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소속 전반기 국방위원회 설훈 의원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과거 서해 피살 공무원의 월북 사실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반기 국방위원회 설훈 의원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과거 서해 피살 공무원의 월북 사실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말을 하다 보면 실수할 때가 있다. 말이 꼬일 때도 있고 발음이 엉뚱하게 나갈 때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대한 인식이 오발탄으로 나가는 경우는 없다. 어제(20일)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경우가 그랬다.

설 의원은 이날 20대 전반기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함께 했던 민주당 의원들과 긴급브리핑을 갖고 2020년 9월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의해 우리 공무원이 살해된 사건에 대한 정부의 재조사를 비판했다. 사건의 진실과 상관 없이 정부와 여당이 이를 정쟁에 이용하고 있다는 취지였다. 이들은 성명에서 "국민의힘이 대통령 기록물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렇게 할 것까지도 없다"면서 "안보 해악을 감수하고라도 2020년 9월 24일 당시 국방위 비공개 회의록 공개를 간절히 원한다면 국회법에 따라 회의록 열람 및 공개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문제의 발언은 브리핑 후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나왔다. 설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느닷없이 공세를 하는데 이해할 수 없다. 그 당시 보고받은 야당 의원도 ‘월북이 맞네’라고 했는데 지금 와서 무엇 때문에 이러는 것인가. 윤석열 정부가 바라는 게 진실규명인가, 아니면 단순한 정쟁을 통한 이득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국민은 '이게 무슨 짓이냐'(라고 한다). 지금 민생이 힘든데 아무것도 아닌 내용을 가지고…"라고 말했다. 설 의원은 곧바로 "죄송하다. 이 말은 지우겠다"고 했지만 한번 뱉은 말을 어찌 주워담겠는가.
사진=뉴스1
사진=뉴스1
서해 피살 사건에 대한 민주당과 구 여권의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다.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7일 "전 정권이 북한 눈치를 보며 설설 기었다는 것으로 몰아가고 싶은가 본데, 당시 문재인 정권은 국민 희생에 대해 강력히 항의했고, 이례적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사과도 받았다. 북한의 눈치를 본 게 아니라 북한을 굴복시킨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분이 월북 의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가 뭐가 중요한가. 우리 국민이 북한에 의해 희생 당했고, 우리가 항의해 사과를 받아 마무리된 사안"이라고 단정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가 ‘전 정권 지우기’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면서 “민생이 급한 지금 왜 그걸 하느냐. 왜, 왜?”라고 성토했다.

기가 막힌 일이다. 우선 설 의원의 '아무것도 아닌 일' 발언부터 보자. 이는 과거 여야가 모두 월북이라고 인정했던 일이므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인지, 서해 피살 사건 자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발언 직후 황급히 취소한 걸 보면 전자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월북이 맞다'고 했다는 데 대한 여야의 주장도 다르다. 당시 국방위의 비공개 회의에 참석했던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등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실은 비공개 회의록을 열어보면 나오겠지만, 우리 공무원이 북한군에 사살되고 시신까지 소각된 사건이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는 없다.

또 하나, 설 의원도 그랬고 우 위원장도 그랬는데, 김정은 위원장의 사과가 그렇게도 중요한가. 잘못을 했으면 사과하는 건 당연하고, 사건의 진상 규명과 보상, 재발방지 약속 등이 있어야 마무리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우리가 항의해서 사과를 받고 마무리된 사안"이라고 했다. 피해자의 유족들이 사건 당시부터 월북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진상 규명을 호소해왔으나 문재인 정부는 끝내 외면하지 않았나.

우 위원장은 한술 더 떠 "이명박 정부 때 금강산 관광을 갔던 박왕자 씨가 피살됐을 때 정권이 북한의 사과를 받았느냐,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냈느냐. 관광만 문 닫고 끝났다"며 "우리 정부는 강력 항의하고 북한 최고 책임자의 사과를 받아냈다. 어느 정부가 국민의 희생에 더 강력한 대처를 했느냐"고 했다. 집권당과 정부는 북한의 사과를 받았으니 됐다고 치자. 피해자 유족은, 국민은 어쩌란 말인가. 사과를 받고 용서를 할 권리가 정부에 있나, 유족에게 있나.
2020년 9월 북한군이 피살한 해수부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어업지도원 이 모 씨의 아내가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회관에서 전날 대통령실과 해양경찰이 발표한 이른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씨의 아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대독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0년 9월 북한군이 피살한 해수부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어업지도원 이 모 씨의 아내가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회관에서 전날 대통령실과 해양경찰이 발표한 이른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씨의 아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대독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월북 의사가 있었지 없었는지가 뭐 중요하냐는 데 가서는 말문이 막힌다. 남북한이 엄연히 대치하고 있는 현실에서 아버지가 월북했다는 사실, 월북자의 가족이 됐다는 사실이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피해자의 아들은 우 위원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울분을 토해냈다.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면 왜 그때 그렇게 월북이라 주장하며 사건을 무마하려 하셨던 겁니까. 월북이라는 두 글자로 저는 어머니와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했고 우리 가정은 완전히 망가졌는데 지금 국민을 상대로 장난하시는 겁니까.”

여러 가지 정보와 첩보가 혼재된 상황에서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우 위원장의 말대로 "당시 정보 당국이 (여러 정보 중) 월북으로 추정될 수 있는 감청이나 SI(특수정보)를 갖고 월북이라고 결론 낸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진 월북'으로 보기엔 의심스러운 정황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왜 집권 초기의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이 사건을 정쟁으로 몰아가느냐고 하기 전에 진실 규명에 대한 의지부터 가다담는 것이 먼저다. '색깔론' '친북몰이'를 들먹이기 전에 왜 이 사건에 대해서는 피해자 우선, 피해자 중심주의가 지켜지지 않는 것인지 되돌아봤으면 한다.

서화동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