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커머스가 세상을 바꾼다고 하지만, 아직 디지털과는 거리가 먼 영역이 있습니다. 생산된 물건을 공장에서 물류창고나 수출항 등으로 옮기는 '미들마일'영역입니다. 사람의 몸으로 따지면 대동맥과 대정맥에 해당하는 핵심 물류 인프라입니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보니 변화가 더딥니다. 화물연대 등 차주 단체와 화주들 간의 갈등이 종종 불거지기도 하죠.
최근, 이 미들마일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빅테크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혁신 실험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디지털화가 덜 된 만큼 기회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한때 한국경제신문 기자로 맹활약했던 김태호 유비쿼스인베스트먼트 팀장이 기자의 날카로운 시각과 벤처캐피털리스트로서의 깊은 통찰력을 담아 '미들마일'의 도전과 기회를 분석했습니다. 한경 긱스(Geeks)가 김 팀장의 글을 소개합니다.


요즘 늦은 저녁이 되면 번화가에서는 택시 잡기 전쟁이 벌어집니다. 지금보다는 덜 하지만 10년 전에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당시에는 전화로 부르는 ‘콜택시’ 서비스를 많이 활용했습니다. 여러 콜택시 회사에 무작위로 전화를 걸고 배차 승인 여부를 기다렸죠. 그렇게 배차가 되면 담당 택시 기사와 다시 통화해서 위치를 공유했습니다. 가끔 위치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여러 차례 통화를 주고받아야 했습니다. 지금은 이 모든 작업이 모바일앱 하나로 가능해졌습니다.

2010년 전후로 일어난 O2O(Online to Offline) 혁신의 핵심은 ‘융합’과 ‘디지털 전환’이었습니다. 택시뿐 아니라 부동산, 여행, 렌터카 등 다양한 시장이 이 과정을 거치면서 소비자들의 일상에 큰 변화를 가져다줬습니다. 흩어져있는 정보를 얻고 여러 단계를 거쳐 서비스 매칭이 이뤄지는 번거로운 작업이 이제는 모바일로 통합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스타트업이 대형 정보기술(IT) 기업, 이른바 빅테크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아직도 과거와 유사한 형태로 서비스가 연결되는 산업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내륙화물 운송을 일컫는 ‘미들 마일(중간물류, Middle mile)’ 시장입니다. 시장 규모만 약 33조원에 달하는데, 지금 그 시장도 빅테크 기업들을 중심으로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들 마일, 왜 중요할까?

"이곳이 미개척지다" 빅테크들이 앞다퉈 달려드는 영역 [긱스]
‘미들 마일’은 기업에서 생산된 제품을 물류창고나 판매처까지 이동시키는 ‘중간물류’를 말합니다. 주로 화물차에 제품을 가득 실어 나르는 물류로 기업 간 거래(B2B) 형태입니다. 이렇게 이동된 제품이 최종적으로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은 ‘라스트 마일(최종물류, Last mile)’이라고 합니다. 라스트 마일은 택배, 퀵서비스, 공유배송 등의 형태이며 새벽 배송, 실시간 배송 등 다양한 서비스 형태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2020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화물운송 시장 중 순수 미들마일 시장 규모는 약 33조원으로 추산됩니다. 디지털 전환이 상대적으로 빠르고, 서비스가 매우 다양한 ‘라스트마일’의 경우 시장 규모는 약 10조원 수준입니다. 미들마일이 라스트마일의 약 3.3배 큰 시장인 셈이죠. 택시와 비교해도 화물운송 시장의 규모가 약 2배 큽니다.

시장 규모만큼이나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매우 큽니다. 라스트마일이 주로 소비자 접점이 많은 제품군에 대한 운송이라면, 미들마일은 철강, 반도체 등 국가 주요 산업에 대한 물류를 포함합니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추정한 화물연대 파업 여파의 피해 규모만 1조6,000억원에 달합니다. 미들 마일 시장이 국내에 얼마나 중요한 산업인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화물운송의 과정은?


미들 마일 시장은 크게 네 개의 축으로 구성됩니다. 화물의 주인인 기업 ‘화주’, 주선운송사, 화물정보망(콜) 플랫폼, 화물운송차의 주인인 ‘차주’입니다.

화주 기업은 대부분 제조업체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의 제조업체 숫자는 약 44만개에 달합니다. 기업들은 직접 차주와 계약을 맺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물류 자회사를 두거나, 운송 및 주선사를 활용해 차주를 섭외하고 있습니다. 물류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번거로운 배차 과정을 효율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자회사를 두고 물류를 진행하는 경우를 2PL(Second Party Logistics), 주선사나 운송사 등을 활용해 물류 외주를 주는 형태를 3PL(Third Party Logistics)이라고 부릅니다. 물류 규모가 클 경우 운송 자회사를 두고 운영하는 2PL이 유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제조업체는 그럴 여력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화물운송의 대다수 형태가 3PL이라고 보면 됩니다.

운송사와 주선사의 차이는 뭘까요. 운송사는 화물차를 직접 보유하고 있고, 화주와 계약 후 바로 운송을 진행합니다. 주선사는 화물차를 보유하지 않습니다. 화주로부터 계약을 따낸 뒤 운송사를 연결하거나 직접 차주를 섭외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화주의 운임 중 일부를 중개수수료로 받습니다.

주선사의 배차과정은 매우 다양합니다. 자체 보유한 차주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물동량이 늘어나거나, 차주의 사정으로 인해 네트워크에 안에서 배차가 되지 않는 경우도 빈번합니다. 이럴 경우 주선사가 또 다른 주선사에 요청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정해진 운임 내에서 중개수수료를 여러 번 떼기 때문에 이럴 경우 차주의 운임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기업은 물류비가 증가하는데 차주는 운임이 오르지 않는 현상은 이런 배차구조에서 비롯되는 경향이 큽니다.

주선사가 차주를 매칭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바로 화물정보망이라 불리는 ‘콜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콜 플랫폼은 화물운송의 ‘카카오택시’와 같은 역할이라고 보면 됩니다. 주선사가 물류정보를 플랫폼에 띄우면 차주들이 해당 운송 건을 수락하는 형태입니다. 주선사 – 콜 플랫폼을 통한 매칭을 업계에서는 전체 미들마일의 약 23% 정도로 파악하고 있으며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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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전환이 느린 이유는?


화물자동차의 숫자는 2021년 기준 43만대에 달합니다. 차주의 숫자도 유사합니다. 차주는 대다수가 개인사업자입니다. 어느 회사에 소속된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차주에 대한 모든 정보를 취합하기도 힘듭니다. 결과적으로 미들마일의 핵심은 이런 차주 43만명과 화주 기업 44만개를 그때마다 특성을 고려해 효율적으로 매칭하는 사업입니다.

화주와 차주를 연결하는 것은 출발지와 목적지 정도의 정보가 담기는 ‘택시매칭’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화주마다 업종도 다르고 생산하는 제품도 다르기 때문이죠. 제품 특성에 따라 활용되는 트럭의 종류도 매우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부피가 큰 제품에는 윙바디(양쪽에 날개 형태 덮개 장착) 트럭이 적합할 수 있고, 대형 화물에는 ‘추레라’라고 불리는 트레일러를 활용하는 게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화물 운송 기사의 경험도 중요한 매칭 요인입니다. 조선기자재의 경우 조선소에 출입 가능한 화물차가 별도 등록돼 있습니다. 위험물과 같은 특수화물의 경우 운전하는 요령도 다를 것이며, 화물을 싣고 내리는 과정의 노하우도 ‘아는 사람’ 외에는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운송 과정에서 화물차가 갈 수 있는 길을 숙지하고 있는 노련함도 필요합니다.

화주기반의 정보는 현재 주선사들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사람이 직접 개입하는 형태가 많습니다. 주선사 대부분이 영세업체고 개인사업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2020년 기준으로 자본금 1억원 이하의 업체가 전체의 90%를 차지합니다. 이런 다양한 화주 정보가 여러 업체에 장부 형태로 기록돼 있거나, 엑셀파알 및 담당 직원의 노하우로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콜 플랫폼은 미들 마일 시장에서 유일하게 디지털화된 영역입니다. 이들은 차주로부터 회원비를 받고, 주선사나 화주가 직접 올리는 배차 정보를 차주에게 공유해줍니다. 고속도로를 지나다 보면 화물트럭에 ‘전국 24시 콜 화물’과 같은 스티커를 흔히 볼 수 있는데요. 이처럼 차주 90%가 현재 콜 플랫폼을 활용합니다. 자연스럽게 차주들의 이동 경로, 공차 정보, 최적 운행루트 등은 콜 플랫폼이 확보한 데이터입니다. 현재 전국 24시 콜 화물과 화물맨이라는 기업이 해당 플랫폼을 주도하고 있고, 최근 E&F프라이빗에쿼티가 인수한 원콜 역시 차주 회원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물류비 정산 역시 아직은 수기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화주는 주선사에 물류비를 지급하고 주선사는 일정 부부 수수료를 제외하고 차주에게 세금계산서를 발행합니다. 현재 대부분이 종이 계산서 형태로 발행됩니다.

이처럼 이해관계자의 숫자가 매우 많고, 플레이어마다 가지고 있는 정보가 다양합니다. 정보의 축적이 체계화되면서 이뤄지기 어렵고, 그러다 보니 스마트한 디지털 매칭이 쉽지 않은 구조입니다.

미들 마일에 ‘빅테크’ 바람이 분다?


미들 마일 디지털 전환의 핵심은 이런 분리된 정보를 통합하고 빅데이터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사실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앞서 많은 대기업이 이런 통합 화물정보망 구축을 위해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주선사와 차주들을 관리하고 이들이 그동안 진행해온 루틴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대기업보다는 스타트업에서 이같은 미들마일 혁신이 먼저 일어났습니다. 주선사업자와 콜 플랫폼을 하나로 통합하는 시도가 이어졌고, 화물 배차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시스템들도 속속 등장했습니다. 정산과정을 모바일로 바꾸거나, 1달 이상이 걸리는 물류비 정산을 실시간으로 바꿔주는 핀테크 기술도 도입됐죠.

스타트업과 기존 업체 간의 협업도 활발합니다. AI 물류 플랫폼 스타트업인 파스토와 콜 플랫폼 업체인 화물맨은 지난 5월 AI 운송 서비스를 위한 합작법인을 설립했습니다. 스타트업의 물류 관리 시스템과 콜 플랫폼의 운송 관제 시스템이 융합되는 형태입니다.

미들 마일 시장에 혁신의 바람이 불자 이제는 본격적으로 빅테크 기업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모빌리티 빅테크 기업인 카카오모빌리티와 티맵모빌리티가 대표주자입니다. 두 기업 모두 택시 중개와 내비게이션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정보를 모으고, AI를 활용해 최적의 매칭을 끌어내는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이죠.

티맵모빌리티는 지난해 디지털 주선사를 표방하는 스타트업 YLP를 인수했습니다. YLP는 실시간 화물 배차, 온라인 결제시스템, 저렴한 운송업체 연결 등을 모두 디지털화한 기업입니다. 2016년 설립돼 지난해 매출 476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성장세가 가파릅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운송주선사업 라이선스를 획득한 후 지난 6월 화물운송 주선사업자 전용 프로그램인 로지노트 운영사 위드원스를 인수했습니다. 해당 시스템은 미들마일에서 ‘프론트시스템’이라고 불리는 소프트웨어입니다. 주선사들이 효율적인 배차를 위해 주로 사용하는 시스템입니다.

향후 미들 마일의 미래는?


해외의 경우는 어떨까요. 미국의 경우 우버가 미들 마일의 디지털화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우버는 공유 차량 서비스로 시작해 우버이츠로 라스트 마일 서비스를 확보한 업체죠. 2017년 우버프레이트(Uber Freight)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미들마일까지 진출하게 됐습니다. 모바일 앱 형태로 화주가 화물정보를 입력하게 설정됐고, 한 달 이상 걸렸던 차주에 대한 운임 지급을 실시간으로 개선한 점이 특징이었습니다.

중국은 대형 플레이어 두 곳이 합병하면서 미들 마일 시장 전체를 통합했습니다. 2017년 화물 중개플랫폼이던 윈만만(運滿滿)과 훠처방(貨車幫)이 합병하면서 만방그룹(滿幫集團)이 탄생했습니다. 만방그룹은 21년 6월 뉴욕증시에 상장했습니다. 현재 시가총액은 한화 약 10조원에 달합니다.

어떻게 보면 국내 시장도 유사한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두 모빌리티 빅테크 업체를 중심으로 주선사와 프런트 시스템이 M&A 된 것은 시작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주선사와 소프트웨어, 콜 플랫폼들이 빅테크를 중심으로 재편된다면 미들 마일 시장의 변화는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플레이어들이 가진 다양한 정보와 노하우, 스타트업들이 구축해놓은 신기술 그리고 빅테크 기업들의 기술력이 더해진다면 국내 화물운송은 어떻게 변화할까요? 화주는 늘 물류비가 걱정이고 차주는 줄어드는 운임이 고민입니다. 매칭 과정이 단순해지고, 효율적인 배차가 이뤄질 경우 화주의 물류비는 줄고, 차주는 운임은 더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화물차의 공차 시간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어 ‘환경’에도 긍정적입니다.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테크 기반의 미들 마일 시장을 기대해봅니다.
김태호 | 유비쿼스인베스트먼트 투자본부 팀장
신기술사업금융전문회사인 유비쿼스인베스트먼트에서 스타트업 투자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 일어나는 혁신을 관찰하고, 이를 주도하는 스타트업을 발굴해 성장 마중물을 공급합니다. 그래서 매일 스타트업을 만나 혁신적인 트렌드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일이 즐겁습니다. 한국경제신문에서는 벤처캐피털의 투자와 스타트업의 성장 스토리에 대한 기사를 썼습니다. 여러 경험에서 쌓은 넓고 얕은 지식이지만 스타트업 성장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위해 매일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곳이 미개척지다" 빅테크들이 앞다퉈 달려드는 영역 [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