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위기를 축복으로 만든 기업 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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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위기는 숙명적 동반자
체질 개선과 경쟁력 향상 기회로
정부도 개혁 모멘텀으로 삼아야"
이심기 부국장 겸 B&M 에디터
체질 개선과 경쟁력 향상 기회로
정부도 개혁 모멘텀으로 삼아야"
이심기 부국장 겸 B&M 에디터
임기 중 경질은 삼성에는 없던 방식이다. 신상필벌은 중요한 인사원칙이다. 하지만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결과에 따른 책임을 묻는 게 지금까지의 방식이었다. 삼성 최고위 관계자는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삼성반도체의 수장인 경계현 사장은 ‘소통왕’으로 불린다. 톱다운 문화가 강한 삼성에서는 듣기 어려운 호칭이다. 그만큼 지난달 단행한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의 문책 인사는 의외였다. 충격요법으로 보기엔 규모도 컸다. 반도체 연구소와 파운드리사업부에서 부사장급 임원 10명 이상이 자리를 옮겼다. 경 사장은 직원들과의 소통 행사에서 “그동안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으니 바꾸고 다시 해야 한다”고 했다. 에둘러 가지 않고 최고경영자(CEO)로서 자신의 결정을 담담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밝혔다.
시장 변화에 핑계를 대지 않고 위기의 근본 원인을 내부에서 잡는 것도 삼성의 고유 방식이다. 삼성의 경영 진단은 가혹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매 분기 역대 최대 실적 경신이라는 성과 이면에 자리 잡은 무사안일과 판단 착오, 허위 보고와 실기(失期)에 대한 비판이 뒤따랐을 것이다. 결론은 “앞선 기술력을 갖고도 시장을 주도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업(業)의 본질을 간과했다”는 것으로 요약됐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선행 기술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 반도체 초미세 나노 공정 기술을 가장 먼저 개발했고, 시제품도 가장 빨리 내놨다. 하지만 지금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장의 지배력을 행사하는 회사는 대만 TSMC다. 삼성전자는 최고의 기술을 갖고도 투자를 주저했고, TSMC는 선행 투자를 감행했다.
삼성의 메모리 투자가 철저히 ‘수요 베이스’로 움직였다면 TSMC의 파운드리 투자는 고객과의 ‘커미트먼트 베이스’로 이뤄졌다. 삼성전자는 기술을 갖고도 손님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 반면 TSMC는 불확실한 수요를 감수하고 생산 능력을 늘렸다. 고객이 필요로 할 때 즉각 반도체를 공급할 만반의 준비를 했다. TSMC 우위의 시장 구도가 깨지기 어려운 이유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지금 우리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어디 삼성전자뿐이겠는가. 한국 기업 모두 예외 없이 난제를 안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구조적 문제는 최근 화물연대 파업에서 드러났다. 8일간의 파업 기간에 약 1만 대의 생산 손실이 발생했다. 자국 생산 비중이 글로벌 완성차 업체 중 가장 높지만 생산성은 가장 낮다는 취약점이 현실화한 것이다.
글로벌 경제에 또다시 위기가 엄습하고 있다. 이번에는 한 번도 겪지 못한 복합위기라는 경고음이다. 실적은 고꾸라지고, 장기 침체를 예견하는 비관론이 시장을 감싸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우리 기업엔 위기를 ‘축복’으로 탈바꿈시킨 DNA가 있다는 사실이다.
기업들은 위기를 체질 개선과 구조개혁을 위한 모멘텀으로 반전시켰다. 미래 사업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새로운 먹거리에 과감하게 투자해 시장을 선점했다. 이렇게 기업들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미증유의 코로나 팬데믹에 이르기까지 약 10년 주기로 닥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누구보다 빠른 회복 탄력성을 보였다.
정부도 다르지 않다. 투자 대가인 워런 버핏은 “수영장에서 물이 빠지고 나면 누가 벌거벗고 수영하고 있었는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긴축과 함께 그동안 제로 금리의 거품에 취해 있던 국가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기업과 위기는 숙명적인 동반자이며, 기업가는 위기를 바꾸어 놓는 사람이다.” 삼성의 경영철학인 ‘지행 33훈(訓)’에 담긴 이건희 회장의 경영자론(論)이다.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에도 위기를 ‘위장된 축복’으로 변화시킨 기업의 DNA가 필요하지 않을까.
삼성반도체의 수장인 경계현 사장은 ‘소통왕’으로 불린다. 톱다운 문화가 강한 삼성에서는 듣기 어려운 호칭이다. 그만큼 지난달 단행한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의 문책 인사는 의외였다. 충격요법으로 보기엔 규모도 컸다. 반도체 연구소와 파운드리사업부에서 부사장급 임원 10명 이상이 자리를 옮겼다. 경 사장은 직원들과의 소통 행사에서 “그동안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으니 바꾸고 다시 해야 한다”고 했다. 에둘러 가지 않고 최고경영자(CEO)로서 자신의 결정을 담담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밝혔다.
시장 변화에 핑계를 대지 않고 위기의 근본 원인을 내부에서 잡는 것도 삼성의 고유 방식이다. 삼성의 경영 진단은 가혹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매 분기 역대 최대 실적 경신이라는 성과 이면에 자리 잡은 무사안일과 판단 착오, 허위 보고와 실기(失期)에 대한 비판이 뒤따랐을 것이다. 결론은 “앞선 기술력을 갖고도 시장을 주도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업(業)의 본질을 간과했다”는 것으로 요약됐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선행 기술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 반도체 초미세 나노 공정 기술을 가장 먼저 개발했고, 시제품도 가장 빨리 내놨다. 하지만 지금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장의 지배력을 행사하는 회사는 대만 TSMC다. 삼성전자는 최고의 기술을 갖고도 투자를 주저했고, TSMC는 선행 투자를 감행했다.
삼성의 메모리 투자가 철저히 ‘수요 베이스’로 움직였다면 TSMC의 파운드리 투자는 고객과의 ‘커미트먼트 베이스’로 이뤄졌다. 삼성전자는 기술을 갖고도 손님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 반면 TSMC는 불확실한 수요를 감수하고 생산 능력을 늘렸다. 고객이 필요로 할 때 즉각 반도체를 공급할 만반의 준비를 했다. TSMC 우위의 시장 구도가 깨지기 어려운 이유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지금 우리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어디 삼성전자뿐이겠는가. 한국 기업 모두 예외 없이 난제를 안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구조적 문제는 최근 화물연대 파업에서 드러났다. 8일간의 파업 기간에 약 1만 대의 생산 손실이 발생했다. 자국 생산 비중이 글로벌 완성차 업체 중 가장 높지만 생산성은 가장 낮다는 취약점이 현실화한 것이다.
글로벌 경제에 또다시 위기가 엄습하고 있다. 이번에는 한 번도 겪지 못한 복합위기라는 경고음이다. 실적은 고꾸라지고, 장기 침체를 예견하는 비관론이 시장을 감싸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우리 기업엔 위기를 ‘축복’으로 탈바꿈시킨 DNA가 있다는 사실이다.
기업들은 위기를 체질 개선과 구조개혁을 위한 모멘텀으로 반전시켰다. 미래 사업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새로운 먹거리에 과감하게 투자해 시장을 선점했다. 이렇게 기업들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미증유의 코로나 팬데믹에 이르기까지 약 10년 주기로 닥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누구보다 빠른 회복 탄력성을 보였다.
정부도 다르지 않다. 투자 대가인 워런 버핏은 “수영장에서 물이 빠지고 나면 누가 벌거벗고 수영하고 있었는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긴축과 함께 그동안 제로 금리의 거품에 취해 있던 국가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기업과 위기는 숙명적인 동반자이며, 기업가는 위기를 바꾸어 놓는 사람이다.” 삼성의 경영철학인 ‘지행 33훈(訓)’에 담긴 이건희 회장의 경영자론(論)이다.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에도 위기를 ‘위장된 축복’으로 변화시킨 기업의 DNA가 필요하지 않을까.