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간 5일 오전 11시44분 중국 서북부 간쑤성 주취안 위성발사센터. 중국의 독자 우주정거장 ‘톈궁’ 건설을 지원하기 위한 세 번째 유인우주선 ‘선저우 14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선저우 14호에는 청둥, 류양, 차이쉬저 등 3명의 우주비행사가 탑승했다.

이들은 6개월간 우주에 머물며 톈궁 조립 및 건설과 관련한 핵심 기술 테스트, 각종 장비 설치, 과학 실험 등을 수행한 뒤 12월 지구로 귀환할 예정이다. 중국의 유인우주선 발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3년 8월 선저우 5호를 통해 첫 유인 우주탐사를 시작한 중국은 이후 9회에 걸쳐 10여 명의 우주비행사를 배출했다.

한국이 21일 한국형 로켓 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세계 7대 우주강국에 올라섰지만 유인 우주탐사 여정은 미국, 러시아는 물론 중국과 비교해도 한참 뒤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미국 등 20여 개국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유인 우주탐사 프로그램 ‘아르테미스’에 참여해 우주 개발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좁힌다는 복안이다.

유인 우주탐사 시대는 러시아 전신 옛 소련이 열었다. 소련 공군 조종사 유리 가가린은 1961년 4월 12일 지구인 중 최초로 우주공간에 진출해 1시간48분간 우주 궤도를 돌고 지상으로 귀환했다.

이에 자극받은 미국은 아폴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969년 7월 닐 암스트롱을 달에 상륙시켰다. 이후 미국의 우주탐사 사업은 미 항공우주국(NASA)을 중심으로 한 정부 주도 사업에서 기업 주도 사업으로 점차 전환됐다.

작년 9월 일론 머스크가 최고경영자(CEO)로 있는 스페이스X는 억만장자 재러드 아이잭먼을 포함한 ‘우주관광객’ 4명을 배출했다. 아이잭먼이 사흘간 고도 575㎞의 우주공간에 머무르기 위해 지불한 금액은 2억달러(약 2344억원)에 달했다.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은 2008년 4월 8일 러시아의 소유스 로켓에 탑승해 우주로 향한 이소연 씨다. 이씨는 11일간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우주과학 실험 등을 수행한 뒤 19일 지상으로 귀환했다. 이씨는 세계에서는 475번째, 여성으로는 49번째 우주인으로 분류된다.

이씨 이후 한국의 유인 우주탐사 명맥은 끊겼다. 이에 심(深)우주 탐사 경쟁을 위해선 2차, 3차 유인 우주탐사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우주과학회 회장인 최기혁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1차 우주인 사업은 홍보성 성격으로 연구개발이 부족했고 성과 축적 및 활용 계획이 없었다”며 “아르테미스 프로젝트 참여를 통해 2차 우주인 사업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