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행진을 이어가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내각의 지지율이 물가 상승의 벽에 부딪혀 급락했다. 다음달 10일 국회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일본 정부와 여당인 자민당에 비상이 걸렸다.

20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전화 여론조사에서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은 60%로 지난 5월(66%)보다 6%포인트 하락했다. 지지율이 작년 10월 내각 출범 당시 수준(59%)으로 꺼졌다.

지지율 급락의 주원인은 물가 상승에 따른 생활고 때문으로 분석된다. 응답자의 64%가 ‘최근의 물가 상승은 용인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답했다. ‘물가 상승을 용인할 수 있다’는 29%에 그쳤다.

국제 원자재값 급등과 엔화 가치 하락이 겹치면서 일본의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2.1% 올랐다. 2015년 3월 이후 7년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오름세다. 같은 달 실질 임금은 1.2% 감소해 코로나19의 장기화로 한계에 몰린 서민들의 한숨을 깊게 했다.

시장조사회사인 제국데이터뱅크에 따르면 올해 일본의 상장 식품사들이 가격을 인상한 제품이 1만 개를 넘었다. 아사히신문이 제조, 소매, 금융, 건설, 교통 분야 주요 100개사를 대상으로 한 하반기 가격 인상 계획 조사에서는 34곳이 ‘가격을 올릴 계획’, 20곳이 ‘가격을 인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가격을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한 기업은 금융과 철도 회사 등 8곳에 불과했다.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지만 일본은행은 지난 17일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대규모 금융완화를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일본 국내총생산(GDP)이 아직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며 “경제를 지탱하기 위해 금융완화 정책을 착실하게 지속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리 인상을 서두르는 주요국 중앙은행과 반대로 일본은행만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유지하면서 엔화 가치는 급락하고 있다. 지난 13일 달러당 엔화 가치는 135엔으로 24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