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칼럼
ESG, 이제 ’S(사회)‘에 주목해야 한다
지난 6월 스위스 제네바는 활기가 넘쳤다. 레만 호수의 시원한 바람과 함께 마스크를 벗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이번 제네바 방문은 산업정책연구원의 ’노사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최고경영자 과정‘에 참여한 노사 대표들과 함께했다. 인권, 노동, 환경 등 ESG의 핵심 이슈들이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논의되는지 보기 위함이었다.

제네바가 활기찬 또 다른 이유는 코로나19로 최근 2년간 국제회의 대부분이 대면 회의를 못 했는데, 올해 처음으로 국제노동기구(ILO)가 제110차 총회를 대면·화상 병행 방식으로 개최하면서다. 더구나 이번 총회는 노동 기본권에 ‘안전하고 건강한 근로 환경(Safe and healthy working environment)’을 추가하는 의제가 있어 더욱 관심이 높았다.

이번 총회를 통해 1998년 채택된 ‘노동 기본 원칙과 권리 선언’(기본권 선언)이 개정되었다. 종래 4개 분야로 한정되던 노동기본권이 산업 안전보건 분야가 추가되면서 5개 분야로 확대된 것이다. 기존의 4개 기본권은 ‘결사의 자유, 차별 금지, 강제노동 금지, 아동노동 금지’다. 우리 정부도 ‘산업재해 예방 강화’를 고용·노동 분야의 가장 중요한 국정 과제로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상위권에 속한다. 지난 1월 중대 재해 처벌법이 시행되었지만, 산업현장에서는 논란이 많다. 영국이 법인 과실 처벌법을 제정하기 위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데 약 15년 걸렸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영국이 법안 제정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부분은 처벌 수준보다 경영 책임자가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행동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도 처벌보다는 조직 구성원의 안전 의식을 바꾸고 제도를 보완해 안전을 문화로 승화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사회에 지난 2년간 가장 논의가 많았던 ESG(환경·사회·지배구조)도 이제 달라져야 한다.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으로 대표되는 ‘E(환경)’ 분야가 가장 중요한 것처럼 여겨왔지만, 글로벌 관점에서 보면 실상은 조금 다르다. 환경 분야는 정량적 측정이 쉽지만, 사회 분야 항목은 대부분 정성적 측정이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이미 사회 분야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데다 관련 법·제도도 마련돼 있다.

EU 집행위원회 자문기관인 ‘지속 가능 금융 플랫폼(PSF)’이 지난 2월 말 ‘소셜 택소노미(social taxonomy)’ 최종 보고서를 발간했다. 어떤 산업이나 기업활동이 친환경적인지 구분하는 기준인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처럼, 소셜 택소노미는 사회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활동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하고 식별하는 분류체계를 의미한다.

이 분류체계가 도입되면 투자자와 소비자에게 기업이 하는 활동 중 어떤 것이 사회적 투자나 사회적 목표 달성에 더 기여하는지 알 수 있도록 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하게 된다. 이 기준을 근거로 기업들이 활동하게 되면 보다 ‘공정한 사회로의 전환’을 가속화해 인권과 노동환경 개선에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이제 기업은 ’S(사회)‘에 주목해야 한다.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기업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구체적 수치를 기반으로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해야 한다. 실제 효과를 측정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으로 보고서를 만들지 않으면 소위 ’소셜 워싱(social washing)‘으로 비난받을 수 있다.

’안전하고 건강한 근로 환경‘이 노동의 기본권 중 하나가 되었다. 이 기본권은 양질의 노동 원천이다. 양질의 노동은 양질의 삶을 만들어낸다. 안전하고 건강한 근로 환경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 기본권은 ESG라는 수단을 통해 우리 사회에 구현해야 한다. ESG 중 S(사회)의 수준을 높일 때, 우리나라가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김영기 산업정책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