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적용제 도입이 또 무산됐다. 최저임금위원회는 그제 전원회의에서 8시간의 ‘끝장 토론’ 끝에 반대 16표, 찬성 11표로 차등 적용안을 부결시켰다. 노사 간 견해가 극명하게 갈린 상황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공익위원들이 대거 ‘반대표’를 던진 결과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당시 수차례 차등 적용 의지를 밝혔고, 추경호 경제부총리도 제도 개선을 주장했던 만큼 ‘올해는 다를 것’이란 기대가 컸지만 물거품이 됐다.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공익위원들의 벽을 넘지 못했다며 넘어갈 수도 있지만, 표결 내용을 들여다보면 실망감이 더 커진다. ‘찬성표’가 한 해 전 표결 때와 동일한 11표에 그쳤기 때문이다. 공익위원들의 임기가 2024년 5월까지인 만큼 전망도 결코 밝지 않다는 의미다.

‘저임금 업종 낙인 효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노동계의 주요 반대 논리지만 핑계에 불과하다. 경제 현장에선 최저임금이 무력화되면서 사실상 업종별 차등화 현상이 진행 중이다. 법정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 비율이 농림·어업은 54.8%, 숙박·음식업도 40.2%에 달한다. 반면 제조업 정보통신업 등은 5% 미만에 불과하다. 서울과 제주 간 임금 격차가 30%에 이르는 등 지역별 차이도 엄연히 존재한다. 체불근로자의 45%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나왔다. 경제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차이를 틀어막는 것은 고용시장 왜곡을 심화시킬 뿐이다.

‘임금인상발(發) 인플레이션’ 우려가 급증한 상황에서 차등 적용제 무산은 온갖 후폭풍을 예고한다. 정부의 안이함과 굼뜬 행보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고용노동부는 차등 적용제 도입을 위한 임금 데이터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지지가 높은 차등 적용 준비조차 이리 부실한데 무슨 최저임금제의 근본적 개선을 도모할 수 있겠나.

이제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을 두고 더 큰 대치가 불가피해졌다. 노측은 높아진 물가상승률을 들먹이지만 지난 5년간 최저임금 인상률은 무려 41.6%로 물가상승률(8.2%)을 압도했다. 후진적 주휴수당을 감안하면 2018년부터 최저임금이 1만원대로 올라섰다는 게 정설이다. 우리 최저임금은 중위 임금의 62%로, 일본(46%) 미국(27%)보다 훨씬 높다. ‘최저임금 포퓰리즘’으로 생산성을 후퇴시킨 전임 정부의 실패를 반복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