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메타버스 기업 고아트의 터키지사 직원들이 ‘터키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이스탄불 빌리심 바디시에 있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박주연 기자
글로벌 메타버스 기업 고아트의 터키지사 직원들이 ‘터키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이스탄불 빌리심 바디시에 있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박주연 기자
터키 수도 이스탄불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타니 곳곳에 이슬람교의 예배당인 모스크가 눈에 들어온다. 가게 밖으로 물건을 늘어놓은 거리에는 관광객과 시민들이 뒤엉켰다. 터키 역시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에서 예외가 아니다. 히잡을 쓰고 물건값을 흥정하는 터키 여성들의 표정이 왠지 어두워 보인다.

이스탄불에서 남동쪽 해안으로 20여 분을 달리면 현대적인 고층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터키의 전기차(EV) 기업 토그. ‘터키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스타트업 밀집 지역인 빌리심 바디시의 초입에 있다.

300개 기업 들어선 ‘터키 실리콘밸리’

글로벌 메타버스 기업 고아트의 터키지사 직원들이 ‘터키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이스탄불 빌리심 바디시에 있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박주연 기자
글로벌 메타버스 기업 고아트의 터키지사 직원들이 ‘터키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이스탄불 빌리심 바디시에 있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박주연 기자
정부는 ‘기술 밸리’라는 뜻을 가진 빌리심 바디시의 청사진을 2011년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2015년 공사를 시작해 2019년부터 입주했다. 350만㎡에 달하는 부지에 11개 건물이 있다. 입주한 스타트업과 R&D(연구개발)센터는 300여 개에 달한다. 터키에서 가장 많은 기술 기업이 모인 곳이다.

빌리심 바디시의 목표는 기술 기반의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모빌리티, 디자인, 게임 등의 회사가 입주해 있는데, 각 기업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게 아흐메트 세르다르 빌리심 바디시 이사의 설명이다. 입주 기업들 사이의 협력이 원활하다는 얘기다.

가령 빌리심 바디시의 모빌리티 기업은 필요한 디자인을 입주해 있는 전문 업체에 맡길 수 있다. 필요한 부품도 입주사 가운데서 최대한 조달할 수 있게 했다. 또 입주 기업들의 투자 유치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입소문을 타면서 입주를 희망하는 업체도 늘고 있다. 아흐메트 세르다르 이사는 “입주 기업에 세금을 깎아주는 등 다양한 혜택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터키 정부의 지원으로 스타트업 자금 조달액은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 기준 15억5200만달러에 달한다. 전년도에 비해 10배 넘게 증가했다.

지리적 이점과 인력 돋보여

터키의 경제 상황은 그리 좋지 못하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저금리 집착에 소비자물가가 23년여 만에 최고치로 뛰었다. 지난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73.5% 상승한 것. 지난해 11%가 넘었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도 둔화되고 있다.

터키 기업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벤처캐피털(VC) 500글로벌은 터키 투자를 지난해 5년 만에 7배로 늘렸다. 500글로벌 관계자는 “터키는 우리가 투자한 지역 중 가장 성공적”이라고 밝혔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 3월 이스탄불에 R&D센터를 만들었다. 아마존도 올가을까지 이스탄불에 물류 센터를 세울 계획이다.

이스탄불에서 만난 VC와 기업인들은 터키의 장점으로 유럽과 아시아 모두 쉽게 닿을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꼽았다. 물류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지 관계자는 “물류 가격 인상으로 중국에서 생산하는 물품들을 유럽으로 수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한국 기업들도 터키를 대안으로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포드와 터키 현지 기업이 합작한 포드 오토산은 물류 비용을 크게 줄인 대표적인 사례다. 포드 오토산은 연간 6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터키 최대 상용차 업체로 120개국에 차를 수출한다. 튠 예리 포드 오토산 구매관리 이사는 “항구와 가까워 제품을 만들고 바로 선적에 실을 수 있어 비용을 크게 절약할 수 있다”고 했다.

터키의 연간 대학 졸업자 수는 110만 명에 달하는데, 이 중 절반 정도가 기술을 전공했다. 이니스 훌리 500글로벌 파트너는 “터키의 개발자 수는 연간 17%씩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터키의 평균 나이는 32세로 유럽 전체와 비교했을 때 12세가 어리다. 터키 인구는 올해 8400만 명 수준으로 2000년 이후 매년 약 100만 명씩 증가하고 있다.

터키 이스탄불 =박주연 기자 grumpy_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