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中·러 맞짱뜨는 리투아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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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연출가 박칼린의 어머니 나라이기도 한 발트해의 소국 리투아니아. 인구 280만 명의 이 작은 나라가 중국, 러시아와 맞짱을 뜨는 ‘21세기 다윗’으로 떠오르고 있다. 리투아니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유럽연합(EU)의 제재를 따른다며 러시아 역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로 가는 러시아 화물 열차와 트럭 운행을 봉쇄했다. 작년에는 중국과 단교를 감수하며 유럽 국가 최초로 대만과 국교를 맺었다. 이런 결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15세기만 해도 리투아니아는 신성로마제국보다 큰 유럽 최대 영토를 자랑했다. 그러다 18세기 말 러시아 제국에 점령당하면서 고난을 겪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리투아니아어 사용을 금지하는 문화 말살 정책을 폈다. 하지만 40년간의 리투아니아어 금지령은 역설적으로 리투아니아어 보급을 확산했다. 각 가정과 비밀 교육 시설에서 리투아니아어와 역사를 가르치면서 이 기간에 비밀리에 출판된 리투아니아어 서적이 350만 부가 넘었다고 한다.
러시아의 압제 속에서도 민족혼을 지켜낸 리투아니아인들은 1917년 볼셰비키 혁명 후 잠시 자유를 누렸다가 1939년 독·소 불가침 조약에 따라 소련에 다시 합병됐다. 이후 유대인 20만 명 학살과 시베리아 강제 이주 등 40년 이상 소련 위성국가로서 수모를 겪어야 했다.
소련에서 독립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세계사적 사건이 있다. 독·소 불가침 조약 50주년인 1989년 8월 23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라트비아 수도 리가,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을 잇는 675.5㎞의 길에 세 나라 국민 200만 명이 손을 맞잡고 인간 띠를 만든 ‘발트의 길(Baltic Way)’ 캠페인이다. 리투아니아가 중국과 맞짱을 뜨게 된 계기도 이 캠페인과 무관치 않다. 딱 30년 뒤인 2019년 8월 23일 중국의 ‘송환법’ 제정에 반대하는 홍콩 반중 시위대가 발트의 길을 모방해 45㎞의 인간 띠를 만들어 ‘홍콩의 길’ 시위를 벌였다. 그러자 동병상련을 느낀 리투아니아인들이 폭발적인 지지 집회를 열었다. 그 뒤 중국과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해 급기야 단교와 대만 수교로까지 치달았다.
리투아니아인들이 강대국과의 관계 속에서 터득한 교훈은 “작은 굴욕을 참으면 더 큰 굴욕을 겪게 된다”는 것이었다. 중국을 ‘큰 봉우리’라고 한 대통령을 뒀던 우리에게는 남다르게 들리는 메시지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15세기만 해도 리투아니아는 신성로마제국보다 큰 유럽 최대 영토를 자랑했다. 그러다 18세기 말 러시아 제국에 점령당하면서 고난을 겪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리투아니아어 사용을 금지하는 문화 말살 정책을 폈다. 하지만 40년간의 리투아니아어 금지령은 역설적으로 리투아니아어 보급을 확산했다. 각 가정과 비밀 교육 시설에서 리투아니아어와 역사를 가르치면서 이 기간에 비밀리에 출판된 리투아니아어 서적이 350만 부가 넘었다고 한다.
러시아의 압제 속에서도 민족혼을 지켜낸 리투아니아인들은 1917년 볼셰비키 혁명 후 잠시 자유를 누렸다가 1939년 독·소 불가침 조약에 따라 소련에 다시 합병됐다. 이후 유대인 20만 명 학살과 시베리아 강제 이주 등 40년 이상 소련 위성국가로서 수모를 겪어야 했다.
소련에서 독립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세계사적 사건이 있다. 독·소 불가침 조약 50주년인 1989년 8월 23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라트비아 수도 리가,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을 잇는 675.5㎞의 길에 세 나라 국민 200만 명이 손을 맞잡고 인간 띠를 만든 ‘발트의 길(Baltic Way)’ 캠페인이다. 리투아니아가 중국과 맞짱을 뜨게 된 계기도 이 캠페인과 무관치 않다. 딱 30년 뒤인 2019년 8월 23일 중국의 ‘송환법’ 제정에 반대하는 홍콩 반중 시위대가 발트의 길을 모방해 45㎞의 인간 띠를 만들어 ‘홍콩의 길’ 시위를 벌였다. 그러자 동병상련을 느낀 리투아니아인들이 폭발적인 지지 집회를 열었다. 그 뒤 중국과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해 급기야 단교와 대만 수교로까지 치달았다.
리투아니아인들이 강대국과의 관계 속에서 터득한 교훈은 “작은 굴욕을 참으면 더 큰 굴욕을 겪게 된다”는 것이었다. 중국을 ‘큰 봉우리’라고 한 대통령을 뒀던 우리에게는 남다르게 들리는 메시지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