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인구 문제와 관련해 최근 체념에 가까운 반응을 자주 접한다. “인구 밀도가 세계적으로 높으니 인구가 줄어드는 편이 낫다”거나 “좁은 나라에서 아등바등하지 말고 적당한 규모의 인구로 풍족하게 살자”는 반응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인 출산율과 태어나자마자 시작된다는 치열한 경쟁이 낳은 냉소로 들린다.

2009년 이후 12년째 인구가 줄어드는 일본에도 비슷한 분위기가 존재한다. ‘1억 일본인’이라는 표현을 흔히 쓰지만 일본 인구는 1967년에서야 처음 1억 명을 넘었다. 1868년 메이지유신(일본 근대화) 당시 인구는 3330만 명, 1945년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했을 때는 7199만 명이었다. 메이지유신을 기준으로 100년간 세 배가량 인구가 증가한 셈이다.

2049년 '1억 일본인' 끝나

일본 정부는 2049년 일본 인구가 1억 명을 밑돌 것으로 예상한다. ‘일본인 1억 명’ 시대는 불과 80년 남짓에 그칠 것이라는 얘기다. 수천 년 역사 가운데 극히 예외적인 시기다.

그만큼 ‘노인 대국’ 일본에서는 인구가 1억 명 미만이었던 시대를 기억하는 50대 이상 장년층이 많고, 많지 않은 인구로 오손도손 살던 시절에 대한 향수도 짙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인구 감소를 “북한 문제와 함께 2대 국난”으로 지정했지만, 급격히 늘어난 인구가 되돌아가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낙관론이 나오는 이유다. 유럽처럼 인구는 적어도 풍족한 국가를 목표로 삼으면 된다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인구 감소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이다. 인구가 9342만 명이었던 1960년 인구의 64.2%가 생산연령(16~64세)이었다. 65세 이상 노인은 5.7%였다. 현역세대 11.3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사회였다. 2040년이면 노인 비율이 35%를 넘어간다. 현역 1.4명이 고령자 1명을 지탱해야 한다. 노인의 절반 이상은 75세 이상으로 ‘고령자의 고령화’도 일어난다. 연금, 의료, 간병 등 사회보장비로만 매년 일본 연간 예산의 두 배 가까운 190조엔이 나갈 전망이다.

일본의 인구 전문가들이 “정말 무서운 건 저출산보다 고령화”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인구절벽은 느긋하게 지는 노을을 관조하는 황혼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고려장이 벌어지는 지옥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저출산보다 무서운 고령화

인구가 쓰나미처럼 워낙 순식간에 늘었다가 줄 것으로 예상되다 보니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일본인도 많다. 현재 일본 인구는 1억2500만 명. 1억 명까지 아직 2500만 명 여유가 있으니 지금부터라도 아이를 많이 낳으면 인구가 회복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인구는 관성의 법칙을 따른다. 각종 정책을 동원해 지금 당장 출생률을 극적으로 높여도 얼마나 지속될지 불확실하다.

인구 1억 명을 유지하려면 합계출산율이 2.07명을 넘어야 한다. 지난해 일본의 출산율은 1.30명으로 6년 연속 감소했다. 현 추세대로라면 2100년 일본 인구는 3797만 명으로 근대화 이전 수준이 된다.

그나마 일본은 2040년을 정점으로 노인 인구가 줄어든다. 한국의 인구절벽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럼에도 인구 문제를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이들에게 한·일 경제 최고 권위자인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교수가 사석에서 한 말을 소개하고 싶다.

“일본도 저출산과 인구 감소의 위험을 수십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위험성이 피부로 와닿기 전까진 대책 마련의 필요를 못 느꼈고, 피부로 와 닿았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