자와 소비자가 아니라 가치창출의 공동 참여자가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고객가치경영은 가치창출을 위해 기업만 노력하는 일방적인 경영이 아니라, 기업과 고객이 주체로서 서로 소통하고 상호 보완함으로써 가치창출의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양방향적인 경영을 의미한다.

기업이 고객의 진정한 가치에 주목하고 사랑의 노래를 불러 줄 때 고객도 기업에 사랑을 되돌려 줄 것이다. 마치 오래된 연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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