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1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한국은행)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1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한국은행)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5월 금융통화위원회 때보다 물가가 더 올라갈 위험이 커졌다며 통화정책을 물가 중심으로 운용하겠다고 21일 밝혔다.

이 총재는 이날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간담회에서 "현재와 같이 물가 오름세가 지속해서 확대되는 국면에선 가파른 물가상승 추세가 바뀔 때까지 물가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소비자물가는 올해 들어 오름세가 크게 확대됐다. 1~5월 중 상승률은 4.3%로, 2008년 상반기(4.3%)와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소비자물가는 3월 중 4%를 웃돈 데 이어 5월엔 5.4%를 기록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8월(5.6%) 이후 처음으로 5%를 상회했다.

이 총재는 "물가 오름세가 이처럼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것은 해외발 공급충격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국제유가가 크게 상승한 데다, 곡물 등 국제식량가격도 전쟁 여파, 주요 생산국의 수출 제한, 이상 기후에 따른 작황 부진 등으로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분간 물가는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이 총재는 "앞으로 물가 흐름은 우크라이나 사태 전개 양상, 국제원자재가격 추이, 물가상승에 따른 임금 상승 정도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크다"면서도 "전반적으로는 상방리스크가 우세하다"고 강조했다.

6월 물가가 6%대에 도달할 시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 올리는 빅스텝이 단행될 가능성이 있냐는 질문에 대해선 "유가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6% 떨어졌다가 변동하고 있는 만큼 지금 상황에서 (6월) 물가가 5% 중반이나 6% 넘어갈지 예단하긴 어렵다"며 "빅스텝은 물가 하나만 보고 결정하는 것은 아니고, 물가가 올라갔을 때 경기에 미치는 영향, 환율에 주는 영향, 변동금리도 많기 때문에 여러 가계에 이자 부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금통위원들과 상의해 적절한 조합을 만들어야 한다"고 답했다.

고유가와 높아진 국제식량가격과 같은 해외 공급측 요인의 영향이 오래 지속되면서 물가 상승압력이 국내 여타 품목으로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국내외 물가 상승압력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적절히 제어하지 않을 경우 고물가 상황이 고착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단기 기대인플레이션은 이미 물가 목표인 2%를 넘어 3%를 상회하고 있고, 장기 기대인플레이션은 2% 수준까지 올랐다.

국내 물가가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되는 시기도 불확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래 선물의 경우 3~4개월 이후 물가가 정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고는 예측하기 어렵다"며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달라질 것으로, 시장과 전반적인 전망은 3분기 정점에 이를 것으로 보지만 아직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고 짚었다.

글로벌 경기 하방 압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도 들었다. 이 총재는 "지난주 미 중앙은행이 당초 예상보다 큰 폭의 금리인상, 소위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하면서 미국 경기의 침체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며 "향후 국내 경기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물가와 성장 간 상충관계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밝혔다.

물가와 성장 간 상충관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이 스태그플레이션을 시사하는 것이냐는 질문엔 "성장률이 몇 프로가 되면 침체했냐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선 여러 견해가 존재한다"며 "5월 금통위 상황에 비해 물가는 올라갈 위험 높아졌고, 성장률은 미국이 금리를 빨리 올리면서 미국 경기도 빠르게 나빠질 가능성이 있고, 중국도 나빠지고 있어 경기 하방 위험이 커지고 인플레이션 상방 위험이 커진 상황"이라고 답했다.

미국과의 금리차와 관련해선 과거 한미 기준금리 차이가 0.75~1.0% 정도였다는 점에 의미를 둬도 되냐는 질문엔 "과거 사례는 글로벌 유동성이 풍부했던 때 내외금리차"라며 "지금 상황은 미국 통화정책이 긴축으로 돌아서면서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금리가 올라가서 다른 나라가 따라가는 상황으로, 과거 경험이 지금 상황과 동일하다고 보긴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과거 숫자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며 "미국 금리 올라가는 상황에서 금리차 크게 되면 환율이나 자본유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등 유연하게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금리차가 얼마나 되는지 자체에 매달릴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히면서, 금리 역전을 용인하겠다는 뜻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고은빛 한경닷컴 기자 silverligh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